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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남

음성문인협회 회원

봄이 오고 있다. 그러나 여느 해와 다르게 유난히 더디게 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정치가 혼란해서 느끼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매서운 바람이 물러가고, 땅속 깊은 자리에서 싹이 올라온다. 거리엔 다시 매화가 피고, 사람들은 겨울 외투를 벗는다. 그러나 정치는 여전히 겨울 한가운데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도, 헌법은 춥고, 민주주의는 위태롭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저마다의 외침으로 거리로 나섰다.

지금 대한민국은 또다시 '탄핵'이라는 단어 앞에 서 있다. 헌정 사상 세 번째로 현직 대통령 탄핵정국을 맞고 있다.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이든, 그 정당성과 결과를 떠나, 우리는 이 사태 자체가 말해주는 바를 직시해야 한다. 국회는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법치는 선택적으로 작동하며, 국민은 혼란 속에서 피로감을 호소한다. 대통령실과 국회, 법원과 검찰이 각각의 셈법에 몰두한 채, 국민의 신뢰는 갈수록 바닥을 친다.

민주주의는 아주 더디게 진보한다고 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한다. 그만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권력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 소수의 권리 보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참여와 감시 위에서 자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체감한다. 언론은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편을 들고, 행정부는 입법부를 무시하며, 사법부는 판단을 미루고 있다. 정치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할 국민은 점점 더 변방으로 밀려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겨울이 끝나길 기다리기만 한다면, 봄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땅속 깊이 언 흙이 스스로 녹지 않듯, 나뭇가지가 저절로 꽃을 틔우지 않듯, 봄은 누군가의 움직임 속에서 천천히 자란다. 농부는 얼어붙은 땅을 갈아엎고,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겨울의 잔해를 털어낸다. 그렇게 수많은 손길과 시간, 작은 떨림들이 쌓여 마침내 봄은 온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봄은 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시기를 '또 다른 봄'으로 만들기 위해선, 지금의 정치권이 진심으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자신들의 것인 양 휘두르다 결국, 국민의 이름으로 제어당하는 이 악순환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정치란 결국,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도구이지, 권력투쟁의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봄은 늘 아름답지만, 모든 봄이 따뜻한 것은 아니다. 꽃은 피지만, 그 아래 묻힌 눈과 얼음은 여전히 녹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의 우리는 바로 그런 봄 한가운데 서 있다.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차가운 긴장과 민주주의의 위태로운 호흡이 담겨 있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란, 언제나 국민의 손에서 다시 피어나는 법이다. 우리가 외면하지 않고, 묻고, 참여하고, 지켜보는 한, 헌법은 다시 따뜻해질 수 있다. 촛불을 들었던 그날의 겨울처럼, 민주주의는 때로 봄보다 더한 열기를 필요로 한다. 꽃은 피고, 사람은 깨어 있고, 정치는 책임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이 봄은 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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