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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애

수필가

오랜만에 한적한 마을 길을 걸어본다. 빛바랜 기와지붕 사이 새로 얹은 칼라강판 지붕들은 이질적이면서도 무언가 활기가 느껴지게 만든다. 빈집이 늘어나는 요즘 그래도 마을을 지키고 사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나보다. 한낮이라 그런지 지나는 이도 없는 길은 고즈넉한데 마을 끝자리 빈집이 두 채 마주한 모퉁이는 적막하다 못해 쓸쓸하다. 마른풀들이 가득한 마당에는 사람의 빈자리를 슬리퍼 한 짝이 남아 지키고 있다. 슬리퍼를 위로라도 하듯 햇살이 슬리퍼 위에서 반짝인다. 마당 한구석 자리한 키 큰 나무 아래에서 까치 두 마리가 마른 풀들을 뜯어 물고는 종종걸음으로 빠져 나간다. 저리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이 있기에 잊지 않고 봄이 오는가 보다.

옛 기억을 따라 오솔길로 접어든다. 봄바람은 품으로 기어든다더니 스웨터 속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시리다. 발밑에서 마른 잎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노래같다. 작은 언덕 옆 형님들과 나물을 캐던 밭에는 마른 억새들이 듬성 듬성 자리하고 있다. 혹시나 냉이라도 있을까 둘러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부지런한 누군가 이미 캐어갔거나 억새 풀에 가려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억새 잎이 길게 서걱대는 소리는 아직 겨울의 꼬리가 남아있는 듯 마음을 스산하게 한다.

그런데 그 바람에서 문득 우분 냄새를 읽는다. 까닭 없이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밭 귀퉁이 한자리 우분과 풀을 섞어 겨우내 쌓아두었다 날이 풀리면 과수원으로 밭으로 실어 나르니 봄날은 거름 냄새로 시작된다고 할 수도 있다. 어린 날에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불쾌하고 싫어했던 그 냄새가 지금 이순간 왜 반가운 걸까· 옷에 배는 냄새 때문에 일과 중에는 절대로 청국장을 먹지 않을 만큼 냄새에 민감한 내가 거름 냄새를 반가워하다니. 아마도 그 거름 냄새에 배인 농부의 봄을, 다시 한 해를 시작하는 누군가의 소박한 꿈이 배어 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봄바람에는 누군가의 꿈과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 혹은 그리운 기억의 냄새가 스며있다. 그 냄새가 오래 겨울처럼 웅크려있는 마음을 깨워 기지개를 펴게 한다. 너무 고요하여 조금은 가라앉던 마음이 밝아진다. 거름 냄새 섞인 바람에는 겨우내 억눌려 있던 초록들이 무채색 땅을 비집고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실려 있으리니 곧 봄의 전령이라 하겠다.

덕분에 발걸음에 리듬이 실린다. 얼굴을 가리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데 손목에서 잔잔한 장미향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준 선물이다. 사느라 바쁜 아이들의 삶이, 그 마음이 스며 있기에 내 삶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나만의 향기가 된다. 냄새에 삶이 섞일 때 향기가 된다.

봄날의 우분 냄새도, 손목에서 나는 장미 향기도 삶이기에 모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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