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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소풍길 - 단양 소백산에서

골목길을 따라, 산길을 따라 걷는다
내 마음을 내려놓고 숲속 향기를 품는다

  • 웹출고시간2013.09.08 16:27:05
  • 최종수정2013.09.08 16:26:29
ⓒ 홍대기
시골은 어디를 가나 아름답고 정겨운 오래된 골목들을 만날 수 있다. 내 고향 역시 햇살 가득한 삼월의 어느 날 골목은 개나리 진달래꽃으로 만발하고 단오날을 전후해서는 아카시아 천지였다. 해질녘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실려 온 찔레꽃 향기는 골목과 골목을 지나 시골길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싱숭생숭하게 하고 들뜨게 했다.

ⓒ 강호생
여름에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소나무와 느티나무, 팽나무 사이로 햇살을 먹은 녹음의 싱그러움과 풀잎향내 그윽한 바람소리, 그리고 그곳의 그늘진 아늑함이 시골 사람들의 목 타는 마음을 달래주었으며 돌담 밑에는 봉숭아, 채송아 꽃이 여기저기 흩날리고 있었다. 늦더위가 계속되는 날이면 우리집 강아지 복실이도 골목길 미루나무 아래에 드러누워 숨만 헐떡거렸다. 바람에 흔들리던 미루나무 잎새도 작열하는 태양에 숨죽이던 한낮, 오직 따가운 햇살만이 마을 풍경을 버텨내고 있었다.

가을에는 소달구지에 청춘을 싣고 들녘을 종횡무진 하였으며 어른들과 함께 수확의 기쁨을 즐겼다. 겨울밤이면 애나 어른이나 아래윗집으로 마실 나가는 진풍경이 연출됐는데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치면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함께 어울려 놀았는데도 마치 오래된 손님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 손발이 시리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그러고는 각자의 마실 길을 걸어갔는데 자박자박 멀어져 가는 동네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또 보곤 했다. 그리워서, 사랑스러워서 행여 돌부리나 빙판길에 넘어지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곤 했다.

ⓒ 홍대기
꼬불꼬불 좁다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돌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다시 두 갈래 길이 나타나고 그 중 하나는 옥선이네와 상순이네, 다른 하나는 탕집 아저씨네로 가는 길. 그 길 끝에는 맑은 물과 아담한 산이 있고 늘 푸른 소나무와 복숭아, 살구가 어우러진 경치 좋은 곳이 맞닿는다.

청명하고 햇살마저 따사로운 가을의 어느 날 오후, 돌담길 사이로 널려있는 곡식이 탱글탱글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사람이나 자연할 것 없이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참으로 신비롭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늙은 호박과 조롱박이 돌담 사이로 대롱대롱 걸려있고 붉은 홍시가 익어가는 날이면 골목은 황금빛으로 넘실거렸으니 마을 전체가 거대한 풍경화 속에 풍덩 빠져버린 것이다.

우리는 알았다. 골목길에 늘어놓은 농작물만 봐도 누구네가 어떤 농사를 짓고 얼마나 잘 사는지를. 어른들은 밭과 논이 몇 마지기 되는지 땅문서를 갖고 따졌지만 우리는 가을 햇살 아래 익어가고 있는 곡식과 도시락의 반찬을 갖고 가정사를 엿보곤 했다. 눈 내린 겨울날은 골목길에 모두 나와 눈길을 쓸고 눈사람을 만들며 눈싸움을 하기도 했으며 새하얀 눈길 위로 종종종 찍혀있는 참새 발자국을 따라가는 즐거움과 아슬아슬함도 흥미로웠다. 곡식을 뿌려놓은 뒤 그 위에 삼태기를 세워놓고 골목길 끝에 숨어 한참을 기다리면 새들이 날아와 먹이를 먹었다. 우리는 곡식을 미끼로 삼았을 뿐이지만 새들에게는 그놈의 곡식이 함정이었던 것이다. 정신없이 곡식을 먹다가 삼태기를 지탱시켜 주는 나뭇가지를 건드리면 삼태기가 엎어지면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새들이 덫에 걸리게 된다. 그날, 덫에 걸린 새들은 시골 아이들의 영양식이자 간식거리였다.

학교를 갈 때도, 돌아올 때도 동무들과 손에 손 잡고, 어깨동무 하고 골목길을 따라 다녔다. 그 때마다 우리는 어깨동무 씨동무 놀이를 했다. 동무들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나란히 선 다음 어깨동무 한 채로 걸어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놀이다. "동무 동무 내 동무, 미나리꽝에 앉았다. 동무 동무 내 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 노래의 맨 마지막 '씨동무' 부분을 부를 때 모두 동시에 앉아야 하는데 앉지 않거나 늦게 앉는 동무가 정해진 벌을 받아야 했다. 골목길에서 하는 놀이가 어디 이 뿐인가. 모래 속에 한 손을 넣고 그 위에 모래를 덮은 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물 길어 오너라, 너희 집 지어줄게. 두껍아 두껍아, 너희집에 불났다. 솔이랑 가지고 뚤레 뚤레 오너라." 노래를 부르면서 자연과 하나되며 그렇게 자랐다.

ⓒ 홍대기
단양군 가곡면 소백산 가는 길은 고향의 길 같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크고 작은 마을들, 그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골목길과 논두렁 밭두렁, 산길 들길 모두 목가적이다. 산을 오르는 길이 마치 시골의 골목길과 동산을 오르듯 정감이 넘치고 콧노래가 나온다. 결코 어렵지 않다. 이마에 작은 땀방울이 모두 꽃을 피우니 세월의 뒤안길로 총총히 사라진 시골 풍경이 되살아난다. 옛 생각에 젖어 가슴 시리고 아쉽고 애틋하다.

ⓒ 홍대기
등산을 시작하기 전에 영양가마솥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주변 마을 풍경을 한 바퀴 휘돌아본다. 서두르지 말자. 이왕에 출발한 여정, 즐기고 품고 다듬어보자. 생각하니 여유롭다. 애써 허둥지둥 거릴 필요 없이 맑은 기운으로 즐거운 소풍길을 나선다.

ⓒ 홍대기
소백산의 절경은 역시 정상에 있는 주목(朱木)이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간다는 나무가 아니던가. 백 년을 사는 것도 고단하고 질긴데 이천 년을 위풍당당하게 버텨내는 주목을 보라. 북풍한설과 폭풍우와 작열하는 태양을 견뎌낸 신이로움이 느껴진다. 상처 많은 나무가 좋은 결을 갖고 있다고 했던가. 그동안 사사로운 생각과 이기와 욕망에 젖어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다. 좀 더 넓고 높게, 깊고 느리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사랑해야겠다.

ⓒ 홍대기
천년을 기다려 온 주목 앞에 서니 휘청거리며 불온하게 살아왔던 지난날이 속절없음을 느낀다. 모든 것을 비워야겠다. 바람처럼, 햇살처럼, 꽃처럼, 나비처럼 오래된 친구같은 편안함으로 세상을 살아야겠다. 한 걸음 한 걸음 여행처럼 살아야겠다.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에세이스트)

그림 강호생(화가·충북미술협회장)

사진 홍대기(사진가·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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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