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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5.30 17:30:04
  • 최종수정2023.05.30 17:30:04

유태규

한국교통대 명예교수

5월은 계절의 여왕으로 군림한다. 일 년 중 가장 날씨가 좋고 청명하며, 수려한 자연환경을 과시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예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1980년 5월을 회상하는 일이 즐겁고 기쁘지만은 않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은 강원도 모 사단 군 복무 중에 발생하였다. 내무반에서 손바닥만 한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쏟아지는 긴급 속보와 뉴스는 광주에서 폭동이 발생하였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부대가 투입되었다는 장면들을 선정적으로 보도하였다. 외부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군 조직 문화 때문에 그 소식을 그대로 접하면서 광주는 폭도들에 의한 무법천지가 되었음에 치를 떨며 빨리 사태가 진압되기만을 고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대대는 1년 365일 훈련과 교육이 일상 업무였다. 그런데 갑자기 상부의 지시라며 모든 일상 업무를 중단하고 시위 진압 훈련을 받게 되었다. 단독군장에 대검까지 착검하고 진형을 갖춰서 앞으로 전진 하는 훈련은 참으로 생경하였지만 전국으로 확산하는 불법 소요가 신속히 진압되어 우리의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두 열심히 훈련에 임하였다.

한 달 여의 훈련 끝에 우리 대대는 강원도 춘천의 모 대학의 경계 업무를 인수·인계 받는 명령을 받게 되었고, 시 외곽에서 몇 주간 주둔하다가 시내로 진입하여 해당 대학에 진주하였다. 정문에는 무장된 장갑차를 배치하고, 요소마다 경비병들을 배치하여 외부인과 학생들의 출입을 원천 봉쇄하였다. 대학에 다니다가 군 복무 중인 입장에서 대학에 계엄군이 진입하여 시설을 접수하고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이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약 한 달여의 계엄군 임무가 끝나서 부대로 복귀하고 1980년 10월 만기 전역하게 되었다. 대학 3학년에 복학한 뒤 부진한 전공 학습에 몰두하던 입장인지라 현실 문제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 4학년이 되고 참으로 우연한 기회에 성당에 나가 미사에 참례하게 되었다. 당시 주임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통해 나는 최초로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에 대한 전말을 접하고 전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순수한 민주화 요구에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을 출동시켜 살육을 저지르고 정권을 찬탈한 후안무치한 정치군인들의 만행에 대해 단호하게 지적하시던 신부님의 강론은 내 가슴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광주하고 관련 없는 대학의 순수 경계 업무에만 임했던 입장이었기에 계엄군의 일원이었음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신부님의 군사정권의 만행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듣고서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후 대학원을 다니며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이는 당시 신부님의 당당하고 결연한 모습으로 신자들을 향해 정의와 진실을 전해 주시던 선지자적인 모습에 감화 받았기 때문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은 계절적으로는 화려하고 찬란하다. 그러나 지난 시기 우리의 5월은 선혈로 물들어 있다.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계엄군의 총칼을 향해 육탄(肉彈)으로 맞서면서 민주화를 요구했던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을 난사하여 시민들이 흘린 피바다는 여전히 가슴에서 가슴으로 일렁이고 있다.

광주에서 희생당하신 영령들이 구천에서 떠돌지 않고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해드리는 것이 우리가 할 역사적 사명이다. 이것은 좌우의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정파 간 당리당략도 아니다. 국가안보를 책임져야 할 군을 이끌고 거리로 나와 부모·형제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망나니짓을 자행한 정치군인들의 과오에 대한 국가와 정부의 응분 책임인 것이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수록하는 것이야말로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피 흘리신 희생자들의 숭고한 넋에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소명이다. 이런저런 구차스러운 괴변으로 희생자들을 욕보이지 말고, 영령들이 편안히 눈감고 안식할 수 있도록 5월을 참 깨우치는 오월(悟月)로 승화시켜 나가는 미래지향적으로 통 큰 역사의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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