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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구

전 예성문화연구회장

밤에 제법 선선해졌다. 한창 기승부리던 더위도 시간 앞에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는 자연 이치가 고맙기도 하고 흐르는 시간이 안타깝기도 하다. 한창 무더울 때, 따가운 햇살을 머리에 이고 길을 나섰다. 조령산 자락에 터만 남긴 상암사지를 찾아 보고자 했다. 일행은 나름 답사를 즐기는, 고생을 자처하는 이들이었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스스로의 즐거움을 찾는 분들이다. 오래전 안내를 받으며 올랐던 기억을 믿으며 자신만만하게 앞장을 섰다. '그저 나만 따르라' 하면서 발길을 내디뎠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분명 길이 있었는데 숲이 우거지고 잡풀이 무성해 길이 덮히고 있었다. 초입에 설치된 안내판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오른쪽, 오른쪽 하면서 길 모양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점점 가팔라지는 상황에서 무릎도 살그머니 쑤시기 시작했지만 자신만만하게 앞장 선 입장에서 약한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그저 걷는 것이었다. 나무가 울창해서 햇살은 가렸지만 땀은 온 몸을 적셨다. 이젠 길도 아닌 곳을 올랐다. 나무를 잡고, 실개천을 겅중거리면서 가다 보니 점점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막연히 이 방향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헤집고 있었다. 지쳐서 숨을 헐떡일 때, 막내가 한마디 한다. 이러다간 숲속에서 완전히 길을 잃을 수 있으니 방법은 무조건 조령산 정상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합리적인 제안에 아무 말없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간신히 나무 줄기나 바위를 안으면서 정상을 향했다. 순간 하늘이 환하니 반긴다. 조령산이라는 표식이 눈앞에 보인다. 살았다. 정신차리고 살펴보니, 무조건 오른쪽을 택한 결과로 산등선을 세 개 넘었으니 폐사지를 찾을 수가 없었던거다. 이젠 자신감도 떨어지고 내려갈 일이 아득하기만 했다. 사탕 하나 입에 물고 앉아서 펼쳐진 능선의 합창을 멍하니 바라본다. 그래도 꼰대들의 방식대로 온갖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 상암사지를 포기하고 그냥 안전하게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미끄러지면서, 누군가 매어놓은 밧줄 덕도 보면서 내려오는 중에 눈에 익은 듯한 풍광이 들어 온다. 여기다. 외침이 저절로 나왔다. 무릎 욱신거리는 것도 잊은 채 폐사지로 들어선다. 여지도서에 '上庵在公正山縣東距二十里今廢'라 기록되었다. 단원 김홍도가 연풍 현감으로 부임해 기우제도 올리고 중수도 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석축도 남아 있고 샘도 아직 있다. 터가 크지는 않았지만 앞을 보니 훤하니 조망이 좋다. 걸림이 없었다. 바위에는 '佛'자가 힘차게 음각돼 있다. 자기를 알리기 위함인지 바위 곳곳에 이름을 음각한 것이 눈에 띈다. 예나 지금이나 잘난 사람들의 이름 앞세우기는 똑같다는 생각에 풀풀 웃음이 샌다. 이리저리 살피고 공연히 땅을 헤집어 보기도 하면서 목적 달성을 즐겼다. 하산 길도 풀과 암반으로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하산길에 우리 옆을 지킨 개울물이 깨끗해서 한모금 마셔 보기도 한다. 사실 그냥 물에 들어가 놀면 제격이다 싶다. 겨우 지친 다리를 끌고 내려오니 여전히 햇살이 기승을 부린다. 산속에서 잠시나마 잊었던 한여름의 더위였다. 오는 길에 가까운 사찰을 둘러보기로 했다. 불사를 예상은 했으면서도, 70년대 초라했지만 정감이 갔던 절집이 너무 달라져서 어리둥절했다. 사시 준비하던 친구들이 조용히 공부할 곳으로 택한 고즈넉하고 아담했던 절집이었는데, 엄청나게 변해버린 광경에 등을 돌려 버렸다. 변화는 언제든 일어나는 것이겠지만 얼굴 붉힘도 없이 지나온 과거를 비틀어 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스스로를 속이고도 얼굴 붉힘없이 너무도 당당하게 곧추세우고 있었다. 꾸밈이 진실이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거짓이 역사적 사실로 회자될까 걱정된다. 와중에도 거짓임을 모두에게 외치지 못하는 소심함에 자책을 한다. 왜 세상이 이렇게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귀가 중의 차 안에서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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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