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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숙

진천여중 행정실장

인터넷과 최첨단 정보통신 기기를 가지고 고정된 사무실이 아닌 카페, 공공도서관, 협업 공간 등에서 새로운 가상조직을 만들어 근무하는 사람들을 디지털 유목민이라고 한다. 이들은 원격으로 일하기 때문에 일과 휴식을 병행할 수 있고, 시간과 공간 제약에서도 자유롭다. 삶의 질을 극대화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창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디지털 유목민은 점차 대중화되고 있고, 이제 인류는 더 이상, 한곳에 정착할 필요가 없어질 거라는 학자들의 예견까지 나오고 있다. 고정된 장소에서 고정된 시간에 만나 어제의 그 동료들과 상쾌한 출근 인사를 하고, 삼삼오오 점심 메뉴를 찾아 나서며, 나른한 오후에는 차 한 잔도 즐기고, 오늘 하루 수고했다는 퇴근 인사를 나누곤 총총히 사무실을 떠나는 우리들의 일상이 정말 사라질 수 있을까?

연세 지긋한 3개월 기간제 상담사가 오셨다. 스치듯 지나갈 수 있는 3개월의 시간이지만 그분은 매일 아침 현관에 서 계셨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서였지만, 손 소독과 열 체크를 도와주시고 교직원들에게는 기분 좋은 덕담도 건네셨다. 상담실에는 갖가지 다육식물이 가득했다. 생명이 위태한 식물들이 치료를 위해 이곳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확한 진단과 처방 속에 대부분의 식물은 회생하여 주인에게 돌아가곤 했다. 계약이 여러 번 연장되어 1년여의 시간을 근무하다 떠나셨는데, 이분의 매일매일은 깊이 뿌리내리고 향기가 피어오르는 시간이었다.

6개월 기간제 영양사가 왔다. 학교 근무는 처음이고 나이도 어려서 조리원들과는 잘 화합할지, 급식업무는 잘 적응할지 염려가 많았다. 그러나 눈높이에 맞추려 시도한 다양한 메뉴와 양념장 하나에도 정성이 가득한 급식에 아이들은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고, 교직원들도 점심시간이 기대되고 설렌다는 최고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그 설렘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3개교를 순회하는 원어민교사 린이 있다. 일주일 중 단지 1.5일을 머물 뿐이지만, 교직원 음악회에서는 뮤지컬 가수가 되고, 체육대회에서는 아이들과 승리의 원 팀을 이룬다. 코로나 전수검사를 할 때는 질서 지도 담당 교사이고, 행정실에 머무를 때는 린 주무관이다. 우리는 때때로 린을 한국인으로 착각한다.

본인을 시설대체라고 소개하는 체육부장님이 있다. 관리자 포함 남직원이 6명뿐인 학교에서 이분의 노동력은 요긴하다. 매달 열리는 아침음악회에 수백 개의 의자를 세팅하고, 사무실의 이동과 재배치를 책임지며, 폐기물처리 전담반장이다. 우리의 비상 동원령에 즉각 응답하는 그분의 이름은 '동원'이다.

우리 학교엔 신출귀몰한 시설 주무관님이 계신다.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셔서 나는 내 몸에 추적기가 달려있나 의심한 적도 있다. 이분은 늘 "걱정하지 마세요! 될 거 같습니다."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라는 기쁨과 안심을 주는 말씀만 하신다. 우리 모두는 이분의 말과 행동에서 배어 나오는 성실과 배려에 매일 감사하고 감동한다. 주무관님의 손길이 닿은 모든 물건이 폐품에서 신품이 되고, 다니시는 모든 교내 길목이 정갈하고 살뜰해진다. 못 다루는 기계가 없고 못 고치는 물건이 없다. 우리는 이분의 휴가 날이 너무나 불안하고 초조하다.

어제, 석별의 정이 눈물로 이어진 이임식을 가졌다. 우리는 늘 떠나고 늘 머무른다. 얼마를 머무르느냐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류하고 교감하는 모든 순간이 다 정착이고 안착이기 때문이다. 이동하지 않는 정착민은 없으며, 멈추지 않는 유목민도 없다고 한다. 유목과 정착, 이동과 멈춤 사이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때론 유목민의 자유로움, 변화, 도전을 만끽하고, 때론 정착민이 갖는 소속감과 안정감 속에서 더 성숙해지고 더 성장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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