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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석

숲해설가

하루가 다르게 초록으로 변하는 산과 들은 눈을 들어 바라보는 곳 마다 시원하다. 한 폭의 그림이라기엔 너무도 청량하고 생동감 있어 없었던 기운도 살아나는 기분이다. 이양하 작가의 「신록예찬」에서 "초록에 한하여 나에게는 청탁이 없다. 가장 연한 것에서 가장 짙은 것에 이르기 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라는 말이 절절히 마음에 와 닿는 계절이다. 봄이 한창 무르익어 마음에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산에서 들에서 자꾸 오라고 부르는 것 같은 시간에 때 맞춰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한참 예쁘게 싹이 돋아 나물로 먹기에 딱 좋은 뽕잎이 많은 곳을 알고 있으니 가보자는 말에 두말없이 OK를 외치며 따라 나섰다. 뽕잎은 아직 여리고 작아서 차마 따기가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동행한 지인이 식물이든 사람이든 적당한 스트레스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며 무지막지 하게 따지 말고 한 나무에서 조금씩만 따자는 그럴듯한 설득에 뽕잎을 따기 시작했다. 따다보니 욕심이 앞서고 나무의 스트레스는 까맣게 잊고 마구 따고 있었다. 사람의 욕심에는 한계가 없음을 자책 하면서도 한 봉지 채우고야 산을 내려 올 수 있었다. 저녁에는 뽕잎 나물을 조물조물 무쳐서 맛나게 먹었다.

봄 하면 어머니가 생각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어머니는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면 보자기를 두르고 산으로 가셨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어져서야 보자기가 터지도록 나물을 뜯어가지고 산을 내려 오셨다. 그것으로 우리는 나물밥도 해먹고 쌈도 싸먹고 삶아서 무쳐도 먹고 남는 것 은 말리기도 했다. 어머니 세대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기 시작 하면서부터 나물의 역사가 시작 되었을 것이다 사냥과 채집문화가 시작 되면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독이 없는 식물을 가려내고 먹는 방법도 꾸준히 연구했을 것이다. 추운겨울을 저장 식품으로 근근이 겨울을 보낸 우리의 선조들은 먹을 것이 모두 떨어져 근심하고 있을 때 쯤 들과 산에 지천으로 돋아나는 푸른 싹은 배고픔을 면하게 해준 고마운 것이었다.

우리나라 미풍양속 중에 나물서리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날이 풀리고 새싹이 돋아나면 가난한 아낙들은 아침 일찍 광주리를 이고 산에 올라 온종일 나물을 뜯어 광주리 가득 나물을 이고 산을 내려온단다. 뜯은 나물 중에 가장 좋은 것만을 가지고 마을의 부잣집 마당에 나물광주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안주인을 부르면 안주인은 바가지에 보리쌀이나 또는 잡곡을 가득 담아와 "벌써 봄나물이 한창이네!" 라고 반색을 하며 곡식을 건네고 대신 나물 광주리를 들고 간다고 한다. 흥정이나 실랑이 없이 서로가 건네는 덕담과 안부로 값을 치루니 가난한 아낙은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양식을 얻을 수 있고, 부잣집 안주인은 이웃을 도우며 싱싱한 봄나물을 제때 맛보니 서로가 좋은 일을 두고 나물서리라고 불렀단다.

식생활문화 연구가 김영복님의 나물이야기를 보면 조선시대에는 아홉 살까지 33가지의 나물이름을 익혔다고 한다. 여인의 경우에는 결혼에 앞서 나물종류를 익히고 요리하는 것이 신부수업의 필수이자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말하고 있다. 아흔 아홉 가지 나물노래를 부를 줄 알면 3년 가뭄도 이겨낸다는 속담도 있다. 아낙들이 나물을 캐면서 부르던 노래가 구전으로 전해져오는 나물타령은 나립다 꺾어 고사리, 한푼 두푼 돈나물, 줄까말까 달래나물, 사흘 굶어 말랭이, 시집살이 씀바귀, 입 맞추어 쪽나물...등 들으면 해학적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지금은 장미대선이라는 이름으로 한참 선거 열풍이 불고 있다. 봄나물처럼 다양한 향과 맛을 가진 대권주자들이 자신의 이름과 공약을 만발 하는 중이다. 아직은 그 나물의 향과 맛이 진정으로 국민에게 약이 되는지 모르겠다. 장미대선이 아니라 나물대선이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잘못 뽑으면 우리는 그가 가진 독으로 인해 식중독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잘 골라야 한다. 잘못 먹은 봄나물로 식중독에 걸렸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오는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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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