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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2.20 13:44:43
  • 최종수정2014.02.20 13:44:43

이화영

음성민중연대 운영위원

지난 12일 밤 12시, 인적은 끊기고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조차 한산한 시각. 고병원성 인플루엔자(AI) 방역초소 근무를 나온 공무원들은 소독액이 얼어붙은 도로 위를 치우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 초소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닭 농장에 도착하자 '방역 중 일반인 출입금지'라고 쓰인 선간판이 진입로를 가로막았다. 농장에 들어서자 비릿하고 매캐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겨울 칼바람은 볼을 할퀴고 지난다.

농장 바로 맞은 편에는 육중한 몸집의 장비가 열기를 뿜어내며 닭을 찌고 있다. 고열로 멸균 처리하는 렌더링(rendering) 작업이다.

소형 버스로 도착한 음성군 공무원 10여 명이 현장에 투입되기 전 관계자로부터 주의사항과 작업 요령을 설명들은 후 찬 바닥에 포대를 깔고 앉아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곳은 국내 1호 동물복지농장으로 3만6천마리 닭은 AI에 감염되지 않았지만, AI 발생지를 중심으로 위험지역인 반경 3㎞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처분 명령을 받았다.

이날 밤 공무원들은 전날 동료직원 120여 명이 가스 주입 방식으로 질식사시켜 포대에 담아 놓은 닭을 렌더링 장비에 넣는 작업을 했다. 포대를 집어들던 한 젊은 공무원이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을 쳤다. 죽은 줄만 알았던 포대 안의 닭이 인기척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다. 건강한 닭은 가스를 주입해도 쉽게 죽지 않아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들의 작업은 새벽 5시가 돼서야 마침표를 찍을 수가 있었다. 휴식은 좁은 소형버스에 올라 10~20분씩 쪽잠을 자는 것이 전부였다. 낮에는 고유 업무와 씨름하고 밤에는 닭과의 전쟁을 치르는 일이 나흘 동안 계속됐다.

AI가 발생한 지자체 공무원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담당 업무 처리를 비롯해 살처분·방역초소·상황실·당직 등 이어지는 근무에 녹초가 되어 가고 있다.

급기야 지난 12일 살처분 현장에 투입됐던 진천군 공무원 정모 씨(41.7급)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정 씨는 지난 설 명절 연휴 기간인 1일 이월면의 한 농장에서 동료 공무원 24명과 함께 오리 2만8천마리를 살처분 했다. 지난 2일과 7일에는 살처분 현장과 방역초소에 점심, 저녁, 밤참 등을 배달하기도 했고 13일에는 살처분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AI 트라우마'도 심각한 문제다. 공무원들은 살아있는 동물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동물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악몽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해 스트레스는 두께를 더해가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천군지부가 지난 19일 청 내 게시판에 내건 대자보에서 "조를 편성해놓고 순서가 되면 언제든지 살육 현장으로 달려갔다"며 "결국 우리는 그렇게 동원되는 5분 대기조였다"고 비참한 심경을 토해냈다.

현장에선 '닭 잡으려다 사람 잡겠다'는 푸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AI가 발생한 지자체 공무원에게만 짐을 떠맡길 게 아니라 인근 지자체를 비롯해 경찰, 소방, 교육, 농협 등 관계기관과 사회단체의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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