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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4.25 16:15:54
  • 최종수정2023.04.25 16:15:54

유태규

한국교통대 명예교수

곡우(穀雨)를 전후로 생명을 윤택하게 하는 급시우(及時雨)가 때맞추어 내리자, 산과 들에 연녹색의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4월의 아름다운 자연이 인간의 심성과 영적 순화를 위해 조건 없이 혼신의 조화와 헌신으로 세상을 바꾸어 나갈 때, 우리 삶 속의 4월의 역사는 처절하게 아프고 슬픈 상흔들로 점철되지만, 그 이면의 선명하고 숭고한 정신은 가슴속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4·3 희생자 추념일, 4·19 혁명 기념일, 모두 우리 현대사의 치유되기 어려운 아픈 역사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현대사의 이런 아픔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빨리 진전될 수 있었고, 정착될 수 있었음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련만, 국가의 돌발적인 재난과 안전에 관한 매뉴얼조차 지켜지지 않은 일상의 방심이 결국 대참사를 자초하고 말았다.

2014년 4월16일,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하지만 화면은 현장 아나운서의 다급한 멘트와 바닷속에 거꾸로 처박혀 침몰해 가는 세월호의 흉측한 모습이었다. 수학여행을 떠나며 꿈에 부풀어 있던 천사 같은 아이들이 배에 탄 채 오랜만에 흥에 겨워 잠 못 이루었을 그 시각에 갑자기 배의 침몰이 시작되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경제 선진국을 꿈꾸던 나라가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을 펼쳤지만 속수무책이었고 결국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구조에 나섰던 담임 선생님과 함께 얼음같이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오히려 끝까지 배에 남아 마지막 한 명의 인명까지 구조해야 할 막중한 책임자인 선장은 교묘하게 배에서 탈출하였다. 이 대참사는 우리 정부의 총체적인 후진국형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수백의 인명이 침몰하는 배에서 구조되거나 탈출하지 못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울분을 토하다가 출근하여 학생들의 얼굴을 보며 강의를 진행하려 했지만, 가슴은 먹먹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학생들의 표정도 마찬가지, 동생뻘쯤 되었을 아이들이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다 세상과 작별하였다는 소식에 학생들도 이구동성으로 안전 매뉴얼조차 지키지 못하는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였다.

대참사 발생 후, 5월 5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산에 희생자 집단분향소가 차려졌다. 천사 같은 학생들의 영정 앞에 서지 못한다면 영원한 죄인이 될 것 같아 어느 날 강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안산으로 차를 몰았다. 분향소 앞에 섰지만, 아이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기가 두려웠다. 천사같이 해맑고 천진난만한 표정들, 금방이라도 아빠, 엄마하고 뛰어나올 것만 같은 얼굴들, 주체하지 못하는 눈물을 흘리며 조문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추모의 글로 심정을 기록하였다.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사회에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대형 참사는 여전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2008년 중국 쓰촨(四川) 원촨(汶川)에 8급 규모의 강진이 발생하여 수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당시 원지아바오 총리는 신속하게 재해 현장을 찾아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였는데, 특히 구조작업 현장에서 학생의 유해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3번의 절을 하면서 가족들과 슬픔을 함께하였다. 원 총리는 주위에 군중들을 향해 울먹이면서 "여러분의 슬픔이 우리의 슬픔이고, 여러분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고, 여러분의 가족이 우리의 가족이고, 여러분의 자녀가 우리의 자녀이다"라는 말로 이재민들을 향해 간절한 위로의 말을 전하여 오히려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아름다운 4월의 자연은 시시각각 우리에게 요구한다. 4월 역사의 주인공으로 산다는 것은 기꺼이 내어주고 베푸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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