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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남

음성문인협회 회원

오늘은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 중에서도 설날이나 추석 다음으로 치던 명절중의 하나인 정월 대보름이다.

요즘은 보름을 명절로 여기지도 않지만 우리 마을에는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아서인지 이날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보름 전날, 나무 아홉 짐을 하고 밥도 아홉 끼를 먹어야 한다고 해서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오르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후가 되면 오곡밥을 해 놓고 남들보다 먼저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밥을 먹여야 그 해 농사짓는데 일꾼을 수월하게 얻을 수 있다 해서 이른 저녁을 해 놓고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사람들을 불러대던 어머니의 모습은 고운 한복에 행주치마를 두른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농촌에도 집마다 기름보일러가 들어와서 나무가 필요 없으니 지게 지고 산으로 오르는 사람도 없고, 모내기하거나 탈곡을 하더라도 기계가 다 하니까 많은 일꾼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저녁밥을 지어놓고 서로 먼저 이른 저녁을 주려고 동동거리던 아낙의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다.

보름날에 새벽닭이 울기 전에 부럼을 깨물어야 한 해 동안 부스럼이 안 난다 해서 밤이나 잣, 호두, 땅콩 같은 것들을 까먹기도 했고 아침에 귀밝이술이라 해서 정종이나 약주를 먹던 기억도 있다.

그래야 귀가 밝아진다던가?

아침에 먼저 이름을 불러서 대답하는 사람에게 "내 더위 사 가" 하면서 더위를 팔면 여름에 더위를 안타고, 아침 밥상에 고춧가루가 든 음식은 삼가야 피부가 따끔거리지 않고 삼복더위를 이긴다는 속설도 있었다. 그것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냐, 아니냐를 따지기 이전에, 더위를 이기고 부스럼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는 아니었을까? 우리 민족은 한(恨)이 많은 민족이라 한다. 그래서 그 한을 노래와 춤으로 풀어낸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마을 사람들도 모이면 곧잘 가무를 즐긴다.

오늘도 서낭당 느티나무 아래서 풍년 기원제를 지내고 마을 사람 모두가 경로당에 모였다.

술잔이 돌아가고 어르신들이 취기가 오를 때쯤, 누군가 음악을 틀었다. 60~70대가 대부분인 그분들의 살아온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은데 그 얘기를 듣노라면 아주 먼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다.

일제강점기 때 남편이 징용으로 끌려가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지금까지 살아오신 할머니는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임아….'로 시작되는 한오백년만 나오면 춤사위가 더 절절해진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를 넘어서 '청춘을 돌려다오'가 나오자 다리 아프고 허리 아파서 걷기에도 불편한 분들이 흘러가 버린 청춘이 아쉬운 듯 온몸을 필사적으로 흔들어댄다. 땀인지 눈물인지를 쏟으며 흔드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왠지 내 어머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네에서 막내인 나도 분위기를 맞추려고 이리저리 흔들면서 손뼉을 쳤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이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한 다음 춤판을 마무리 지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보름달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의 모습이 보름달처럼 눈에 들어온다….

달처럼 곱던 그 얼굴이 열 한 남매를 키우시느라 주름이 늘고 늙으셨지만 언제나 내 가슴속을 보름달처럼 비춰주시는 어머니, 어쩌면 어머니도 오늘, 어머니의 젊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한이 섞인 춤을 추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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