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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애

수필가

붉은 동백이 피었다. 첫 꽃이다. 삼 년 전이던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던 날, 통영 어느 한적한 마을 두엄더미에서 이파리 두 장을 날개처럼 펼치고 해를 쬐던 어린 동백을 낯선 도시로 강제 이주시킨 나는 늘 미안했다. 기후도 맞지 않는 낯선 지역, 땅도 아닌 아파트 베란다 작은 화분에 심어 두고는 애면글면 속을 끓였다. 곁에 두고 싶은 욕심 때문에 얻은 번민이다. 왜 그리 동백에 마음이 갔을까.

예전 친정집에는 어머니가 키우던 동백이 세 그루 있었다. 뜰이 있어도 동백만은 화분에 심어 길렀는데 추운 겨울이면 빛이 잘 드는 거실로 옮겨놓고 애지중지하셨다. 언젠가 아끼던 화초들을 두고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동백을 나와 동생에게 나누어 주셨다. 제법 화초를 잘 키운다고 자부했기에 화분을 들고 오며 꽤 즐거웠던 기억이다. 하지만 기쁨은 얼마 가지 못했다. 실내에서 겨울을 나도 삼월이면 시원하고 바람 살랑거리는 뜰에서 햇볕 담뿍 받으며 자라던 습성 때문인지 아파트에서는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

한동안 어머니를 뵈러 가면서도 동백을 잃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동백은 어머니의 고향인 정읍에서 선물로 받아오신 꽃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겐 존재만으로 고향의 모든 추억을 담고 있는 꽃이었고 내게는 외가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샘솟게 하는 존재였다.

이후로는 다양한 화초들을 키우면서도 동백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남녘으로 여행만 떠나면 동백이 그리 눈에 밟혔다. 어쩌자고 통영에서 한겨울 날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동백을 보고 싶으면 선운사를 찾았다. 동백을 볼 수 있는 삼사월이 좋았다. 선운사 동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꽃이 피어 춘백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찰 뒤 동백숲은 나무들이 높이 자라 먼발치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 운치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피어 있는 꽃보다 초록 풀 위로 붉게 쏟아진 꽃무덤과 마주하게 된다.

동백은 시들기 전 가장 뜨거운 순간 생을 접는 모습 때문에 심금을 울린다. 갈변하거나 말라 떨어지는 꽃들과 달리 통째로 툭 지기에 처연한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그 숲 언저리 돌계단에 앉아 있으면 온기가 남아있을 듯한 꽃송이들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툭 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이 사이 바람이 술렁술렁 동백숲을 건너가면 새소리가 자글자글 수다스럽던 그 오후. 도톰한 이파리마다 반짝이던 햇빛 속 단정하고 선명한 순간의 소멸은 짧은 한숨을 저절로 토하게 했다. 그 미세한 소리와 촉감은 늘 현재처럼 생생하게 살아나곤 한다. 지금은 그곳에도 알싸한 나뭇잎 내음 속으로 천천히 겨울이 오는 시간이겠지. 초목이 빛을 지워가는 시간, 작은 나무에 핀 동백꽃이 새삼 뜨겁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가슴에 불을 안아야/혹한을 이겨내는 것/그래서 아름다움을/항상 가슴에서 타오른다 하지 않던가'

오세영 시인의 <동백꽃> 한 구절이 가슴 한구석을 뛰게 한다. 그 불씨 내 가슴에도 남아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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