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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3.27 19:01:14
  • 최종수정2014.03.27 19:00:58
ⓒ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민병각 선생은 전형적인 사범학교 출신 화가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등학교 미술교사들의 상당수가 사범학교 출신 미술인들이었다.

필자가 청주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미술선생님(엄재원, 이건옥)도 모두 사범학교 출신이었다.

1961년 사범학교의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고 교육대학이 설립되기 이전 초등학교 교사들 중에서 미술에 재능이 뛰어났던 대다수 선생님들이 중등학교 미술교사자격검정고사에 합격한 후 미술교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에 재능이 뛰어난 미술교사는 많았지만 화가로 성공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그들이 대부분 미술대학의 정규과정을 이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화가로 발전하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민 화백은 그러한 핸디캡을 슬기롭게 극복한 대표적인 경우의 화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민 화백은 1938년 청주 강서에서 태어났다.

ⓒ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지금은 강서가 청주의 중심으로 발전하였지만 그 당시는 도심에서 한창 떨어진 변두리 시골이었다. 더구나 민화백은 8살 때 부친을 여의였기 때문에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성장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에서는 감히 생각도 못하던 청주병설중학교에 합격하고, 3년 후에는 청주사범학교에 진학하여 6년 동안 20 리 통학 길을 걸어서 다녔던 모범 소년이었다.

그는 강서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만 잘 하는 소년이 아니라 4학년 때 담임선생님(박재룡)으로부터 미술에 재능이 뛰어나다고 늘 칭찬을 받았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1학년 때부터 미술반 활동에 참여하였고, 청주사범학교에 진학해서는 당시 안승각 선생(청주 근, 현대 서양화의 표본작가라 할 수 있다.)의 지도를 받으면서 화가가 되고자 하는 결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1957년 그의 가정 형편은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미술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교편생활과 화업을 병행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초등학교 교사시절을 거쳐 중등학교 미술교사가 된 이후에 부장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하고 정년하였으니 교사로서 훌륭하게 성공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화가가 되고자 하는 집념은 더욱 커지게 되며 본격적으로 화단에 뛰어든다. 그의 화가로서의 길은 독학적 수학이라 함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민 화백의 화가로서 성장해 온 배경과 과정을 몇 단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단순히 그림을 좋아서 그리고자 하는 아마추어적 사고를 버리고 화가로서의 삶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그의 회화의 작품세계로서의 양식적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그림을 시작한지 한참 지난 1973년 이후부터이다.

정확하게 말해 그가 회화에서 현대미술의 초기적 양식을 갖고 작가로서의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40이 넘어선 1980년경으로 보인다.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양식들, 즉 그의 1기 양식이라 할 수 있는 '향(鄕)' 시리즈 작품들은 구상과 추상이 절충된 화풍으로 이미 한국화단에서 60년대 이전에 나타났던 고전적 형식으로, 민 화백께서는 지나가버린 미술사의 중요한 형식들을 부지런히 뒤쫓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직후 나타나는 '귀향선' 시리즈에서는 가시적 형상의 이미지들이 부분적으로 지워지면서 단순한 선과 형으로 이루어지지만 여전히 사물이나 자연의 이미지로 인식할 수 있는 고전적 형식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1983년 이후에 그려진 후기 '귀향선' 시리즈에서는 자연을 재구성하여 재창조하려는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20세기 미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연의 묘사적 방법을 파기하고 회화가 2차원의 평면회화라는 인식을 전제하고 입체적 방법이던 기하학적인 방법이던 새로운 기본 양식으로 조형적 체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정신에 대한 인식을 수용하고자 하면서도 그의 작품의 주제 설정은 여전히 '자연의 이미지'를 포기하지 못하면서 고뇌하던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상이 되던 추상이 되던 자유로운 구성으로 회화의 세계를 마음껏 전개해보고 싶다."는 이 시기의 민화백의 그림에 대하여 미술평론가 김인환 교수는 "그는 공간을 기하화(幾何化)하며 축약과 절제의 묘를 살리면서 자연의 재창조를 위해' 구상화(具象化)하려고 노력하였다."고 비평하였다.
ⓒ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이러한 구상의 재구성 시기를 지나 민 화백의 작품에 독창적 추상세계가 등장되는 것은 그의 나이 60세가 넘은 1998년 이후부터이다. 이 시기의 그의 작품들-遺跡地 시리즈-은 지금까지의 구상적 대상의 시각적 표현에서 내면적 세계의 이미지를 함축된 추상 언어로 표현하는 용기있는 변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대가 김환기(金煥基) 화백이 삽화 스타일의 구상적 회화를 포기하고 추상회화를 탄생시킨 것이 50대 후반이었음을 생각할 때, 60대에 변화를 시도한 민 화백의 양식적 변화 또한 대단한 용기라 아니 할 수 없다.

작품의 명제에서 볼 수 있듯이 "유적지"라는 단어가 조금은 진부해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사물과 시간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그것을 새로운 창작의 동인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어느덧 그의 작품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인식된 이미지를 절제된 공간과 형상으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후기 유적지' 시리즈 작품은 구조의 해체와 모더니즘의 즉물적 기법을 동시에 담고 있는 매우 독창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1990년 교장으로 퇴직 후, 12년 전부터 경기도 양평 강상면 대석리 계곡에 건축한 저택과 화실, 전시실, 황토방 등으로 구성된 스튜디오는 전업작가 민 화백의 후기 시대를 위한 훌륭한 '아트타운'이었다.

ⓒ 민병각 화백 作
그의 화실 안은 연필과 유화, 아크릴로 그린 풍경스케치, 누드 크로키 등 자연을 대상으로 그린 크고 작은 그림들과 새로 시도하는 작품들이 가득 차있다.

그것들은 그동안 이리 저리 수없이 변화를 모색하던 그의 고뇌에 찬 흔적들이 쌓여있는 것이다. 웬만한 갤러리보다도 큰 전시실에는 그동안 민 화백이 각종 공모전, 회원전, 그룹전 등에 출품했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민 화백의 작가로서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그가 얼마나 소박하고 진실 된 작가인지를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그의 작업실을 나서면서 필자와 사진작가 송봉화 선생은 민 화백의 안내를 받으면서 최근에 개관한 '양평군립미술관'으로 향하였다.

"양평은 군민 인구 10만이 조금 넘지만, 자연 환경이 아름답고 1천명이 넘는 전업화가들이 모여 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촌입니다.

이곳에서 10년이 넘게 살았는데 앞으로 10년도 이곳에서 새로운 창작을 위해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웃는 77세 원로 화백의 모습이 너무 정겹고 아름답기만 하였다.


글/김재관(미술학박사, 쉐마미술관장)

사진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민병각 화백 주요 경력

- 1938년 청주시 강서동에서 출생
- 청주사범학교 본과 졸업
- 중등학교 미술교사 자격검정고사 합격
- 중등학교 미술교사 30여 년, 교장으로 정년
- 르 살롱 동상 수상
- 프랑스 국립살롱 'Prix d' Honneur 상 수상
- 충북미술대전초대작가
- 재경충북작가회 회장 역임
- 신기회 회장
- 개인전 8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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