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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서원대 교수

마흔 중반에 노안이 왔다. 나이 쉰이 넘어가니 노안에 더하여 안구건조증도 찾아오고 우울증도 만났고 키도 좀 줄어든 것 같았다. 쉰 중반까지 학원 강사, 고등학교 교사, 무직, 전임 연구원, 입학사정관, 무직, 대안학교 교사, 출자출연기관 정책연구원, 무직, 대학 교수를 거쳐 왔다.

교사 생활과 대학원을 병행하기 어려워 학위공부를 하는 동안 벌이가 시원찮았고 학위를 마치고는 잠시 무직으로 살았던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성인기 대부분을 '전문직 여성'이라는 모습으로 살아왔다.

"너 혹시 너희 나라에서 학교 교사였니?"

몇 해 전, 미국의 어느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주던 직원이 질문한 적도 있다. 같이 사범대학을 다녔던 동기들은 모두 교사 혹은 교수가 되었다. 오십대 중반의 나이가 되도록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학교의 교직원, 여교사, 여교수들이다.

육영수 여사, 이순자 여사, 김옥숙 여사, 손명순 여사, 권양숙 여사, 김윤옥 여사, 김정숙 여사. 대부분의 영부인은 변호사의 아내, 정치인의 아내로 전업주부 여성이다. 이십대 중반부터 직장에 출근하고 돈을 벌어 생계를 이어갔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또 돈을 모아 대학원을 다니고 가정주부로 이리 동동 저리 동동하며 평생을 살았던 나의 모습을 투영시킬 수 있는 영부인은 없었다.

나에게 영부인은 영(領)의 부인일 뿐이었다. 나의 생계, 나의 월급, 나의 고통, 나의 노력을 투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 영부인인 이희호 여사는 예외적인 경우다. 그러나 기독여성으로 여성계 인사였던 이희호 여사도 일하고 받는 월급으로 연금내고 보험료 내는 그런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두 해 전, 나는 소위 '프로필' 사진이란 걸 시도했다. 가까운 분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내 사진을 보고 사진을 새로 찍을 것을 권했다, 유명한 사진관에 가서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정말 놀라웠다. 내 얼굴을 실물보다 더 통통하게 만들고, 코도 세워주었다. 얼굴에서 빛이 나게 만들더니 헝클어져 삐죽 튀어나온 머리칼도 컴퓨터로 정리해 주었다. 오십대 여성이 이십대 여성으로 둔갑했다.

"이건 너무 심하니 그래도 삼십대 얼굴로 만들어주세요."

죄책감이 들어서 나는 그렇게 요청하였다. 사진 속 얼굴이 너무 예뻐서 국회의원 출마할 때 사용해야겠다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나는 내가 번 돈으로 예쁜 사진을 찍었다.

내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이들 중에서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있으니, 초등학교 친구다. 나를 제외하고는 결혼하여 살림하는 전업주부였다. 그들은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조금씩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숲 해설사, 공인중개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박물관 도슨트 등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만나던 초등학교 여자 친구는 작년을 기점으로 모두 일하는 여성이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역할은 한국 역사에서 새롭고 당연하다. (그녀와 관련된 여러 구설수는 논외로 하고) 영부인이 되기 직전까지 전문직 여성으로 '일하는' 여성이었고, 자신이 일해서 '돈을 버는' 여성이라는 점을 나는 눈여겨본다.

변호사 아내, 정치인 아내로 평생 전업으로 주부역할만 하는 것은 과거 상류층의 삶일 수 있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적은 영부인을 처음으로 보았다. 6급 주무관, 도서관 사서, 중학교 여교사, 숲 해설사, 공인 중개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출신 여성 등 코리아의 월급 받고 돈을 버는 여성이 자신을 투영하고 긍정할 수 있는 영부인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나는 김건희 여사가 우리 시대를 반영하여 영부인 역할을 새롭게 빌드업(Build-Up)하고 훌륭히 수행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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