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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조선통신사 사료' 발굴 시급

부산-일본,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 추진
충북의 조령 넘는 장면 각종 일기에 생생히 존재
그러나 해로·일본육로에만 초점 道구간 무관심
부분적이라도 참여해 '문화자산'으로 활용 필요

  • 웹출고시간2016.02.22 19:14:22
  • 최종수정2016.02.23 15:22:04

조선통신사 여정은 조선 육로-일본 해로-일본 육로로 구성돼 있으나 충북을 경유했던 조선육로는 아직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충북일보] 한국과 일본이 조선통신사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한 것과 관련, 충북도 관련 사료와 문화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백두대간 조령[새재] 구간은 조선통신사 육로 여정 가운데 생생한 사료가 가장 많이 존재, 이를 지역 문화·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산문화재단과 일본 조선통신사 연지연락협의회는 조선통신사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동 등재 신청키로 합의했다.

등재신청 목록은 외교·일기·문화기록 등으로 한국 63건 124점, 일본 48건 209점 등 전체 1백11점 3백33점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 10여 차례 파견됐던 조선통신사는 크게 한양~부산의 조선 육로, 부산~교토의 해로, 교토~도쿄의 일본 육로 등의 여로를 갖고 있었다.

이 가운데 두 나라의 등재사업은 해로와 일본 육로, 그리고 그 역사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지난 2011년에 개관한 부산시 산하의 조선통신사 역사관도 그 같은 취지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등재 신청을 계기로 양국 조선통신사 문화를 완전하면서 입체적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조선 육로도 당연히 그 대상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존하는 각종 조선통신사 일기를 분석하면 한양~부산까지의 거리는 대략 1천9백50리로 조선통신사는 하루평균 57리(23㎞) 정도 이동을 하였다.
그러나 백두대간이 버티고 있는 충주 수안보~문경 유곡 구간은 하루평균 16㎞밖에 이동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구간에서 가장 생생하면서 리얼한 고행 일기가 작성됐다. <표 참조>

1719년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여정에 오른 신유한(申維翰·1681~1752)은 조령을 넘는 고행담을 《해유록》에서 '비를 맞으면서 조령(鳥嶺)에 오르는데 잿길이 진흙이어서 말발굽이 빠지므로 가기가 매우 힘들었다. 고개 위에 초사(草舍)를 설치하여 일행의 말(馬) 갈아타는 처소로 하였다(4월 17일)'라고 기록하였다.

조엄(1719~1777)은 조선통신사로 갔다고 귀로에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가져온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1763년 조선통신사 길에 올랐을 때의 조령을 《해사일기》(1763)에서 '고갯길이 질어 거의 사람의 무릎이 빠지므로, 간신히 고개(조령 지칭)를 넘어 문경에 도착했다(8월 9일)'고 적었다.

이처럼 조선통신사 일행이 백두대간 준령의 조령을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따라서 충주목에서는 매번 특별 연회가 베풀어졌다.

강홍중(姜弘重·1577~1642)은 부사 신분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동사록》을 보면 그는 1624년 무극점(점심)-용안역(숙박)-충주(숙박)-수교촌(숙박·수회리) 순으로 여정을 진행했다.

이때 충주·단양·문의·청안·진천 등 일대 수령들이 대거 용안역(현 신니면)에 모인 것은 충청도의 초입(당시 무극은 경기도)이기 때문이었고, 다음날 충주에서 특별 연회가 베풀어진 것은 곧 가장 힘든 여정인 조령을 감안한 결과였다.

그는 충주 특별 연회에 대해 "오후에 도사(都事)가 연향을 대청에 베풀어 정사(正使) 이하 여러 군관이 모두 참석하였다. 이 연향은 충주에서 판비를 담당하고, 청주(淸州)에서 보조했다 한다(8월 28일)"라고 비교적 간단히 적었다.

그러나 경상도 지역의 기록을 보면 조선통신사의 특별연회에는 인접 군현의 관기들이 모두 차출된 가운데 그중 일부는 수청은 물론 시침(侍寢)까지 하는 방기(房妓)였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서 돌아오는 상행로의 조령 구간도 험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말은 물론 수행자 중에도 과로자가 속출했다.
경섬(慶暹·1562~1620)은 '해사록'(1607)에서 상행로 여정의 일부를 '마부와 말은 부산에서 여기(조령 지칭)까지 달려 와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본도(충청도 지칭)의 마부와 말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뱃길로 가려 하였으나 배도 또한 마련되지 못하였다(7월 14일)'라고 적었다.<표 참조>

한편 문헌 사료가 비교적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충주박물관, 수안보온천역사전시관, 괴산지역 전시공간 등 어디에도 충북관련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전시돼 있지 않다.

따라서 충북관련 사료를 발굴하고 나아가 이번 유네스코 등재 작업에 부분 내지 간접적으로 참여, '지분'을 주장해야 한다도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조혁연 객원대기자(충북대학교 사학과 초빙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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