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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현장 탐방 - 4대가 잇는 산수화 대가 임송희

"마음이 곧아야 필(筆)이 곧고, 마음이 깨끗해야 묵(墨)이 맑다"

  • 웹출고시간2014.03.13 15:52:48
  • 최종수정2014.03.13 15:53:09
ⓒ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30여 년 전에 만났던 임송희(林頌羲) 화백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며칠 후 만난다는 약속을 한 후 매우 기다려졌다.

너무 오랜만인데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임 화백께서도 70대 중반을 넘기시어 많이 변하셨을 텐데 그 옛날 잘 생기셨던 핸섬한 모습은 여전할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충북일보 '현대미술 현장탐방' 기사를 쓰게 되면서 충북 출신 원로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큰 낙(樂)이었다.

내가 이석(以石) 선생을 처음 만났던 것은 그가 인사동의 관훈미술관 3층에 화실을 두고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던 80년경이었다.

그 때는 내가 30대 중반이던 시절이었고 이석 선생께서는 마흔 중반쯤 되었던 젊은 시절이었다. 임 화백과 연락이 닿아 주소를 알게 된 후, 차를 몰고 서울 성북동 언덕배기 중턱에 있는 임 화백 화실을 찾았다.

ⓒ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멀리서 마주보면서 금방 알아보시는데 너무나 반가웠다. 장년의 시대를 지나 백발을 휘날리는 원로 화백으로 변해있는 임 화백의 모습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임 화백의 안내를 받으며 사진작가 송봉화 선생과 함께 5분 남짓 걸어서 자택과 함께 있는 임 화백의 화실에 도착했다.

임 화백께서는 필자를 정원으로 먼저 안내를 했다. 50평 남짓 되어 보이는 정원은 동양화 대가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이끼가 자연스럽게 끼어 있는 정원, 단아한 크기의 두 개의 석등과 괴석들, 이웃집 담장을 넘나들며 품위 있게 자란 적송(赤松) 한 그루가 일품이었다. 정원에 설치되어 있는 석물(石物) 중에서 눈길을 끄는 우물 정(井) 자(字) 모양의 석물 두 개를 볼 수 있었다.

우물 정자 석물이 너무 멋지다는 필자의 말을 듣자마자 임 화백께서는 이석이란 아호보다 요즘은 심정(心井)이라는 아호를 즐겨 사용한다고 말했다.


동양화란 원래 인간중심의 예술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돌(石)이란 불변의 것이기 때문에 좋아하고, 자연의 멋은 가꾸기보다 방치하는 멋이 더 아름답다는 그의 이야기처럼 이끼와 대(竹)가 석등과 석정(石井)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었다.

이석(以石)과 심정(心井)이라는 두 개의 아호가 정원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모습에서 노화백의 멋스러운 삶을 읽을 수 있었다.

심정(心井)이라는 아호에는 임 화백께서 서울미대 동양화 화단의 대가의 맥을 잇고 있음을 은연 중 암시하고 있었다. '心田耕作'이라~ 즉 바른 마음으로 밭을 일궈야 좋은 농사가 되듯이 그림도 "마음(心)이 곧아야 필(筆)이 곧고, 심이 깨끗하면 묵(墨)이 맑다" "그래야 좋은 예술의 결실을 맺는다"는 말로 자신의 삶의 자세를 설명한다.

'心田耕作'의 '心' 字은 조선조 말 산수, 인물, 화조의 대가 心田 안중식 화백, 근대 동양화의 6대 화가 心山 노수현 화백, 산수화의 대가로 서울미대 학장을 역임한 心耕 박세원 화백의 대를 이어 心井 임송희 화백으로 대가의 맥을 잇고 있는 한국 동양화의 1세기를 말하고 있음이다.

정원에서 화실로 들어서면서 임 화백은 근 60년 전 까마득한 옛날 증평공고 2학년 때로 시계바늘을 돌리면서 잠시 상념에 빠진다.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임 화백은 부친께서는 청주농고를 다니셨고 서울사대를 졸업한 후 한강이남 최초의 기독교 학교였던 전주신흥학교 교사시절 독립운동에 참여한 독립유공자이셨던 부친에 의해 힘들었던 가정 상황이 있었고, 기독교 집안이었기 때문에 한 때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 화백의 운명은 당시 그가 그린 단 한 장의 그림(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 초상화의 모사화)을 본 목사의 권유로 미대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

당시 서울 창덕여고 미술교사였던 청주출신 서양화가 안영목 선생께 잠시 지도를 받고 서울미대에 진학하였으니 그의 소질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

대학 1,2학년 시절에는 서양화 전공과 동양화 전공 사이에서 갈등도 있었지만 3학년이 되면서 처음 그린 산수화를 본 후 당시 교수로 있던 心山과 月田 장우성 화백께서 "자네는 체질이 동양화야~" 하는 한 마디에 평생 동양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임송희 화백 주요 약력

1938년 충북 증평 출생
독립운동가 부친 임창무(林昌茂) 선생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남.
증평공고 졸업
서울미대 동양화과 종업
제1회 겸재미술상 수상
제4회 안견문화대상 수상
남경미술관 임송희 초대전
덕성여대 예술대학장 역임
덕성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임 화백께서는 뛰어난 필력을 자랑하며 학내 미전에서 입상을 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젊은 시절 국전 등 공모전에 참여하기보다는 바로 화단에 뛰어들어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1970년대 그의 수묵화 작품들은 정부에서 매입하여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과 서독 대통령에게 선물로 증정되고, 당시 국내 랭킹 1위 화랑이었던 현대화랑에서 10점을 구입하여 현대건설의 중동 진출 당시 중동의 귀족들에게 선물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대대로 증평 대지주의 집안이었지만 일제의 토지개혁으로 대부분의 토지를 날린 후 집안이 힘들어지면서 어려운 시절도 보냈지만, 인기작가 시절 번 돈으로 지금의 성북동 자택을 마련할 수 있었다.

1983년 조금은 늦은 나이에 덕성여대 교수로 임용되면서 그의 작가적 삶의 패턴에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세칭 잘 나가던 작가시절 번 돈으로 집도 장만하고 조선시대 서찰, 골동품들을 틈틈이 소장해오던 작품들은 추사, 퇴계, 이이의 육필(肉筆) 등 국보급 소장품들로 사설 서예관을 지을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이 된다.

임 화백은 교수가 된 후 상업화랑과 거래를 중단하고 대작(大作) 중심의 작가적 생활로 바뀌게 된다. 특히 대학교수를 퇴직한 이후부터는 작업에만 전념했다.

"70중반이 넘어선 후론 일상에 매몰되는 것이 싫어서 창작에만 열중하고 있으며, 요즈음은 초저녁에 자고 두 세 시경 기상하여 주로 새벽에 작품제작을 해요."라는 그의 말에서 그의 결기를 느끼게 한다.

ⓒ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반세기가 넘도록 작품 활동을 하며 그는 동양화의 산수화, 인물화, 문인화 세계를 모두 섭렵하고 최근에는 '파묵산수'(破墨山水)의 대담한 구성과 문기(文氣) 넘치는 필치를 구사하며 선(禪)사상의 '직관적 정신을 자신의 예술의 우선 가치로 삼고 있음을 말한다.

올 가을 경기도 이천에 있는 '월전미술관' 초대전을 준비하느라 화실 안은 온통 작품으로 쌓여 있었다.

그 중에서 임 화백이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추상화 작품 몇 점을 보는 순간 필자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취해버렸다. 심정(心井) 선생의 혁필(革筆)의 현대적 표현에 의한 추상세계는 그의 예술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글/김재관(미술학박사, 쉐마미술관장)

사진 /송봉화 다큐멘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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