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주영서

괴산군청 예산계장

유교는 공자(孔子)의 사상과 학문의 바탕위에서 정심(正心), 수신(修身)을 요체로 하는 가르침이자,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지향하는 천하경영의 철학이다. 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기록은 분명하지 않지만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372년)에 오늘날의 국립대학교격인 '태학(太學)'을 설립하고 유교경전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가르쳐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초기에는 경전으로서의 성격보다는 교육교재로 도입되어, 비슷한 시기에 전국으로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교를 불교로 정한 고려시대에도 사장학(詞章學)이라는 실용학문으로 장려되었던 유학은 1290년 안향선생에 의하여 주자학(성리학)이 전래되면서 중세 한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성리학이 들어 온 초기에는 국운이 쇠락한 고려를 부흥시킬 수 있는 구국의 학문으로 숭상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나라 조선건국의 지침이 되었으며, 조선이 유학을 국가경영 이념으로 채택하면서 국가의 통치철학으로, 국민의 행동규범으로 자리 잡았고,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보편적인 생활규범의 바탕에 유교사상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의 유교는 관학(官學)인 성균관(成均館)과 향교(鄕校)를 중심으로 가르쳐지고 발전하였다. 성균관과 향교는 제를 올리는 대성전(大成殿)과 학문을 가르치는 명륜당(明倫堂)이 공존하는 종교시설인 동시에 교육기관이었다. 지방에 관학이 설치된 것은 고려시대 중앙집권 강화책으로 지방에 교수를 파견한 것이 효시이고, 인종5년(1127년) 지방에 학교를 세운 기록이 있지만 미완에 머물렀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국가정책으로 지방에 향교가 설치되고 조직과 기능이 강화되어 1894년 갑오개혁 이전까지 국가교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존하는 전국의 향교는 234개이다. 괴산군에는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괴산군·연풍현·청안현이 합쳐짐에 따라 괴산향교(槐山鄕校), 연풍향교(延豊鄕校), 청안향교(淸安鄕校)가 군내에 위치하고 있다.

괴산향교는 조선 초기에 창건되어 중종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으며, 명륜당은 1569년(선조2년)에 처음 건립되었다. 규모와 형식이 전형적인 향교의 격식을 갖추었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괴산읍 향교길 24에 있으며, 1981년 12월26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되었다. 연풍향교는 1515년(중종10년)에 창건되었고, 6·25전쟁 때 명륜당(明倫堂)과 동무·서무가 소실되어 1979년에 명륜당을 재건하였다. 연풍면 향교로 40-2에 있으며, 1981년 12월26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청안향교는 창건시기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청안 사마소(司馬所)가 1703년(숙종 29년)에 건립되었으므로 향교 창건은 그보다 앞선 조선 초기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안면 청안읍내로5길 33-14에 있으며, 1977년 12월6일 충북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었다.(계속)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