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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라

청주 청원초 교사

수업 중인 교실, 벌이 들어왔다.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창문을 연 다음 창밖으로 유인해 날려 보냈다. 이때다 싶어 "모든 생명은 소중한 거예요. 벌레라고 함부로 죽이면 안 돼요."라며 생명 존중 교육을 진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며칠 후 점심시간, 급식실로 들어가려는 벌레를 발견했다. 급식실 안으로 벌레가 들어갔을 때 일어날 일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재빨리 벌레를 발로 밟아 죽였다. 엄청난 혼란을 내가 막았다는 뿌듯함마저 느꼈다. 점심 시간이 끝난 후, 한 아이가 나에게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뭐 했는지 다 봤어요." 한다. 내 비밀을 알고 있으니 어서 실토하라는 표정이다. "급식실의 평화를 지켰지, 선생님이!" 하니 아이가 이상하다는 듯 다시 묻는다. "우리에게는 생명은 소중하니까 벌레라도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고 말해 놓고는 선생님은 왜 벌레를 함부로 죽이세요?" 아차! 싶은 마음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은 그걸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만약 그렇다면 어른들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까. 생명은 소중하니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생명을 죽이는 어른들의 모습을 아이들이 신뢰할 수 있었을까. 어른의 말이 얼마나 '이중잣대'로 보였을지 생각하니 더는 '죽이지 마!'식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결국 아이들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 "얘들아, 죽여도 괜찮아." 아이들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렇게 우리 반의 '죽여도 괜찮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의 '생명은 소중하니 죽이지마!'식의 수업이 아니라 '언제 죽여도 괜찮을까?'를 생각하게 해 죽여도 괜찮은 기준을 먼저 찾고, 그 외의 상황에서는 생명을 죽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도록 돕는 그림책 활용 프로젝트다. '죽여도 괜찮은' 개인적·사회적 기준 정립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서 본인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프로젝트의 첫 번째 책은 '왜 하면 안 돼요?, 마루벌'다. 왼쪽에는 그림이 오른쪽에는 질문이 나와 있어 그림을 보여주고 관련된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첫 번째 그림은 연필로 개미를 찍어서 죽이는 아이의 모습이다. 그림을 보며 질문을 차례차례 던진다. "이 아이를 보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첫 번째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은 "너도 죽고 싶니?", "그러면 안 돼!" 같은 답을 쉽게 썼다. 그 후 이 아이가 왜 개미를 죽이는지를 추측해 보게 하고, 자신이 벌레를 죽였던 경험을 떠올리며 벌레를 죽이는 다양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당하는 개미의 처지에서도 생각해 보고, 벌과 정당방위의 관점에서도 고민해 본다. 충분히 고민을 나눈 후 프로젝트의 목표인 '개미를 죽여도 괜찮을 때'를 찾는다. 아이들이 찾은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독개미 등 목숨을 위협할 때 2. 우리 집에 집을 지어 생활을 방해할 때 3. 병을 옮기는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리고 이렇게 찾은 기준 외에는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는 기준도 세웠다. 마지막으로 처음의 질문을 다시 던진다. 처음과 다르게 아이들은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개미의 처지에서 고통을 알려주기도 하고, 개미를 죽여도 괜찮을 때를 알려주며 함부로 죽이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설득하기도 한다. 한 시간 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수업 후 아이들은 누군가 벌레를 죽이고 있거나 동물을 괴롭히면 달려가 왜 그러면 안 되는지를 말하고 설득한다. 정답을 이야기할 때는 잔소리라고 듣지 않던 아이들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생각하게 했더니 자신이 찾은 답에 맞게 행동을 변화시킨다. 어쩌면 '정답'이라는 이유로 내가 너무 쉽게 잔소리만 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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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