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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시인·수필가

우리 집 마당가 자목련 나무가 겨울 세찬 바람이 머문 빈 가지에서 맨몸으로 햇살을 받아내더니, 멋진 자태를 애써 감추고 있다.

7년 전 봉전리 마을로 이사 왔던 그 해 겨울이 생각난다. 도심에서 넓은 아파트에 살던 평수를 줄여 이 집시골로 오게 된 것은 사업의 실패로 형편이 어렵게 되어서였다. 이미 각오한 터였는데도 막상 짐을 풀고 나니 왜 그리 비좁고 답답하던지, 넓은 집에서 쓰던 가구들이 한낱 장식품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고 지난 일을 후회했다.

널브러진 짐들을 과감히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쓸만한 물건들은 이웃에게 나눠주고, 아끼던 책들과 옷장, 아이 침대는 중고품 센터에 고물 값으로 팔았다. 없으면 안 될 것 같던 살림들을 정리하고 나니 서운함보다 개운한 마음이 앞섰다.

어느 날 서울에 사는 친구 집들이에 가게 되었다. 상당히 넓은 집인데도 왜 그런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는 각종 가구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는데, 친구는 어렵게 평수를 키워 온 집이라 새집에 어울리는 고급스런 가구로 장식했다며 재산을 늘린 것처럼 자랑했다. 마치 지난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작은 평수에 사는 것을 창피하고 능력 없는 것으로 여겼던 젊은시절, 평수 늘려 가는 재미로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열심히 아끼고 저축한 덕분에 일찌감치 집 장만을 할 수 있어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늘려가려고 바둥거렸다.

그러던 어는 날, 아파트보다 넓은 단독주택을 새로 짓기로 했다. 헌 집을 부수면서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을 이사 가게 하는 과정도 어려웠지만, 비가 온다든지 인부들에게 사정이 생긴다든지 해서 공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예상보다 건축비가 많아졌다. 결국 돈을 빌려 써야 했고 그 이자 때문에 새 집으로 입주한 행복보다 어려운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내 능력에 부친 끝없는 허욕은 계속 이어졌다. 재산을 늘리고 싶은 욕심에 다른 아파트를 분양받아 세를 놓았다가 손해를 보았고, 땅을 잘못 샀다가 묶여 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을 얻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다. 그런 것들이 알뜰하게 모아 살림을 늘려 가는 행복 설계인 줄 알았으나 허영이었음을 이 집에 이사 와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잃을 것도 많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어느 날 나처럼 분수를 모르고 허황된 꿈을 꾸었던 이웃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자기 처지에 맞지 않는 넓은 아파트를 분양 받았는데, 중도금까지 빚을 얻어 간신히 입주했다고 한다. 무리해서라도 넓은 집을 고집한 이유는 형제들에 비해 자기 집 평수가 작기 때문이었단다.

그런데 남편이 큰 병이나서 드러눕는 바람에 빚은 눈덩이처럼 커졌고, 아주머니는 온갖 일을 하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 갔다고 한다. 그뿐인가! 아주머니까지 병들어 눕게 되었고 지병(持病)이 악화되어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런 삶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큼의 빗방울만 몸에 얹고 더 이상 고이면 '또르르' 비워 버린다. 모이면 모일수록 무거워지는 고통을 잘 알기 때문인데,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물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연잎이 빗방울을 털어내 듯, 사라지고 말 것이다.

며칠 지나자 바람이 일 때마다 이파리를 출렁이던 자목련나무가 추운 바람을 견디지못하고 이파리를 떨군다. 목련은 꽃의 아름다움만 보여주지 않고 떨어지는 꽃잎을 보는 마음의 여유도 갖게 해주었다. 또한 충만한 것만이 값진 것이 아니요, 빈곳을 채우려는 욕심만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해주었다. 나는 땅에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지난날의 쓸데없는 욕심까지 함께 빗자루로 쓸어냈다.

목련은 지고 나면 빈 가지인 듯 싶지만 봄에는 어느새 푸른 싹을 다시 틔우겠지?

그 돋아나는 새 순이 꽃을 보는 기쁨만큼의 행복을 내게 가져다주리라. 그 잎은 점점 푸르게 자라 우리 집 창문을 기웃거리다가 떨어지면서 빈가지의 슬기를 또 가르쳐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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