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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애

수필가

저녁 무렵 길을 걷다보면 진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아카시아 향보다 조금 더 무겁고 고혹적인 향이다. 도로 가에 낮은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쥐똥나무 꽃이 근원이다. 열매의 모양을 빗대 지은 촌스런 이름에 비해 품은 향기만은 도시를 점령한 꽃답게 강렬하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도 잎 사이에 숨어있는 작고 흰 꽃들이 빛난다. 그러고 보니 오월에는 유난히 하얀 꽃이 많이 핀다. 아카시아(아카시)를 비롯해 찔레, 산사나무, 불두화 그리고 이팝나무까지 모두 흰 꽃이다. 찾아보니 푸른 잎들이 가득 찬 숲에서는 흰 꽃만으로도 존재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벌 나비들은 흰 꽃을 잘 보지 못하니 꽃들은 생존을 위해 각자 독특한 특성을 발휘하는데 힘쓴단다. 쥐똥나무처럼 강한 향기를 내뿜거나 아카시아처럼 달콤한 꿀로 벌 나비들을 유혹한다니 신비로우면서도 삶의 고단함이 사람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오월은 음력으로 보통 사월에 해당하니 옛날이라면 보릿고개 달이다. 묵은 곡식은 바닥나고 햇보리는 여물지 않아 매우 어려운 시기이다.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하는 삶이 얼마나 참담하고 고통스러웠는지 배곯다 죽은 서민들이 꽃으로 환생한 전설들이 여럿 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이목을 끌었던 이팝나무 꽃도 그 중 하나다. 경상도 시골 마을에 착한 며느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조상 제사에 올릴 쌀밥을 짓게 되었다. 늘 잡곡밥만 짓다 쌀밥을 지으려니 뜸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매일 시어머니께 꾸중을 듣는 처지라 무서워서 밥솥을 열고 밥알 몇 개를 먹어보았는데 하필이면 시어머니 눈에 띄어 온갖 학대를 받게 되었다. 구박을 견디지 못한 며느리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말았는데 며느리 무덤가에서 나무가 한그루 자라 흰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이밥에 한 맺힌 며느리가 죽어 자란 나무라며 이팝나무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옛 사람들은 이팝나무 꽃이 풍성하게 피면 그 해 농사가 풍년이 되어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믿었단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하얀 꽃무리가 둥글게 모여 고봉밥을 연상시킨다. 바람 불어 후드득 꽃 지면 발아래 수북이 쌓인 꽃잎들이 쌀알 닮은 꽃이 아니라 쌀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허망한 줄 알면서도 꿈꾸고 또 꿈꾸었을 것이다. 이팝꽃이 필 때마다 한 마음으로 배곯지 않는 세상을 꿈꾸었을 그 마음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리며 숙연해진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런 민중들이 슬픔과 고통을 견뎌내고 피워 올린 꽃이기 때문이다.

이팝꽃은 5·18 국립묘지 가는 길을 지키며 위로와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5월은 여전히 슬픔이지만 우리의 희망이기도 하다'는 유족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그래도 희망에 방점을 찍고 싶다. 아픔을 견디고 이기며 한 걸음 한 걸음 그리 우리는 걸어왔고 미래로 걸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입하를 지나 성하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푸른 잎들은 꽃 진자리마다 맺힌 어리고 여린 열매들을 감싸고 보듬어 기를 것이다. 우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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