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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11.07 15:57:2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김승환

충북대교수

임각수 괴산군수께서 이렇게 말했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이어, '홍명희 문학제는 괴산에서 지속적으로 개최되어야 하며, 괴산군청은 관심을 가지고 홍명희 문제를 대하겠다'라고 공언했고 경대수 국회의원께서도 이와 같은 취지의 축사를 했다. 왜 이런 특별한 발화를 해야 하는 것이고, 또 아무것도 아닌 일이 회자(膾炙)되는 것인가. 그 인과(因果)는 대략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홍범식고택'으로만 표기되어 있는, 홍명희가 태어난 집 앞에 작가들이 '홍명희 생가'라는 표지판을 세웠다. 그리고 괴산의 제월대에 아래와 같은 문학비를 건립했다.

'민족문학과 민족해방운동의 큰 봉우리 벽초 홍명희 선생(1880 ~ 1968)은 충북 괴산 인산리(동부리450-1)에서 태어나셨다. 선생은 경술국치 때 순국하신 부친 홍범식 의사의 뜻을 받들어 평생을 민족의 자주 독립과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셨다. / 중략 / 물 맑고 인정 두터운 이곳 괴산은 선생의 삶의 자취가 역력한 곳이요, 민족정신이 살아있는 역사의 고장이다. 삼가 옷깃을 여미고 선생의 뜻을 기리며 민족이 진정 하나가 되는 날을 소망하면서 여기 선생의 고향 땅에 작은 정성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 / 1998년 10월 17일, 벽초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

뜻밖에 이 비문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했다. 여러 보수단체가 홍명희를 선생으로 표기하면서 존대법을 쓴 것과 공적(功績) 위주로 기술되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리고 전국에서 수백 명이 괴산에 와서 이 비문을 철거하고 함께 경찰서로 가겠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충북민예총과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깊은 고민 끝에 그분들의 분노와 아픔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생가표지판과 홍명희문학비 비문을 자진 철거했다. 그 이유는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민족적 명분 때문이었다. 여전히 역사의 상흔(傷痕)이 한국인의 가슴과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워했음은 물론이다. 이년 후인 2000년, 우여곡절 끝에 공공기관의 조정을 거쳐 보수단체와 합의하고 문학비의 내용을 수정하여 설치한 문안이 현재의 비문이다.

벽초에 관한 사회적 문제는 그가 월북을 하고, 조선[북한]의 부수상을 지냈으며, 김일성 주석과 가까웠다는 점 등으로 압축된다. 물론 각기 다른 국가체제를 가진 한국과 조선의 이념적 대립으로 본다면 당연히 적대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일로 진정한 국민국가(Nation State)를 이루어야 한다는 또 다른 민족사적 명제로 본다면 정반대의 관점도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적대와 반목이 있는 한 통일을 이룰 수 없으므로 화해와 용서와 포용의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중도적 시각에서 우파는 좌파를 이해하고 포용해야 하며 좌파도 우파를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 이제 한국과 조선의 팔천만 민족은, 벽초 홍명희가 1920년대에 민족운동조직인 신간회(新幹會)를 이끌면서 간절히 소망했던 좌우합작을 성공시켜야 하는 것이다. 20세기의 좌우합작은 실패로 끝났지만 21세기의 좌우합작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 실패하면 한국인들은 분단체제 속에서 여전히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대하역사소설 [임꺽정]의 저자이자 독립운동가이고 언론인이었으며 교육자였던 홍명희는 해방공간인 1946년 '좌도 아니요 우도 아닌 중간적 존재'로 묘사되는 철저한 중도론자였다. 균형과 보편의 중용이 지나쳐서 때로는 우유부단하다거나 선비나 귀족의 테를 벗지 못했다는 비난을 들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를 평한 인물평은 청풍명월의 청한거사(淸閑居士)라는 상징적 묘사로 대표되고 있다. 이처럼 홍명희는 지나치거나 치우침이 없는 불편부당(不偏不黨)과 중용지도를 체현했던 지혜로운 분이었다. 원래 중도론은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표현되는 중관사상을 말하는 것이다. 나가르주나가 완성한 중관사상(中觀思想)의 본질은 진리는 어디에도 있으며 어디에도 없고, 세상은 공허한 것 같지만 공허하지 않다는 공사상(空思想)이다.

벽초 홍명희의 사상은 중도론인 동시에 중용지도(中庸之道)였다. 홍명희는 소나무에 목을 매 자결한 부친 홍범식의 유지에 따라서 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국을 떠나 조선에 정착했지만 그는 끝끝내 중도론을 지켰다. 그랬기 때문에 조선에서도 충청도 출신의 단아하고 온화한 선비로 인정받았고 존경받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홍명희는 중도 좌파이면서 중도 우파이고 내강외유(內剛外柔)한 성격이면서 중도론과 중용지도를 지킨 현대의 선비였다. 그런 점에서 충북 괴산 출신 벽초 홍명희의 사상과 정신은 민족통일에 유익하며 진보적 보편주의와 상통한다. 2012년 11월 3일, 토요일에 열린 '벽초 홍명희 문학제'에 한나라당 소속의 경대수 국회의원과 그간 보수적인 시각을 가졌던 괴산군청이 참여했다는 것은 그런 중도와 균형의 사상을 실천한 소중한 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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