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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삶의 양식이다 - 한용운의 '님의 침묵'

서예가 이재권 추천도서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 웹출고시간2016.03.17 18:58:54
  • 최종수정2016.03.17 18:59:00
[충북일보] 꽃은 떨어지는 향기가 아름답습니다.

해는 지는 빛이 곱습니다.

노래는 목마친 가락이 묘합니다.

님은 떠날 때의 얼굴이 더욱 어여쁩니다.

서예가 이재권 선생이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을 추천하는 남다른 연유를 듣자, 시집 중에 들어있는 '떠날 때의 님의 얼굴'이란 시가 절로 떠올랐다.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아내를 잃기 전에 만난 <님의 침묵>과 잃고 난 뒤의 <님의 침묵>은 차원이 달랐지요. 작품을 위해 써내려갔던 글의 의미가, 이제는 글자 하나하나 내 가슴에 새기듯 파고들었습니다."

나이 들어 아내를 잃는다는 것은 사랑과 동시에 오랜 지기를 떠나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배우자와의 사별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내 삶의 지반이 무너지는 듯 일순 심신을 황폐하게 한다. 평생 해로할 줄 알았던 아내의 죽음에 그는 망연자실했다.

'머리는 희어가도 마음은 붉어갑니다. 피는 식어가도 눈물은 더워 갑니다.' 한용운의 시 '거짓이별'의 내용처럼 이재권 서예가도 아내의 죽음이 거짓이었으면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갔다.

"어떻게 살든, 삶은 이어갑니다. 하지만 아내의 부재가 남긴 허망함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가 없었습니다. 늘 곁에서 먹을 갈아주던 아내였습니다. 모든 작품은 아내가 갈아 준 먹으로 쓴 겁니다. 더 이상 아내가 먹을 갈아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글씨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출근하면 늘 먹을 갈아 준비해줬다. 그러한 정성으로 그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충북미술대전 입선 8회, 특선 2회, 우수상을 수상했다. 1985년에는 외무부에서 주최한 제1회 국제미술대전에서 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내가 2005년 세상을 뜨자, 그는 붓을 꺾었다. 스스로 먹을 갈아 글씨를 써보았지만, 아무런 성취욕도 의미도 부여할 수 없었다. 그렇게 10년을 홀로 무심하게 살았다. 십여 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그는 저 세상에 있는 아내에게 그가 갖고 있는 무언가를 주고 싶었다.

"살아생전 서로 공감하던 것이 있다면 글씨가 아니었나 싶어요. 옆에서 묵묵히 먹을 갈았고, 나는 그 먹으로 작품을 만들어 갔으니까요. 글씨를 쓰는 동안 서로 무언의 대화를 늘 나눴던 거죠. 글씨를 통해 그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겁니다."

작년 12월, 전시회의 화두는 '님의 침묵'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써왔던 화제였지만, 10년 만에 붓을 잡고 써내려가는 그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새롭게 다가 온 한용운 선생의 시들을 그는 모두 외웠다. 그만큼 수없이 읽고 가슴에 새긴 탓이리라. 꽃이 저절로 향기를 품어내듯, 이재권 서예가는 막힘없이 좋아하는 시가 가슴에서 흘러나왔다.
봄 물보다 깊으니라

가을 산 보다 높으리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사랑'

님에 대한 사랑은 봄날의 깊은 바다, 강물보다 깊을 뿐만 아니라 가을 산보다 높고, 달보다 빛나고 돌보다 굳었을 것이다.

"말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를 잃고 나서 참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어요. 요즘 젊은이들에게 사랑은 책임이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군요. 한용운 선생께서 말한 <님의 침묵>은 분명 조국에 대한 사랑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내는 제게 조국이며 님이었지요."

10년 만에 다시 붓을 든 그는 맑은 화선지에 다시 시를 써내려갔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중략)…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님의 침묵'中

그동안의 절망과 고통에서 그는 '님의 침묵'에 녹아 있는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反)'의 윤회사상을 몸소 체득한 것일까. 그는 "삶에 아파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이런 희망을 주고 싶군요. 고통도 세월이 가면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다시 희망의 붓을 들고 잠시 웅크렸던 만큼 농축된 세월이 담긴 작품 앞으로 초인처럼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봄빛처럼 환희로웠다.

/ 윤기윤 기자

△이재권 서예가 프로필

-충북미술대전 입선8회, 특선2회, 우수상1회

-제4회 노동문화제 서예부문 우수상

-1985년 외무부 주최 제1회 국제미술대전 서예부문 특상

-제1회 전국서화예술대상전 서예부문 입선

-2015년 충북미술대전 초대작가전 출품

-2015년 12월 개인전

-(전)한국통신(KT)근무

-(현)광복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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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최고의 업체가 되는 것이 목표다." 장부식(58)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최고'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기업인으로서 '치열한 길'을 밟아왔다. 장 대표는 2002년 12월 동물·어류·식물성 '저분자 콜라겐 펩타이드' 제조 업체인 씨엔에이바이오텍을 설립했다. 1980년대 후반 화학관련 업체에 입사한 이후부터 쌓아온 콜라겐 제조 기술력은 그 당시 이미 '국내 톱'을 자랑했다. 씨엔에이바이오텍이 설립되던 시기 국내 업계에선 '콜라겐'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콜라겐은 인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성분으로 주름을 개선하고 관절 통증을 완화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장 대표는 '콜라겐을 녹이는' 특허를 냈다. 고분자 상태인 콜라겐은 인체에 흡수되지 않는다. 인체에 쉽게 흡수될 수 있도록 저분자화, 쉽게 말해 '녹이는' 게 기술력이다. 장 대표는 콜라겐과 화장품의 관계에 집중했다. 화장품은 인체에 직접 닿는다. 이에 콜라겐을 쉽게 흡수시킬 수 있는 것은 화장품이라고 결론내렸다. 장 대표는 "2005년 말께부터 '보따리 짊어지고' 해외 마케팅에 나섰다. 당시 어류에서 콜라겐을 추출하는 기술을 갖고 1년에 15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