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청주시민들의 교통카드 빅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 두드러진 이동토픽 노선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토픽은 유사한 승하차 패턴을 지닌 승객들을 그룹화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빅데이터 전문가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지니고 있는 충북대 조완섭(경영정보학과) 교수가 청주지역 교통카드 소지자의 1개월 동안의 교통카드 데이터를 수집, 이른바 LDA(Latent Dirichlet Allocation)기법으로 이동토픽을 분석했다. '잠재적인 디리클레 할당'으로 번역되는 LDA기법은 사용중인 문장 내의 단어에서 사전 할당된 태그와 비중에 따른 주제를 자동적으로 발견해 내는 기술 방식으로, 데이터를 분류하는데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조교수는 청주시내 교통카드 사용자의 승차지점, 이동경로, 하차지점, 해당 노선버스 등을 LDA기법으로 분석, 데이터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다. 청주지역은 이동거리와 무관한 동일 요금체계이기 때문에 승객들이 하차할 때 교통카드를 태그하지 않는다. 따라서 승객 특성을 파악하는데 다소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는 '집에서 출발하여 집으로 돌아간다'는 상식적인 관점에서 청주지역 교통카드 이용자의
봉건시대 군주는 백성들에게 군림하는 권력을 하늘로부터 부여받았지만, 그에 비례해 의무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역상수시(歷象授時)라는 것으로, 천문(天文)을 살펴 백성들이 농사지을 때를 제때 알려줘야 했다. 양촌 권근의 (天文圖誌)는 석각 (天象列次分野之圖, 국보 제 228호)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는 '하늘의 형상을 십이차(十二次)와 분야(分野)에 따라 그려 놓은 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자고로 제왕이 하늘을 받드는 정사는 역상(曆象 달력)으로 천시(天時)를 알려 주는 것을 급선무로 삼지 않는 이가 없다. 요(堯)는 희화(羲和)를 명하여 사시의 차례를 조절하게 하고, 순(舜)은 기형(璣衡)을 살펴 칠정(七政)을 고르게 하였으니, 진실로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에 부지런함을 늦추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권근은 그러면서 "위로 천시(天時)를 받들고 아래로 민사(民事)를 부지런히 하시면, 그 신성한 공렬(功烈)이 또한 요순과 같이 높아질 것이다"(〃)라고 '역상수시'의 소중함을 재차 강조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달력은 상국(上國) 청나라와 자주 차이가 났고, 조정은 그때마다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청국에 관상관원을 파견하였다. 영조9년에
[충북일보] 1919년 3.1 만세운동은 해외로도 번지면서 만주 용정지역에서도 일어났고, 이를 막후에서 지원한 인물은 증평출신 연병환(延秉煥, 1876~1926)이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한국독립운동사 등의 자료에 따르면 3.1운동 13일 후인 만주 용정의 서전대야(瑞甸大野)에서는 해외 독립운동으로는 가장 큰 규모인 3만명의 동포들이 운집, 시위를 벌였다. 이날 용정지역 예수교 목사이자 대회장인 김영학(金永學)은 연단에 올라 독립선언포고문을 낭독하고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표달한다' 내용의 공약삼장을 선포하였다. 연설 후 동포들이 일본총영사관으로 행진하려하자 일본의 사주를 받은 중국 맹부덕(孟富德) 부대가 발포, 현장에서 15명이 즉사하고 치료를 받던 도중 4명이 사망하는 등 모두 19명이 순국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심양 세종조선어학교 김양은 (2000) 논문에서 '간도한족독립운동의사부의 주도로 12일 용정 천주교회당의 종소리가 울리면서 시작됐다'라고 서술했으나, 더 이상의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충북대 박걸순(사학과) 교수가 최근 발간한 《증평 곡산연씨 일가의 독립운동》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약방서(藥方書)는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이다. 이 책은 고려시대 1236년(고종 23) 무렵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들던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처음으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우리나라 산천에서 자생하는 풀이름을 이두식으로 표기, 국문학적으로도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가령 개나리꽃은 견내리화(犬乃里花), 붓꽃은 필화(筆花), 아주까리는 아차가이(阿次加伊)로 적었다. 책이름에 '향약'이라는 표현이 들어간데는 나름의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이 때의 향약은 우리나라 땅에서 산출되는 약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중국 당나라에서 수입됐던 당약(唐藥)과 대칭되는 표현으로 사용했다. 약이 되는 풀이름을 문헌으로 기록할 정도면, 그것을 약으로 만드는 제조 공간도 있었을 것이다. 고려시대에 왕실의 약 조제를 담당하던 곳을 '상약국(尙藥局)'이라고 불렀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상약국은 성종 9년(990)에 이미 설치되어 있었고 이후 충선왕대까지 그대로 존속되다가 한때 봉의서(奉醫署)로 개칭되고 다시 상약국·전의시(典醫寺) 등으로도 불렸다. 《고려사》 지는 고려시대 화재 사고만을 별도로 모아 기록
[충북일보] 한국과 일본이 조선통신사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한 것과 관련, 충북도 관련 사료와 문화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백두대간 조령[새재] 구간은 조선통신사 육로 여정 가운데 생생한 사료가 가장 많이 존재, 이를 지역 문화·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산문화재단과 일본 조선통신사 연지연락협의회는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동 등재 신청키로 합의했다. 등재신청 목록은 외교·일기·문화기록 등으로 한국 63건 124점, 일본 48건 209점 등 전체 1백11점 3백33점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 10여 차례 파견됐던 조선통신사는 크게 한양~부산의 조선 육로, 부산~교토의 해로, 교토~도쿄의 일본 육로 등의 여로를 갖고 있었다. 이 가운데 두 나라의 등재사업은 해로와 일본 육로, 그리고 그 역사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지난 2011년에 개관한 부산시 산하의 조선통신사 역사관도 그 같은 취지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등재 신청을 계기로 양국 조선통신사 문화를 완전하면서 입체적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조선 육로도 당연히 그 대상이
◇ "사관은 선행 모두를 만세에 남기는 것" 조박(趙璞, 1356~1408)은 고려말과 조선초의 양조(兩朝)를 산 인물로 우리고장 청주목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는 사관이 되어 임금과 대신의 토론공간인 경연(經筵)에 참여하려 했으나 2대 임금인 정종이 꺼려하였다. 그러자 임금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군(人君)이 두려워할 것은 하늘이요, 사필(史筆)입니다. 하늘은 푸르고 높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리(天理)를 말하는 것뿐입니다. 사관은 인군의 착하고 악한 것을 기록하여 만세에 남기니, 두렵지 않습니까."- 실록은 '상(정종)이 그렇게 여겼다'(上然之)라고 적었다. ◇ "사관이 모르게 하라", 그 말까지 기록하다 조선 초기의 사관 민인생(閔麟生)은 생몰 연대가 정확하지 않으나 태종대를 산 인물로 나타난다. 조선 사관역사 가운데 가장 에피소드한 장면이 그로부터 작성되었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태종(이방원)이 편전(便殿·일종의 휴식공간)에까지는 들어오지 말라고 하자 이렇게 설전을 벌였다. 태종: "편전에는 들어오지 말라." 민인생: "비록 편전이라 하더라도, 대신이 일을 아뢰는 것과 경연(經筵)에서 강론하는 것을 신 등이 만일 들어오
지금의 우리고장 진천은 고구려에 속했을 때는 '금물노군'(今勿奴郡), 신라 관할이었을 때는 '흑양군'(黑壤郡)으로 불렸다. 《삼국사기》 권35 잡지4에 이에 관련된 내용이 비교적 자세히 적혀 있다. "흑양군 또는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하였다. 본래 고구려 금물노군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진주(鎭州)이다. 인용문의 '지금'은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이 《삼국사기》를 쓰던 고려 인종 23년(1145) 무렵을 의미하고 있고, 그리고 '진주'는 지금 지명인 '진천'의 전단계 지명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내용을 보면 당시 진천의 행정 위계가 '현'(縣) 아닌, '군'(郡)으로 표현돼 있다. 이것은 그 아래 '현'을 거느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니나 다를까 《삼국사기》 관련 대목에는 '영현(領縣)이 둘이었다', 즉 2개의 현을 거느리고 있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도서현(都西縣)은 본래 고구려 도서현(道西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도안현(道安縣)이다. 음성현(陰城縣)은 본래 고구려 잉홀현(仍忽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도 그대로 쓴다." 지금의 음성, 증평 군민들은 다소 언짢아 할 수 있
[충북일보] 고려~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이유는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는 정보 대중화를 불러왔지만, 한국의 금속활자는 한자가 지닌 속성 때문에 정보 독점주의를 낳았기 때문으로 지적됐다. 한국고전번역원 최채기 수석연구위원은 얼마전 발표한 '고전산책' 제474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최연구원에 의하면 고려의 금속활자 기술을 이어받은 조선은 이를 부서(符瑞), 즉 제왕의 상징물로 표현하였다. 때문에 정조는 규장각을 설립하고 활자의 주조를 지시하면서 "서적을 인쇄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추고 있어야만 사방의 백성에게 혜택을 줄 수 있고 사람의 지혜를 계발할 수 있다(當有摹印之具, 然後可以嘉惠四方, 啓發人知也)"라고 말하는 등 통치 도구의 일부로 인식했다. 그러나 최 연구원에 의하면 인쇄술 하면 여전히 구텐베르크이고, 또 세계 문명사는 구텐베르크 이전과 이후를 구분되고 있다. 그는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유럽사회를 뒤바꾼 엄청난 변혁을 가져왔다"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토대가 된 종교개혁 10년 동안 루터의 저술은 600만 부나 인쇄돼 팔려 나갔다"
[충북일보] ◇ 지명 속리산 속리산의 지명 유래는 상세히 전하는 것은 없고 다만 한자 '俗離'를 의미적으로 해석해 이해하는 정도이다. 『고려사』(1451) 지리지에는 보령군(報令郡·지금의 보은군)에는 '속리산(俗離山)이 있는데 신라 때에는 속리악(俗離岳)이라고 불렀는바 중사(中祀)가 행해졌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와 관련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1614)에 '산이 속세를 떠난 것이 아니라 속세가 산을 떠난 것이다(山非離俗 俗離山).'라는 문장이 있어 주목된다. 그는 이 글을 설명하면서 '임제는 속리산에 들어가 중용을 팔백 번 읽고 글귀를 얻기를 道가 사람을 멀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道를 멀리 하고, 山이 俗을 떠난 게 아리나 俗이 山을 떠났다고 했는데 이는 중용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라고 부연하였다. 따라서서 표현 '속리'의 지적재산권은 조선 선조대의 인물인 임제(林悌, 1549~1587)에게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문장대를 향하는 길목에는 세심정이 위치하고 있고, 이 곳에는 '山非離俗 俗離山' 귀절이 적힌 입간판이 사시사철을 등산객을 맞고 있다.(사진) ◇ 인문학적인 공간 속리산의 경승성을 노래한 시는 고려시대부터
패륜(悖倫)의 본래 의미는 윤리에 어긋난다는 뜻이고, 불윤(不倫)은 윤리가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지금은 패륜은 부모에게 큰 죄를 지었을 때에 붙이고, 불륜은 보통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말뜻이 다소 변했다. 조선 성종 때 우리고장 청주목에서 희대의 불륜사건이 일어났다. 청주목의 변석령(邊石齡)이라는 사람이 장모 막비(莫非)와 간통한 것으로 신고됐으나 장모는 이를 부인했고, 대신 중 학초(學初)와 간통을 해 임신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반면중 학초는 막비와의 간통사실을 부인했다. 조선은 강상윤리[삼강오륜]를 매우 중히 여겨, 이를 어긴 사람은 중범죄자로 다뤘다. 따라서 지방정부가 아닌 국가에서 직접 수사를 맡았다. 따라서 이 사건도 지방 청주목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의 형조에 배당됐다. 혹독한 국문이 시작되자 변석령은 6차 고신(拷訊)을 받고 "장모 막비와 간통했노라"라는 자백하였다. 고신은 고문(拷問)과 같은 말로 숨기고 있는 사실을 강제로 알아내기 위하여 육체적 고통을 주며 신문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막비는 13차 고신을 당하고서도 "사위(변석령)가 아닌 학초와의 간통으로 임신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고
[충북일보] 통합 청주시의 숙원이던 '청주시청 신청사 건립'이 본궤도에 올라섰다. 2014년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하면서 새로운 통합 청사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현 청사 부지에 신축'이라는 전제로 사업이 시작됐다. 여러 차례의 공론화와 갈등 조정을 겪으며 사업추진이 지연됐지만, 민선 8기에 들어서면서 사업 방향을 정립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했다. 시는 타당성조사, 투자심사, 교통영향평가, 매장유산 발굴조사 등 사전 행정절차를 마무리했고, 6월 중 시공사와 계약을 체결한 뒤 오는 7월 착공할 계획이다. 준공은 2028년 하반기가 목표다. 새로운 청사는 청주의 정체성과 미래를 담은 도시의 중심이자, 시민 삶의 변화를 이끄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틀을 세우다 신청사 건립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부지 안에는 40년 가까이 운영된 청주병원이 있었고 기존 청사 본관동을 철거할 것인가를 두고 지역사회 갈등이 팽팽했다. 시는 원칙 있는 행정과 유연한 협의를 통해 하나하나 매듭을 풀어갔다. 청주병원의 경우, 시는 공익사업을 위한 법적 절차를 충실히 이행해 부지 소유권을 확보했으며 병원 측과의 소송에서도 최종 승소했다.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충북도가 정부가 추진하는 '1호 분산에너지 특화지역(분산특구)' 최종 후보지에서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분산특구 3개 유형 중 도가 신청한 '공급자원 유치형'은 한 곳도 선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는 앞으로 정부의 분산특구 추가 지정 등을 예의주시하면서 유형과 계획 변경 등을 통해 유치 재도전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11일 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실무위원회를 열어 11개 지자체가 신청한 분산특구 중 7곳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다. 선정 지역과 유형을 보면 제주, 부산, 경기, 경북은 '신산업 활성화형', 울산, 충남, 전남은 '전력수요 유치형'이다. 이 중 신산업형은 신기술과 연계한 신사업 실증이 핵심이다. 분산 자원과 연계해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 규제 특례가 부여되는 방식이다. 수요 유치형은 전력 수급 여유 지역에 다소비 산업을 유치해 지역 내 소비를 늘리는 모델이다. 하지만 산자부는 공급 유치형의 경우 단 한 곳도 후보지를 선정하지 않았다. 산자부는 발전소 등의 구축이 필요해 단기간 사업 추진이 어려운 공급 유치형의 특성을 고려해 선정하는 않은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