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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애

수필가

밤새 비가 내렸다. 메마른 산야에 화르르 옮겨붙는 불이 무서워 '비'라는 말만 들어도 화색이 돌던 봄날이었다. 귀갓길에 발이 젖고 바람이 창을 흔들어도 좋았다. 그런데 이른 새벽 창을 여니 길가에 휑하니 비어 있는 벚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을 환하게 밝히던 꽃잎들은 밤사이 깊고 구석진 곳으로 낙화하여 단체로 열반에 들었는지 사위가 고요하다. 봄 꿈이 이리 저무는가. 어제 숲에서 만났던 그 나무도 고적하려나.

어제 오후, 일정이 변경되면서 선물 같은 여유가 주어졌다. 학교 도서관에서 다음 주 일정에 필요한 책을 읽는 데 마음이 점점 가라앉았다. 소설 속 주인공은 어린 시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부모를 잃고 숨어지내야 했으며 청년이 되어서도 주변의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을 멀리해야만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그는 달팽이처럼 자신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힌 그는 낯선 도시에서 자신을 숨긴 채 정해진 루틴에 따라 기계적으로 살아가며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느닷없이 방문 앞에 나타난 비둘기와 눈을 마주치며 온 삶이 흔들린다.

안전하게 울타리를 쳐 놓은 삶 속으로 예기치 못한 사건이 걸어들어오면 그 순간에는 누구나 공황 상태에 이를 수밖에 없다. 다만 얼마나 오래 그 순간에서 나오지 못하는가에 따라 다를 뿐. 소설 속 인물의 감정이 내게로 전이되기에 커피 한잔을 들고 근처 숲으로 나갔다. 그 숲엔 좋아하는 벚나무가 한그루 있다. 그 꽃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숲으로 난 오솔길 입구에 들어서니 무채색 숲을 환하게 밝히는 벚나무의 자태가 멀리서도 돋보여 마음에도 물기가 도는듯했다. 한눈에 들어오는 거리쯤 다가가니 벚꽃은 이미 절정을 지나 바람이 불지 않아도 꽃잎들이 나풀거리며 날아왔다. 호로록 날리는 연분홍 꽃잎들을 담아보고 싶었지만 카메라는 온전하게 그 순간을 가두지 못했다. 더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야 했는데 연분홍 꽃잎들이 오솔길을 발 디딜 곳 없이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린 꽃잎들을 차마 밟을 수 없어 그저 눈에 담으며 근처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며칠 저리 세상을 밝히다 바람 따라 후르르 떠나는 자연의 순리라니. 문득 자귀 꽃 지던 저녁을 거두어 가버린 그가 그리웠다.

그 나무도 밤새 가슴을 비웠으리라. 내려다보니 빗물 고인 작은 웅덩이에서 꽃잎들이 바람에 리듬을 타고 있다. 그 웅덩이 위로 소설 속 주인공이 비 내린 저녁 물웅덩이와 물웅덩이를 지그재그로 찾아 걸으며 옷이 젖도록 철벅대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비로소 자유를 찾아 활기차게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 봄은 그런 것이다. 꽃은 그런 것이다. 두보는 곡강(曲江)이란 시에서 '꽃잎 하나 날아가 봄빛을 이울더니 바람이 몰아간 만점에 정녕 나는 시름겨워라(一片花飛減却春 風飄萬點正愁人)'며 '세상 이치 헤아려보니 그저 행락할지라 무엇 하러 허명으로 이 몸을 얽어매겠는가(細推物理須行樂 何用浮名絆此身)'라 하였다. 그저 꽃지는 봄날을 가볍게 즐겨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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