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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남

음성문인협회 회원

오늘 친정집에 가서 힘없이 누워계신 아버지를 뵙고 왔다.

아니 그냥 바라만 보고 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눈뜨기도 힘들고 말씀도 안하시니 나혼자 물끄러미 바라보며 앙상하게 마른 아버지의 팔과 다리만 쓰다듬었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손을 잡으면 힘을 꽉 주시더니 이제는 그 힘마저도 소진되었나 보다.

"아버지, 또 올게요"하며 나오려하니 간신히 눈만 깜빡이신다.

'아버지를 또 볼 수 있을까?' 요즘 친정집을 나설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구순을 넘기셨으니 이제 떠나셔도 호상(護喪)이라고 하겠지만, 재작년에 친정엄마를 떠나보낸 우리 남매들은 아버지라도 조금 더 오래 우리 곁을 지켜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이맘때면 책력과 토정비결을 펴 놓으셨다.

그러면 우리 남매들은 서로 먼저 운세를 봐달라고 아버지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세가 뭔지 뜻도 모르면서 그저 놀이 삼아 그랬던 것 같다. 기억을 거슬러 보면 그 내용은 늘 상 비슷했었다.

'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것이며, 뜻밖의 성공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거나, 7,8월에 물을 조심하라' 등등

그런 운세를 받아들고는 기뻐하기도 하고, 근심에 쌓이기도 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 신의 영역이란 걸 그때는 몰랐으니까.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신 날에는 우리를 나란히 앉혀놓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워보라거나 대한민국 헌법 1조를 가르쳐주셨다.

또 정부 3부요인이 누구누구 라는 것도 알려 주셨고, 사씨남정기라는 소설을 읽어주기도 하셨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끝없이 세상 지식을 알려 주고 싶으셨나보다.

신문의 사설과 뉴스는 꼭 봐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거라며 뉴스를 할 때면 우리를 나란히 TV 앞에 앉혀 놓으셨고. 한문으로 이름과 주소 쓰는 걸 가르치기도 하셨다.

그때는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하고 싫었었는데, 덕분에 조금 더 일찍 세상사에 관심이 생긴 것 같다고 우리 남매들은 모이면 이야기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정서가 풍부하셨고, 예술가적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식들에게 다정하지도 않으셨고, 웃는 모습도 없었기에 아버지는 항상 어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가 소꼴을 베어 지게에 지고 오실 때, 그 위에 얹혀 있던 멍석딸기며, 떡보루(보리수), 깨금(개암), 으름은 두메산골 아이들에게 훌륭한 간식이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없이 사랑을 공급해주셨다.

그것이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는 걸 훗날에야 깨달았다.

'방안에 누우셔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젊디 젊었던 그 시절을 회상 하실까 아주 오래전에 떠나신 당신의 어머니, 아버지를 떠올리실까 먼저 떠나신 엄마를 그리워하실까 술 때문에 엄마 속을 썩인 걸 후회하실까 열한 남매, 1남 10녀를 위해 기도하실까'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도무지 말을 안 하시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딸을 열이나 두신 덕분에 언니들이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으니 복이라고 생각하시겠지.

나는 요즘 꺼져가는 등불 같은 아버지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

아픔과 고통없이, 두려움도 없이 평안하게 이 세상 소풍 마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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