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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시인·수필가

4월의 새벽 아침 창문을 연다. 싱그럽게 첫 입을 떼는 새소리와 함께 여명의 꿈을 안고, 빈 가슴속 빗장을 열면 봄 향기가 톡톡 내 마음을 노크하고, 들꽃들의 연분홍빛 설렘이 아른거린다.

나는 하던 일을 잠시 털어내며 봄 맞이 길에 나선다. 바쁜 농사 일 틈으로 얻어내는 고마운 일상, 그것은 묵묵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는 참된 평화다. 차분한 생각 속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넓은 들판을 걷는 일, 그것은 내게 슬픈 공허함을 메꿀수 있는 유일한 정신 치유이기도하다.

두 볼을 스치고 지나는 부드러운 바람결은 겨우내 속앓이 하던 아픔을 씻어라도 주는 듯,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마을 고샅길을 돌아 낮은 돌담의 한가로운 정취를 즐기며 걷다보니, 세상살이에 지친 할머니가 쓰다버린 유모차를 힘들게 끌다가 자불자불 졸고 있다. 세월의 주름진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른한 햇살이 크게 하품을 하고, 흰구름이 멀리서 둥실 떠오른다.

노년기의 표정은 그 사람의 언어라는 말이 있다. 꽃이 피고 지는 일이나 사람이 태어나 청춘을 누리다가 시들어가는 일이나 같을진데, 사는 동안 누구든 궂은 일이나 아니꼬운 일 한번 겪지 않는 사람 있을까?

동네 골목길을 지나 너른 들판 청보리 밭길을 걷는다. 보리는 겨울 차디찬 흙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서로 몸을 스치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 옆 밭둑길에서 풀꽃들이 하늘거리고 그 가장자리에 들풀들이 빈자리를 가득 채운다.

훈훈한 바람을 앞당겨 봄빛이 다녀가신 그곳에, 햇빛을 정답게 나눠 망울져 깨어나고, 새순으로 꽃대를 세우더니 맑은 얼굴을 내밀고 있다. 태어날때부터 키 작은 풀들은 비바람에 꺾이는 아픔을 잊고, 목마름을 잘도 참아낸다.

햇살잔치를 즐기던 풀꽃들이 자지러지게 웃으며 꽃 피울날을 꿈꾸고, 체온을 같이 나누며 수줍게 방싯거린다. 머지않아 활짝 예쁜 꽃을 피울 것이다.

자연의 싱그러움이 주는 자유를 누리자니 지난 날 도심에서 있었던 슬픈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 주위 사람들 중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도 그 몫을 제대로 못하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자기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의 서러움 따윈 관심 없고 그저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나도 그런 아픔을 당하고도 끊어버리지 못한 채 상처를 안고 산다.

사람들과의 관계란 호밋자루에 묻은 흙을 털어내 듯 그리 가벼운 일은 아니지만 나는 그 상처로 인해 고민하고 잠못이뤄 밤을 지새우곤 한다. 내 좁은 심성 탓일까?

또한 내 실수로 인해 안좋은 일도 종종 있었다. 지인들에게 함부로 말을 성급하게 뱉어버려 상처주었던 일, 자식들 힘든 살림 고비를 도와주지 못했던 일, 내 부족한 배려로 남편과의 작은 다툼 등등….

오늘 이곳 넓은 들판에서 그런 복잡한 생각들을 놓아 떠나보내고 싶다. 총총히 바쁜 걸음으로 들판을 걷노라니 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저 멀리 샛강에서 맑은 물이 뒤척이며 흐르고, 쪽빛 하늘에 비비새 몇마리가 햇살을 가르며 날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간혹 기억속에서 놓쳐버린 흰구름을 쫒아 남쪽의 고운 소식 바라보니, 마음 속에 그윽한 기쁨이 일렁인다.

들풀들은 자기 스스로 키를 키워 사람들의 고요한 마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그 속에 살아가는 풀벌레들의 편안한 귀의처를 제공한다. 그안에서 사랑을 노래하고 춤 추고 꽃향기를 찬미하며, 비가오나 눈이 오나 그대로 젖는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는 발길로 짖밟아도 싱그런 풀향기 가득 채우며, 갖가지 꽃으로 들판을 호강시킨다.

내게 들꽃들의 속삭임은 값진 마음의 안정을 선물해주고 있다.

웬만한 일은 잘 참아내라며 다독여 주고, 더욱 더 겸손해지라 자근자근 속삭여준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밤하늘의 별처럼 동화 속 공주처럼 자꾸만 동심으로 이끌어 내린다. 내게 유일한 즐거움을 안겨 주는 이곳에 참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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