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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숨은 산책길 - 운천동 '직지 산책길'

직지(直指)와 함께 걷는 산책길

  • 웹출고시간2012.08.12 19:08:3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쨍'하고 금이 갈 것 같은 여름 풍경

산책길 기사를 작성하며 '직지를 생각하며 걷는 산책길'이라고 제목을 정해 놓고 보니, 그것 역시 마음의 짐이라 여겨졌다. 산책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일인 것을……하지만 '직지'라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배어있는 그 산책로에 자연스레 떠도는 상상의 발현을 애써 억누르는 것도 또한 짐이라 여겨졌다. 요즈음 같이 연일 계속되는 폭염(暴炎)에 마땅히 피서지를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곳곳에 서늘한 그늘이 드리운 우리 동네의 산책길을 거닐어 보는 것도 좋은 피서방법이 아닐까.

햇살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오전 10시, 더위의 정점으로 치닫는 시간에 직지 산책로를 찾았다. 구름은 사진처럼 새하얗고, 하늘은 청(靑) 물감을 그대로 풀어놓은 듯 새파랗다. 건드리면 투명하게 출렁일 듯 맑은 여름 풍경이다. 매미가 카랑카랑 울어대니 풍경이 유리처럼 '쨍'하고 금이 갈 것만 같았다. 산책길의 입구까지 걷다보니 숨이 턱턱 막혀왔다. 지독하게 더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직지 산책로에 들어서는 순간 산의 서늘한 기운이 몰려와 거짓말처럼 더위를 없애준다. 마치 '직지 산책로'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경계로 한쪽은 더운 나라, 한쪽은 시원한 나라처럼 선명하게 구별되어졌다.


양병산 등산로와 만나는 門

시원한 나라 입구, 숲 그늘이 잘 드리워진 벤치에 할머니 두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노쇠한 파수병처럼 길목을 지킨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인사를 건네니 "이만한 피서가 어디 있어· 친구랑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가. 이참에 먹을 것도 싸서 왔거든. 우린 소풍 왔어."라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풍'을 왔다는 할머니의 말과 벤치 한쪽에 풀어진 보자기에 놓인 과일 몇 개와 음료수가 소풍임을 증명하고 있다.

직지 산책로의 장점은 평지의 산책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산길 특유의 오르막내리막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오르막에 이르러 적당하게 힘이 들어가는 허벅지 근육부터 느낌이 분명 다르다. 가벼운 산책이되, 조금은 운동도 곁들여진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꼬불꼬불 양병산 산책로 입구로 이어진 산책길에는 특별히 놀랄만한 풍경은 없다. 하지만 자연은 그 자체로 사람을 품어준다. 어우렁더우렁 참나무에 얽힌 넝쿨들이 더불어 사는 법도 가르쳐주고, 바람에 실려 온 솔향기는 속진번뇌를 씻어주기도 한다. 직지 산책로는 대부분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아름드리 적송도 드문드문 보인다. 직지 산책로의 정상에 이르면 양병산 등산로와 이어진 작은 문(門)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산책(散策)과 등산(登山)의 경계를 알려주는 표식처럼 느껴진다. 그 문에서 흥덕사까지 내려가는 길은 한결 편하다. 숲길은 울창한 나무그늘로 더위를 견고하게 차단한 탓인지 무더운 한낮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숲길을 걷다보면, 오감은 저절로 열린다. 귀와 코가 눈(眼)보다 앞서 숲의 향과 소리를 몸에 담는다.


소소한 풍경이 때론 삶을 위로해

흥덕사지가 보여 잠시 앉아 쉬었다. 그때 의자 뒤쪽에서 나무결을 스치듯 수런대는 소리가 들렸다. 늙은 참나무 위를 오르내리는 청솔모였다. 한가한 산책객을 경계하지 않고 제멋대로다. 청솔모를 바라보니 생각은 무심히 사라지고 풍경에 녹아드는 자아를 발견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썩은 나무들이 천천히 흙으로 되돌아가고 있었고, 개미들은 분절된 시간의 집에 찰나의 삶을 꾸려간다. 이처럼 소소한 풍경들이 때론 삶을 치유하기도 한다. 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숲 안은 별천지처럼 고요하고 서늘하다.

흥덕사 옛 절터에 다다르니 '훅'하고 더위가 따라붙었다. 푸른 잔디 위에 한적한 흥덕사는 청정했다. 비록 1987년부터 5년에 걸쳐 복원된 사찰이지만, 그 기운으로 능히 천년을 떠받치고 있었다. 1985년 청주대학교 발굴조사 때 발견된 금당터, 서회랑터, 강당터에는 돌기둥만이 잘려진 나무 밑둥처럼 흔적만 남아있다.

흥덕사를 둘러싼 숲에는 작은 길이 나있다. 오래 된 나무들이 도열한 군사처럼 산책길을 호위하고 있다. 오래 산 나무들의 깊고 그윽한 울림은 마음을 열어준다. 천 년 전, 이 산책로를 묵언수행으로 거닐었을 스님들의 자취와 고요한 절간을 쾅쾅 울리며 금속활자를 두드리던 망치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내 귀에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 무더운 여름날, 산책길에 화두 하나 물고 걸어보자.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이 곧 '직지(直指)'다. 사유가 깊어질 무렵, 어느덧 무더위는 저만큼 훌쩍 물러나 있었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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