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구름조금충주 17.0℃
  • 맑음서산 18.6℃
  • 맑음청주 18.1℃
  • 맑음대전 18.5℃
  • 구름조금추풍령 19.0℃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홍성(예) 18.0℃
  • 맑음제주 21.3℃
  • 맑음고산 18.8℃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제천 17.2℃
  • 구름조금보은 17.3℃
  • 구름조금천안 17.8℃
  • 맑음보령 18.9℃
  • 맑음부여 18.7℃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반란 와중에 해프닝적인 사건도 빈발

1728년 무신란

  • 웹출고시간2015.06.25 16:04:05
  • 최종수정2015.06.25 16:03:08

조혁연 대기자

1728년에 발생한 무신란은 참가 지역과 참여 인원이 방대하였던 만큼 그 희생도 엄청났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해프닝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이인좌가 안성·죽산 전투에서 오명항(吳命恒·1673-1728)이 이끄는 정부군에 대패하였지만 경상도 지역의 반군세력은 계속 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정부군보다 먼저 이인좌의 패배 사실을 경상도 지역에 알린 알린 인물이 당시 옥천군수 임세겸(林世謙)이었다.

전투가 일어났을 때 이같은 정보는 피아간의 사기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오명항이 영조에게 그를 특별 진급 시켜야 한다고 건의했다.

"옥천군수 임세겸(林世謙)은 안성의 역적들이 무너진 뒤 즉시 영남에 이문(移文)했는데, 영남의 역적이 패몰한 뒤 그 이문이 안음(安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규획이 진실로 칭찬할 만하니, 마땅히 포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영조실록 4년 4월 26일자>

그는 한달 후 졸지에 옥천군수에서 청주목사로 벼락 출세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이인좌 반란군이 몰려오자 자기집으로 도망갔다고 체포된 인물도 있었다. 바로 당시 율봉찰방 이제겸(李濟謙)이었다.

고지도 '지승' 의 율봉역

그의 이같은 행동으로 인해 율봉역에 있었던 말과 역노들이 고스란히 이인좌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율봉찰방 이제겸(李濟謙)은 영외(嶺外)로 달아나 자기 집에서 누워 있었던 탓으로 본역의 인마(人馬)가 모두 역적에게 제공되었으니, 먼 변방으로 충군(充軍)시키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영조실록 4년 4월 29일자>

당시 분위기로 봤을 때 이제겸의 행동은 즉시 처형대상이었으나 그는 목숨을 보전하였다. 여기에는 그의 아버지 이동표(李東標·1644-1700)의 청렴성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실제 퇴계 이황의 방손이지만, '소퇴계'라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청럼했다. 영조는 이 부분 높이 샀고, 이로 인해 이제겸은 목숨을 잃지 않았다.

1728년 7월 15일. 영조 정부가 무신란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9천여명을 분무(奮武) 공신에 임명하면서 청주목 사람 이인좌가 주축이 됐던 무신란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조선시대 모든 공신녹훈 제도가 그렇듯이 분무공신도 공을 세운 정도에 따라 1등, 2등, 3등, 원종공신 등 4등급으로 나누어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였다. 1등공신에는 실제로 난의 진압을 총지휘한 병조판서 오명항(吳命恒)이 책록되었다.

2등공신에는 직접 일선에서 적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운 박찬신(朴纘新)·박문수(朴文秀)·이삼(李森)·조문명(趙文命)·박필건(朴弼健)·김중만(金重萬)·이만빈(李萬彬) 등 7인이 선정되었다.

3등공신에는 역시 반역을 토벌하는데 종사한 조현명(趙顯命)·이수량(李遂良)·이익필(李益馝)·김협(金浹)·이보혁(李普赫)·권희학(權喜學)·박동형(朴東亨) 등 7인이 책록되었다.

나머지 9천명 안팎의 인물은 명예 공신녹권만 주어지는 분무원종공신에 선정되었다. 무신란은 전국 규모의 반란사건이었으나 청주가 거점이었다. 따라서 원종공신 9천명 안에는 당시 청주 사람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듬해인 1729년 5월에는 반란군 지도자 58명으로부터 적몰한 이인좌의 전답 2백78결과 노비468명이 오명함, 박문수 등 분무공신 15명에게 돌아갔다. 조선시대 1결은 대략 3천평 정도이다.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