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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석

낭성에 앉은부채가 싹을 틔웠다기에 2월 초부터 기웃거리다 3월이 되서야 화광을 두르고 의연하게 앉아 좌선에 들은 동자승의 모습을 보았다. 더러는 고라니가 뜯어먹어 볼품없이 초라한 모습도 기특해 보였다. 벌랏길에 납매화가 폈다는 소식을 듣고 아직은 찬바람이 옷 속을 파고드는 날에 독감으로 으스스한 몸을 이끌고 가서 보았다. 음력으로 섣달에 핀다는 납매는 노란 여린 잎이 세찬바람에 오돌 오돌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하여 눈물이 날 지경 이었다. 좌구산의 복수초는 눈이 함빡 내린 날 꽃을 보러 갈 수 있었다. 눈을 비집고 올라온 노란 꽃의 모습은 환상이었다. 무심천 발원지인 내암리에는 노루귀가 꽃잎을 내밀었을까 궁금하고 바람꽃의 안부도 확인 하려고 길을 나섰지만 아직은 소식이 없다.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깜짝 놀라 깨어난다는 경칩이 막 지났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눈이 비로 바뀌면서 얼었던 땅이 녹고, 따뜻한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가 되었다. 이제 얼어붙었던 북방산개구리가 서로서로 사랑하기에 바쁜 계절이다. 부지런한 녀석들은 벌써 알을 낳았다.

봄! 얼마나 힘이 나는 계절인가 태양의 온화한 빛을 받아 땅이 서서히 제 몸을 열기 시작하면 온갖 생명체가 뿌리를 내리고 더불어 사람들도 함께 삶에 의욕을 느끼며 새로운 희망과 꿈을 키우는 계절이다. 나는 봄의 정취에 들뜬 마음으로 돌아다니다가 공림사에 발길을 돌렸다.

고즈넉한 산사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 괴산 공림사에는 1천여년이 넘은 늙은 느티나무가 있다. 나이가 들어 온몸은 성한 곳이 없이 온통 상처투성이다. 나무를 향해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고 반배를 올린다. 거칠고 험한 몸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오랫동안 사람들 옆에서 모진풍파와 고통을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새긴 나무, 우리 조상들의 모진 삶을 지켜보고 함께 했을 나무, 그러나 나는 여린 새싹이나 겨울을 견디고 올라오는 꽃들에게만 고맙고 대견하다고 생각 했었다. 나의 삶은 늘 봄이기를 바라고 살았다. 늙은 나무들이 우리인간과 함께한 수많은 시간들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들이 풍진세상을 온몸으로 견디고 버텼으며 지금까지 봄이 오면 싹을 내미는 경이로운 모습을 모른 척 한 것 같다. 미안한 마음이다. 괴산 삼송리 600년된 왕소나무가 태풍에 쓰러졌을 때도 마음 아픈 줄 몰랐다. 청주중앙공원 압각수는 900여년이 되었다는 은행나무도 그냥 지나칠 뿐 그 나무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만큼은 오랫동안 우리네 삶의 일부로 지금까지 버티고 살아있는 그들에게 선조들의 지혜가 어떠했는지 그들이 삶은 또한 얼마나 힘들고 팍팍 했었는지 가만히 물어보고 싶어진다.

아마도 내가 늙은 나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이유는 요즈음 며칠 동안 요양원에 다녀오고 나서일 것이다. 요양원에 누워계시는 어르신들이 꼭 아주 오래된 늙은 나무 같다고 생각을 했다. 관절은 구부러졌으며 다리는 펴지지 않아 웅크린 모습으로 종일 누워 계시는 모습이 1천년을 살아낸 속빈 느티나무 같다. 이빨은 빠지고 몸에는 욕창이 생겼지만 가끔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늙은 나무에 돋아난 새싹 같기도 하다. 세상에는 새싹 같은 아이들과 푸르른 청춘만이 세상의 중심이며 그들만이 희망이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살았다. 그러나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을 보면서 그분들의 살과 뼈를 내어주어 지금의 세상은 그마마 살기 좋아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늙은 나무에도 봄은 오고 있다. 그들은 또 한해를 그렇게 그늘을 만들고 열매를 내어주며 살점 한 움큼을 도려낼 것이다. 우리 어르신들처럼 말이다. 병상에 누우신 어르신들 오락가락하는 정신으로 오늘도 아들걱정 딸 걱정을 하신다. 삭신이 녹아내려 걷지도 앉지도 못하시면서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하시는 말씀에 마음이 울컥하다. "어르신 봄이 왔어요. 꽃도 피고 냉이도 나왔어요. 나물 뜯으러 가야죠?" 하니 새싹처럼 함빡 웃으신다. 늙은 나무에의 가지를 우러러 보며 새싹을 찾아본다.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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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