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말뜻으로 살펴 본 세시표현 - 세시풍속

떡국은 '첨세병'으로 표현, '세월을 먹는다'는 뜻
가래떡은 둥글고 길게 늘렸다는 뜻에서 '권모'라고 명명
음력 12월은 마지막이자 묵은 달 따라서 '막달' '썩은달'
야광귀 퇴치하기 위해 벽이나 섬돌 위에 체 걸어 놓기도
초하룻날 새벽에 문간에 붙이는 그림이나 글씨는 '문배'

  • 웹출고시간2012.01.19 18:06:3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편집자

언어는 이율배반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유행에 민감하지만 동시에 보수적인 속성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언어 속에는 세시풍속이 화석처럼 남아 있다.
언어를 통해 충북을 포함한 중부지역의 세시에 관련된 표현과 풍속도를 살펴본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일부 풍습은 현존하지 않을 수 있다.
◇ 세초(歲木+少)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시간의 '공간성'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단어다. '초'는 나뭇가지의 끝이라는 뜻으로 음력 12월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초동'이 있다. 겨울 석달(10월, 11월, 12월) 가운데 맨 마지막 달인 12월은 곧 그해의 끝이다. 따라서 옛 사람들은 '나뭇가지 초' 자를 써서 초동(木+少冬)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세초를 한자 '歲初'(세초)로 쓰면 새해 첫날이 된다.

◇막달

역시 음력 12월달을 부르는 말이다. 막달은 '마지막'에서 '막'과 '달'(月)의 합성어(合成語)로, 달력상 마지막을 의미한다. 흔히 가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태어난 자식을 '막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경우다.

◇썩은달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묵은 것이나 썩은 것을 버려야 한다. 선조들은 세월도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봤다. 따라서 음력 12월을 막달이라고도 표현했다.

막달인 12월에는 '썩은 것'을 보내기 위해 다양한 행위도 이뤄졌다. 폭죽, 빚청산, 대청소, 목욕, 머리 태우기, 묵은 세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야광귀(夜光鬼)

동국세시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이름이 야광인 귀신이 이날 밤 민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발을 두루 신어 보다가 발 모양이 딱 들어맞는 것을 신고 가 버리면 그 신발의 주인은 불길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것이 무서워 모두 신발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잔다.'

'그리고 체를 대청 벽이나 섬돌과 뜰 사이에 걸어 둔다. 야광귀가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다 세지 못하여 신발 신는 것을 잊어버리고 닭이 울면 가 버리기 때문이다.' 왜 귀신의 이름이 야광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일부 민속전문가는 불교 '약왕'이 변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설빔

사전은 설빔에 대해 '설에 새로 차려 입고 신는 옷, 신 따위'라고 적고 있다. 설빔은 '설'과 '빔' 자가 결합된 말이다. 이때 뒷말 '빔'이 어디서 왔는지는 조금은 어렵다.

지금도 충북도내 촌로들은 설빔을 '설비슴'이라고 부르고 있다. '설빔'과 '설비슴'은 발음 구조상 혈연 관계에 있는 말이다. 언뜻봐도 '비슴'이 줄어 '빔'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그림 참조)

설빔의 '빔'은 '빛내다', '꾸미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서지 작 '설빔'.

'비슴'의 고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어사전에서 '비슴'의 동사형 고어인 '빗다'를 찾으면 '빛내다', '꾸미다'라는 설명구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설빔은 '설을 맞아 몸을 새롭게 꾸미는 행동'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설빗음'이 '설비슴', '설비음'을 거쳐 오늘날의 '설빔'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말강술

청주(淸酒)의 순우리말로, 도내 북부지역에서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말강'은 글자 그대로 '말갛다'는 뜻이다. 동동주를 용수로 걸러내면 말강술을 얻을 수 있다.

설날 아침에 말강술을 마시면 한 해 나쁜 기운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속설이 내려오고 있다.

◇가래떡

국어사전에서 '가래'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둥글고 길게 늘이여 만든 것의 도막'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바로 가래떡은 길게 뽑은 떡을 말한다.

우리말 가락은 가늘면서 길은 모양을 말한다, 젓가락, 손가락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흰떡을 조금씩 떼어 손으로 비벼 둥글고 길게 문어발같이 늘리는데 권모(拳摸)라 한다.제석(除夕)에 권모를 엽전 모양으로 잘게 썰어 넣은 뒤 식구대로 한 그릇씩 먹으니 이것을 떡국(餠湯)이라 한다"는 표현이 보인다. 가래떡을 한자로는 권모(拳摸)라고 적었다.

◇청참(聽讖)

설날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 처음 듣는 짐승의 소리로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것을 말한다.

보통 날짐승의 소리로 일년의 운세를 판단했다. 선조들은 까치소리를 먼저 들으면 그해의 운수가 좋고, 까마귀소리를 들으면 그해 운수가 흉하다고 믿었다. 동국세시기가 청참에 대해 "새벽에 저자 거리로 나가서 방향에 상관없이 처음에 듣게 되는 소리로 일년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것을 청참이라고 한다"라고 적은 것으로 봐 조선시대 전국적으로 행해졌던 풍속으로 보인다.


◇문배(門排)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문간에 붙이는 그림이나 글씨를 말한다.(사진참조) 주로 문짝에 붙이기 때문에 '문화(門畵)'라고도 불렀다.

옛사람들은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문간에 붙이는 그림이나 글씨를 문배라고 불렀다. 세종시 전의 연기 합강리 모습.

조선초 성현(成俔)은 '처용'(處容)이라는 시에서 문배를 "사람도 아니, 귀신도 아니, 신선도 아니, 시뻘겋고 풍만한 얼굴, 하얗게 성긴 이, 솔개 어깨에 반쯤 걸친 청운포(靑雲袍)라. 신라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투어 그 얼굴을 분식(粉飾)하여 그려서, 요사(妖邪)를 물리치고 병을 예방하려고, 해마다 초하룻날 문에 붙이네"라고 적었다.

◇첨세병(添歲餠)

동국세시기에는 떡국을 '백탕(白湯)' 혹은 '병탕(餠湯)'이라고 적었다. 즉 겉모양이 희다고 하여 '백탕',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하여 '병탕'이라고 불렀다. 이밖에 떡국의 다소 어려운 표현으로 '첨세병(添歲餠)'이 있다. 이는 떡국을 먹음으로써 나이 하나를 더하게 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다.

실학자 이덕무는 그의 저서 청장관전서에서 첨세병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천만 번 방아에 쳐 눈빛이 둥그니(千杵萬椎雪色團) / 저 신선의 부엌에 든 금단과도 비슷하네(也能仙·比金丹) / 해마다 나이를 더하는 게 미우니(偏憎歲歲添新齒) 서글퍼라 나는 이제 먹고 싶지 않은 걸(··吾今不欲餐)'

◇문안비(問安婢)

양반 부녀자들이 새해 안부를 전하기 위해 대신 보낸 여자 노비를 말한다.

조선시대 양반 가정에서는 여자들의 외출이 자유스럽지 못하였다. 때문에 여자들은 정초 3일부터 15일 사이에 어린 여자 노비를 일가친척에게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렸다. 이때 문안을 받은 집에서는 반드시 그 문안비에게 세배상과 함께 약간의 세뱃돈을 주기도 했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광려(李匡呂)는 이 풍속을 '뉘 집 문안비가 문안하려고 뉘 집으로 들어가는고'(誰家問安婢 問安入誰家)라고 표현한 바 있다.

/ 조혁연 대기자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