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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설연휴 '속리산 산행' 10배 즐기기

임제의 시에 '山非離俗 俗離山'라는 표현있어 주목
지형학적으로 토로르· 캐슬코피·타포니 현상 존재
문장대·입석대는 억겁의 시간 후 핵석만 남아 형성
요즘 상고대피는 시기…11시이전 마루금 올라가야

  • 웹출고시간2016.02.06 03:32:52
  • 최종수정2016.02.06 03:32:52

편집자

충북의 대표적인 국립공원인 속리산은 법주사 외에 전통시대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인문학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속리산은 토오로, 캐슬코피, 타포니, 그루브 현상을 만날 수 있는 등 '지형 박물관'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특히 1~2월의 속리산에는 나무 얼음(樹氷)의 일종인 상고대가 자주 형성된다. 따라서 대체 공휴일까지 포함하면 5일이나 되는 등 비교적 긴 편인 올 설연휴 기간 동안 속리산을 등산하면 인문학의 보고이자 야외 지형학 박물관의 모습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상고대를 만날 수 있다.

단, 상고대는 햇살이 퍼져 기온이 올라가면 사라지기 때문에 늦어도 오전 11시 이전에는 속리산 8~9부 능선에 도달해야 한다. 이같은 내용을 미리 알고 올 설연휴에 속리산 등산을 나서면 산행을 몇배 더 즐길 수 있다.

문장대 주변의 속리산 마루금의 상고대와 겨울 하늘. 이하 사진 모두 2016년 1월 27일 촬영.

[충북일보] ◇ 지명 속리산

속리산의 지명 유래는 상세히 전하는 것은 없고 다만 한자 '俗離'를 의미적으로 해석해 이해하는 정도이다. 『고려사』(1451) 지리지에는 보령군(報令郡·지금의 보은군)에는 '속리산(俗離山)이 있는데 신라 때에는 속리악(俗離岳)이라고 불렀는바 중사(中祀)가 행해졌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와 관련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1614)에 '산이 속세를 떠난 것이 아니라 속세가 산을 떠난 것이다(山非離俗 俗離山).'라는 문장이 있어 주목된다.

그는 이 글을 설명하면서 '임제는 속리산에 들어가 중용을 팔백 번 읽고 글귀를 얻기를 道가 사람을 멀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道를 멀리 하고, 山이 俗을 떠난 게 아리나 俗이 山을 떠났다고 했는데 이는 중용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라고 부연하였다.

세심정 안내판의 '山非離俗 俗離山'.

따라서서 표현 '속리'의 지적재산권은 조선 선조대의 인물인 임제(林悌, 1549~1587)에게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문장대를 향하는 길목에는 세심정이 위치하고 있고, 이 곳에는 '山非離俗 俗離山' 귀절이 적힌 입간판이 사시사철을 등산객을 맞고 있다.(사진)

◇ 인문학적인 공간

속리산의 경승성을 노래한 시는 고려시대부터 문헌에 나타난다. 고려 충숙왕 때의 인물인 김구용(金九容, 1338∼1384)이 속리사의 정토 공간에 찾아와 향화(香火)로 마음을 수양하면서 <俗離寺>라는 시를 남겼다.

'달마암 가에 등불 하나 밝혀두고(達磨岩畔一燈明) / 문열고 향사루며 마음 다시 맑히네(開戶燒香思更淸) / 홀로 깊은 밤 앉아 잠 못 이루자니(獨坐夜深無蒙寐) / 창 앞 물소리 솔바람과 함께 들리네(窓前流水雜松聲).'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친척 이성환(李星煥, 1689∼?)이 보은현감으로 나가자 <족손(族孫) 천장(天章)에게 주다>라는 시를 선물했다.

그는 이 시에서 '예전에 내가 송원에서 노닐 때(昔我遊松源) / 멀리 속리산을 바라보았지(遙瞻俗離山) / 높이 솟아 푸른 허공에 섰고(嵯峨倚靑空) / 흰구름 속에 봉우리 드러났네(縞白露層巒) / 구름이 봉우리에 장막을 친 줄 처음 알았고(始信雲冪峀) / 옥이 산의 얼굴이라는 것을 처음 마침내 깨달았다(終覺玉爲顔)'라고 속리산의 경관성을 옥산(玉山)에 비유하였다.

조선 22대 임금 정조는 원로대신 김종수(金鍾秀, 1728∼1799)가 속리산으로 장기 여행을 떠나자 <봉조하 김종수 속리지행 삼수(贈奉朝賀金鍾秀俗離之行三首)>라는 시를 지어 빨리 조정으로 돌아오길 기대했다.

'금강 갈 적 술 주고 철원엔 시 줬는데(金剛携酒鐵圓詩) / 세속 떠난 행차 또 속리산으로 갔구려(離俗之行又俗離) / 길 가득한 국화는 늦가을에 완연한데(滿道黃花秋意晩) / 하늘가의 기러기 돌아올 기약 묻노라(冥鴻天畔問歸期).'

 토오르 지형의 입석대

◇지형학의 야외 박물관

속리산의 기암괴석은 자연의 일부이기는 하나 지형학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지리학자들은 속리산에서 토오로(Tor), 캐슬코피(Castle koppie), 바위 가마솥(Weathering pan), 타포니(Tafoni), 그루브(Groove), S자형 암벽면, 편상절리 등의 현상이 관찰된다는 논문을 다수 내놓았다.

토오르는 '똑 바로 서있는 석탑'이라는 뜻으로, 오랜 풍화작용에 의해 독립적인 핵석[核石·암괴미]만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속리산 여러 지형 가운데는 입경업(林慶業) 장군이 세웠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입석대'(立石臺·사진)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설악산 흔들바위, 충주 미륵리사지 공깃돌바위 등도 이에 해당하고 있다.

캐슬코피 지형의 문장대.

캐슬코피는 기반암이 풍화되어 있는 능선의 봉우리에 여러 개의 핵석들이 겹쳐서 만들어진 지형을 일컫는다. 문장대(사진)·신선대·묘봉 등이 전형적으로 캐슬코피로 형성된 지형이다.

바위가마솥는 표면의 풍화작용에 의해 암반에 비교적 커다란 크기의 풍화혈(weathering pit)이 생긴 지형을 말한다. 문장대 최상위 표면에는 20여 개의 바위가마솥(weathering pan)이 형성돼 있다. 길이는 가장 긴 것은 330㎝, 짧은 것은 30㎝ 정도인 가운데 수직 깊이는 12∼55㎝에 이르고 있다.

조선 정조대의 문인 이동항(李東沆, 1736∼1804)은 52세 때인 1787년 9월 친구와 함께 속리산을 찾아 그 감흥을 <遊俗離山記>에 남겼다. 그도 문장대 정상에 '큰 웅덩'이 있다고 언급했다.

"드디어 갓과 옷을 벗고 꺾여 휘어진 바위틈을 이용하여 위로 올라갔다. 그 바위 틈이 다하면서 바윗돌의 낯이 둥근 모양에 평평하여 마치 큰 왕골자리를 깔아놓은 듯하니 이것이 중대였다. 이 중대 위에는 또 큰 바위가 도끼로 쪼아진 듯하니 이것이 바로 상대였다. 이 상대 위에는 저절로 된 큰 웅덩이가 있는데, 여름에 큰 물이 지면 넘쳐 흘러서 물에 세 줄기로 나뉘어 흐른다."-<지암선생문집 권7>

법주사∼신선대 구간의 타포니 지형.

그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북쪽 모서리로 흐르는 것은 용화로 들어가서 괴강의 근원이 되며, 동쪽 모서리로 흐르는 것은 용유로 들어가서 낙강의 근원이 되며, 서쪽 모서리로 흐르는 것은 석문동으로 들어가서 금강의 기원이 된다."고 표현하였다.

현재 속리산 삼파수와 관련해서는 문장대가 아닌 천왕봉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학문적인 검증은 끝난 상태이다.

타포니는 암석이 물리적·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암석의 표면에 형성되는 우묵한 미세 풍화혈을 말한다. 바위가마솥보다는 크기와 깊이가 소규모인 것이 특징으로, 법주사에서 중사자암으로 가는 해발 680m의 토오르 암벽면에는 여러 개의 타포니가 존재하고 있다. (사진)

S자형 암벽면은 윗부분은 튀어나와 불록하고 아랫면은 오목한 만곡(彎曲)의 암반 지형을 일컫는다. 경업대 주변에는 S자형의 수직 암벽면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루브는 암벽 급경사면에서 관찰되는 좁고 긴 홈으로, 유수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루브 현상과 S자형 암벽면이 동시에 관찰되는 경업대 일대 지형.

경업대 일대의 수직 암반에서는 s자형의 수직 암반과 그루브 현상이 동시에 관찰되는 지형이 많다.(사진) 판상절리는 절 리가 가로로 발달했다는 점에서 S자형의 수직 암벽면과 시각적으로 대비된다.

판상절리의 간격은 팽창률의 차이로 인하여 지표에 가까울수록 좁고 깊을수록 넓어지는 특징을 보인다. 생성 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침식에 의해 하중이 제거되어 상방(上方)으로 팽창하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으로 파악되고 있다.

/ 조혁연 객원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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