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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삶의 양식이다 - 함기석 시인이 전하는 동시집' 삼베치마'

권정생 선생의 유일한 동시집
힘없는 사람들을 향한 '시인의 아픈 사랑'

  • 웹출고시간2015.11.19 15:25:27
  • 최종수정2015.11.19 19:31:57

함기석 시인

[충북일보] 기적의 도서관 한쪽 의자에서 함기석 시인은 고심 끝에 책 한 권을 꺼냈다. 마치 내 안에 있는 시(詩)의 언어들을 힘겹게 꺼내듯, 천천히 함 시인의 품 안에서 권정생 선생의 동시집 '동시 삼베 치마'가 밝은 햇살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집 '삼베치마'에는 고통 속에서 보낸 유년기에 대한 그리움, 전쟁으로 인해 흩어지고 버림받은 자들의 아픈 상처, 그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진솔하게 스미어 있다. 가난하지만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억압받고 수탈당하는 힘없는 사람들, 생명을 가진 모든 목숨들에 대한 시인의 아픈 사랑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책이다."

함기석(49) 시인을 '기적의 도서관'에서 만난 이유는 그가 이곳에서 아이들을 모아 시를 가르치기 때문이었다. 함 시인은 2006년 14회 눈높이아동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10회 박인환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2013년에는 '오렌지 기하학'으로 이형기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다. 당시 심사평을 맡았던 김언희 시인은 함기석 시인을 가리켜 '이형기 선생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이 상을 수상하기에 함기석은 차고 넘치는 시인'이라고 극찬했다.

어쩌면 세상의 잣대로 그를 논하기에 앞서, 어린이에게 매주 시를 가르치는 함 시인의 맑은 행보를 보면서, 그가 추천하는 동시 '권정생의 <삼베치마>'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시인의 감성촉수로 낸 마음 길을 따라가 보았다.
'달팽이 마을에 전쟁이 일어났다 / 아기 잃은 어머니가 / 보퉁이 등에 지고 허둥지둥 간다 / 아기 찾아 간다. / 목이 메여 소리도 안 나오고 / 기운이 다해 뛰지도 못하고 / 아기 찾아 간다. / 달팽이가 지나간 뒤에 / 눈물자국이 / 길게 길게 남았다.'

-권정생 시인의 달팽이 3
달팽이들이 기어가는 장면을 전쟁 때 피난 가는 장면과 중첩시키고 있다. 목이 메여 소리도 안 나오는 어미달팽이의 모습이 안타깝다. 어미가 새끼를 찾아가는 장면은 6.25 전쟁 때 울며불며 잃어버린 아이를 찾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함 시인은 "달팽이 지나간 자리에 길게 남은 자국이 눈물자국이라는 표현이 슬픔을 더욱 고조시킨다"며 "시대의 아픔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라고 말한다.
권정생 선생의 동시 '삼베 치마'는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어 세상에 나오게 됐다. 유품정리위원회에서 권 선생의 세간과 유품 목록을 정리하다 뜻밖에 책 형태를 띤 두툼한 원고 묶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빛바랜 낡은 책은 '삼베 치마'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한 번도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권정생 선생의 미 발표작이었다. 그것도 동화가 아닌 시였다. 이 시집은 권 선생이 직접 빨강 파랑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꾸미고, 풀을 붙여 손수 제본까지 했다.

'열다섯 전후의 어릴 적 억이랑 주야랑 내 이웃들 재미있게 여기다 적었습니다. 열다섯 전후의 어릴 적 그때의 생각은 어땠을까· 슬픈 일 기쁜 일 많았습니다.'

위의 글은 권정생 선생이 동시집 '삼베머리'의 첫머리에 밝힌 내용이다.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잡지나 동화책을 주워 읽으면서 유년기를 보냈다. 1945년 해방 후 가족들과 함께 귀국하지만 지독한 가난과 쇠약한 몸 때문에 초등학교를 1년 반 정도 다니다 학업을 그만둔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그는 부산에서 서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근근이 삶을 유지해간다. 그 후 18세 때 폐결핵을 심하게 앓고, 23살 때엔 의사로부터 3년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삶을 이어간다. 1950,60년대라는 험난한 고통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선생을 버티게 해 준 것은 문학, 특히 동시였다. 대표작 '강아지 똥'(1969년 출간) 또한 처음에는 동시로 씌어졌던 것이 훗날 동화로 개작된 것이다.

함 시인은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권정생의 작품 전반에는 전쟁이 낳은 이산의 아픔과 상처, 인간성을 말살하는 문명에 대한 반문명적 태도, 물질자본주의의 폐단에 대한 비판, 분단을 고착화하는 권력자들에 대한 저항의식이 깔려 있다."며 "이러한 주제의식을 낳은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동시집 '삼베치마'는 권정생 문학의 시원"이라고 말했다.

/ 윤기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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