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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현장 탐방 - 충주 동량면 소원 문은희 화백

화암(花岩) 화실 속에 핀 원로 여류화가의 꿈

  • 웹출고시간2014.02.13 20:26:11
  • 최종수정2014.02.27 19:53:44
충북일보 현대미술의 현장 탐방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충주댐 상류 10여 키로를 지나 산속 깊숙이 동량면 화암 낭골길 19번지에 둥지를 튼 소원(少園) 문은희 선생의 '화암 화실'이다.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한(1931년) 그가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꼭 20년 전인 1994년이다. 주변 경관은 아름다웠지만 올해 83세의 원로 화가의 화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허술해 보이기도 해서 첫 방문의 느낌이 조금 쓸쓸하였다.

필자는 2002년 청주예술의 전당에서의 '문은희 수묵 누드 드로잉 개인전'을 처음 보면서 그의 작품 세계가 범상치 않은 작가라고 생각했지만 동양화가인 문 선생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이 지금까지 지내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선생이 보내준 포토폴리오를 보게 되면서 화가로서의 그의 지고한 삶을 상세히 살펴 볼 수가 있었다.

그의 이력서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중요한 이력 한 줄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그림을 처음 시작한 것은 18세 처녀시절이었던 1948년 당시 최정상급의 서양화가이었던 남관(南寬) 화백의 미술연구소에서 서양화를 수학하였다는 기록이었다.

남관 화백은 그 후 파리 화단에 진출하여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1968년 귀국하여 홍익대학 미술학부 서양화과 교수로 특채되어 필자의 4학년 전공지도 교수였으니 문 화백과 나는 남관 화백의 같은 문하생인 셈이다.

그러나 문 선생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미술대학을 진학한 것은 결혼하고 자식을 낳은 후인 25살의 나이가 되어서 이루어졌다.

그는 1955년 홍익대학 회화과를 입학하여 1959년 대학을 졸업했으니 필자에게 홍익대학 회화과 11년 선배가 된다. 서울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화가로서의 활동을 해오던 그가 그림만 그리겠다고 서울을 떠나 낯선 이곳으로 내려오게 된 동기는 조용히 그림만 그리겠다는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장소를 찾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이곳 충주댐 주변을 오게 되면서 이곳 풍광에 반해서이라 한다.

그가 안내한 거실 안은 온통 그의 작품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몇 십 년 전의 수묵담채 작품부터 그의 전성기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의 형식인 누드 드로잉 작품들과 도화(陶畵) 그리고 꼴라주 회화 작품과 오브제 작품들이 가득하였다.

그의 작품의 대명사처럼 사용하고 있는 드로잉이라는 개념은 사진술이 발명되지 않았던 서양의 중세 르네상스시대에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회화뿐만 아니라 과학적 과제를 드로잉으로 해결하면서 시작하였다.

그 당시 다빈치에게 드로잉이란 감성으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지각과 오성으로서 사물의 '윤곽'을 나타내는 '선(線)'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드로잉의 개념은 환영적 형태 속에 갇혀있던 선의 해방을 의미하는 추상화 행위이자 회화의 개념화로 정의 된다.


근대회화와 달리 동양화는 원래 어떤 재현적 표상이나 일루전이 필요치 않은 선의 예술이기 때문에 동양화 그 자체가 관념의 추상세계로서 도로잉의 개념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소원 선생은 처음에는 감나무를 수묵담채로, 수묵산수 풍경을 근 40년 동안 작업했었다. 그런 가운데 그의 대표적 형식이 되어버린 '누드 드로잉'이 나타난 것은 1975년경이지만 1989년 누드 드로잉을 각종 전시회에 출품하고 그 해 세계 최초로 수묵 누드집 "수묵 백태"를 발간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그의 누드 드로잉 작품 세계는 그 해 일본전과 함께 일본의 유명한 미술잡지인 이와사키(岩崎)미술사 발간 '美術의 泉'에 특집으로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한양공대 공업경영학 교수였던 부군 황의철 박사와 사별한 이후 화암화실에서의 그의 생활은 하루 3시간에 100장의 누드 드로잉을 작업을 할 만큼 열정을 쏟으며 작품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소원 선생의 걸작들은 주로 이 시기에 쏟아져 나온다.

남관 선생에게 서양화를 배우고 이규호 화백(일본 태평양미술학교 출신으로 신세계미술관장을 역임)에게 드로잉을 배우고 운보 김기창 화백을 스승으로 만나면서 힘찬 필력을 터득한 그의 회화 세계는 수묵으로 누드 드로잉이라는 독자적 작품 세계를 일구어내면서 한국 최고의 누드 드로잉 작가로 꽃을 피우게 된다.

소원 선생의 하이라이트는 34m에 이르는 연작 누드 작품에서 나타난다. 청주예술의 전당 갤러리에서도 전시된 적이 있는 이 작품은 수십 명의 여인의 누드가 수묵 드로잉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걸작이다.

생전에 운보 선생은 소원의 작품을 보고 "붓으로 드로잉을 표현하기는 매우 어려운거야! 예술이란 스스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일구는 거야! 이 세계만큼은 문은희가 최고야!"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1989년 일본전에서 미술전문지 '三彩'에는 그의 작품세계를 "융합하는 서양의 형태와 동양의 선묘"라고 극찬하는 기사를 실었다. 충주 화암화실에서 요즈음 소원 선생의 생활은 그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누드 드로잉을 하면서 작업하였던 수백수천 점의 습작들에 그려져 있던 누드 이미지를 이용한 꼴라주 작품에 여념이 없다.

버려져 있던 이미지들이 조합되면서 새로운 형식의 창의적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 문은희 만의 독보적 작품세계라 할 수 있다.

거실과 수장고가 있는 본채에서 약간 동떨어져있는 20평 남짓한 화실 한 쪽으로 소원 선생의 침상이 편한 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작업대를 빼놓고 나머지 공간은 소품들과 아직 표구가 되어 있지 않은 작품들이 겹겹이 또는 두루마리로 산처럼 쌓여 있다.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가로서의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로서 필자의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하였다. 83세의 원로 화가 문은희 선생을 어머니로 모시고 사는 중년이 넘은 자식이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위대한 삶의 업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그의 작품세계와 삶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 수 있을까마는, 지역의 정치인, 행정가 그 누구도 소원 선생의 위대한 예술세계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머지않아 동량면 화암 낭골길 화암화실에 쌓여있는 소원 선생의 소중한 작품들이 충주의 예술을 상징하는 명소로서 "시립 문은희 미술관"으로 우리 앞에 다가올 수 있길 기대해본다.

글/ 김재관. 사진/ 송봉화

김재관

청주대학교 예술대학장, 충북예총회장, 국립현대미술관 심의위원 역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초대작가, 국내외 개인전 40여회 개최,
제19회 쌍파울로국제비엔날레전 한국대표작가로 출품
충청북도 문화상, 문신미술상, 문화체육부장관상 수상
미술학박사(홍익대학교)
현재 : 청주시립미술관건립자문위원장
홍익대학교 회화과 총동문회장,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박사과정 지도교수
쉐마미술관 관장,

송봉화

다큐멘터리 사진가.
'간척지',일본 가라쓰'쿤치'축제를 담아 전시.
문화재청,국립민속박물관 문화유산 기록물 프로젝트 참여.
사진집으로 '도심속 작은 공동체 수암골','청천 재발견 그삶의 이야기', '장승과 벅수','솟대','서낭당','미륵불','다비와 사리' 등.
현재 (사)충청역사문화진흥원, 한국우리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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