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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숙

진천여중 행정실장

어학원 선생님으로 처음 만난 칼튼은 나의 30년 된 미국인 친구이다. 자메이카 출신인 그는 다크 초콜릿에 가까운 피부색과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가늘고 긴 체형을 가졌다. 웃을 땐 특유의 유쾌한 웃음소리를 내는데, 때론 주변에 민망할 정도로 크게 웃는다. 유독 추위에 약해서 겨울잠 자냐고 놀릴 정도로 겨울엔 두문불출하곤 한다. 또한 그는 학생들의 영어 능력을 향상시킬 다양한 교수법을 늘 연구하고 적용한다. 직접 개발한 교재로 수업을 진행하는 열정 넘치는 선생님이며, 여러 영어 신문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저널을 연재하는 수필가이기도 하다. 한번은 '꽃샘추위'를 설명해 주었더니 "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있다고?" 너무 재미있고 신기하다며 멋진 에세이를 탄생시켰다. 길눈이 엄청나게 밝아 한국에서 한국인인 나의 길 안내자가 되어주기도 하고, 낯가림 없이 누구나와 즉시 친구가 되는 넉살 좋고 열린 사람이다.

한국에서 결혼해 첫째 아들을 얻은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1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충북교육청 원어민교사로 돌아온 그를 나는 업무 담당자로 기적처럼 다시 만났다. 연수를 막 마치고 학교 배정을 받기 위해 회의실에서 대기하던 중, 나를 알아본 그는 낯섦과 불안함이 순식간에 날아간 듯 금세 환하고 밝아졌다. 조금 더 야위고 세월의 흔적이 얹혀진 가장의 얼굴이었다.

면 단위 작고 외딴 중학교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는데, 관사 주변에 인적이 드물고 너무나 고요해서 스님이 되어가고 있다는 농담을 할 수 있는 여유와 유머도 가졌다. 몇 년 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11년을 지내며, 외국인 거주자로서 늘 따스한 시선만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한국이 마냥 좋다던 그가 여러 망설임 끝에 아내와 세 아들이 기다리는 본국으로 돌아갔다.

칼튼은 왕복 4시간의 밤 운전도 마다하지 않고 매년 교직원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 고정 관람객이 돼주었다. 한동안 소식이 없다 싶으면 안부를 물어주었고, 늦은 밤 긴 대화도 기쁘게 받아주었다. 무슨 말을 해도 공감해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주었다. 늘 칭찬과 용기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 그는 내게 쉼터와 그늘을 주는 큰 나무 같은 친구였다.

나는 그에게서 '영어'라는 언어를 배웠지만, 언어가 가진 의사소통 그 이상의 우정과 신뢰를 느꼈다. 그의 언어 속에는 상대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 와주어 고맙다. 긴 이야기를 들어주어 고맙다. 도와주어 고맙다. 위로가 되어주어 고맙다. 안부를 물어주어 고맙다."라는 나의 모든 인사에 그는 늘 "It's my pleasure"라고 답했다. "도움이 되어 기쁘다. 얘기해줘서 기쁘다. 초대해주어 기쁘다."고 말해주는 그의 정중하고 다정한 마음이 내게는 더할 수 없는 선물이고 위안이었다. 그의 사려 깊은 배려를 오랫동안 만끽하며 나는 나이를 먹어갈 수 있었다.

부족한 글을 연재하면서 많은 격려 덕분에 6개월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마냥 즐겁게 글이 완성되지는 않기에 마음의 부담도 컸다. 그러나 "글에 나온 음악을 찾아서 들어보았다." "글 속 주인공이 궁금해진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글이 와닿는다." 등의 애정어린 답글 덕분에 이 영광스러운 글쓰기 경험이 기쁨이 되었다.

오늘 마지막 글을 쓰면서, 아름다운 표현 "It's my pleasure(그것은 저의 기쁨입니다)"를 흠뻑 누리게 해준 칼튼과의 오랜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가족들 곁에서 시작될 그의 새로운 계획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인사를 전하고 싶다. See you again! Cal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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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