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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서

괴산군청 예산계장

'삼고초려(三顧草廬)', 삼국지에서 후한 말 유비가 제갈공명이 살고 있는 초가집으로 세 번이나 찾아간 일화를 일컫는다. 괴산군 불정면에는 삼방리, 어래산 등 범상치 않은 지명에 조선왕조 창업에 얽힌 한국판 삼고초려의 일화가 전해 내려 온다.

삼방리 관전마을 앞에는 마을표지석 옆에 '갓돈(冠錢)마을의 유래' 알림판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의 첫 번째 정승인 배극렴이 관전마을에 은거했다고 하며, 마을 뒷산에 있는 마애불좌상도 배극렴을 세 번 찾아왔다는 태조 이성계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라고 하며, 실제로 마을의 산은 임금이 왔다하여 어래산(御來山)이며, 마을 이름은 세 번 왔다하여 삼방리(三訪里)이다'라고 적혀 있다.

안내판이 바라보고 있는 길이 어래산 오르는 길이고, 그 길을 따라 300m를 오르면 삼방리마애불(충북 유형문화재 제128호)이 있으며, 마애불이 바라다 보고 있는 산이 어래산(392m)이다.

고려가 이미 국운이 다해가던 1370년대 중반, 중앙권력을 장악한 좌우군도총사 이성계 장군은 대내적으로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고, 대외적으로 대의명분을 세우기 위하여 고려의 충신인 이색, 정몽주 등과 함께 배극렴 선생을 조정에 출사시키고자 공을 들이고 있었는데, 이때 배극렴 선생은 자신을 총애하던 공민왕이 1374년(공민왕 23년) 9월에 최만생·홍윤 등의 손에 무참하게 시해되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부인과 함께 잠적하여 행방이 묘연했다.

선생을 찾기 위해 지방관아까지 동원하여 수소문한 끝에 지금의 어래산 기슭에 은거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 왔으나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만나지 못하고, 세 번째 찾아 와서야 비로소 만나서 자신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에 감복한 선생은 이후 위화도회군에 적극 가담하여 최영 등 구세력을 축출하였으며, 한양궁궐 조성을 감수하였고, 1392년 7월에는 마침내 조준·정도전과 함께 공양왕을 양위형식을 빌어 폐위시킴으로써 조선왕조를 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개국일등공신으로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졌고, 문하좌시중에 올라 고려와 조선 두 왕조에서 정승이 되는 보기 드문 경력을 가지게 된다.

선생이 이곳에 은거한 때가 1390년이라는 설도 있으나, 이때는 공민왕 사후 16년이 지났고, 고려왕조가 막을 내리는 1392년 7월을 불과 1년 남짓 남겨 두고 있어, 이미 새왕조 창업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신빙성이 낮고, 문과급제 후 진주목사, 화령부윤 등을 거쳐 합포진 첨사로 봉직할 즈음에 공민왕시해사건이 일어났으므로, 공민왕 사후부터 1376년(우왕2년) 진주도원수로 제수되기 이전의 어느 시기에 이곳에 은거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조선왕조 창업에 얽힌 한국판 삼고초려, 삼방리 어디엔가 태조대왕과 배극렴선생의 아름다운 인연을 기리는 사당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전설과 함께 남겨진 마애불만이 세월의 흔적을 안은 채 홀로 자리를 지키며, 남겨지고 잊혀지는 것이 모두 인간의 몫이라는 것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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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