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그리움에 사무친 수십년… 설 명절이 아쉬운 이산가족

올해 110세 맞은 진천 이창화옹
한국전쟁 당시 북 가족과 생이별
가족처럼 챙긴 적십자봉사원들

  • 웹출고시간2021.02.08 18:21:14
  • 최종수정2021.02.08 19:28:46

대한적십자사 진천이월봉사회 여점숙(여·69·왼쪽) 봉사원을 비롯한 적십자봉사원이 8일 진천군 이월면에 거주하는 이산가족 이창화(110)옹의 집을 방문해 이옹에게 한우선물세트를 전달하고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충북일보] "금강산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충북에 유일하게 남은 이산가족 이창화(110)옹은 명절이 다가오면 가슴이 시리다.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가족들과 생이별을 한 지 수십여년이 흘렀지만, 북에 남겨둔 가족들이 여전히 그립기 때문이다.

이 옹은 한국전쟁 당시 남으로 내려오면서 이북에 있는 부모와 아내, 자녀들과 생이별을 했다.

인천 백령도와 전라도를 거친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진천군 이월면에 형성된 피난민촌에 정착해 생계를 꾸려갔다.

현재 재혼한 아내와 자식들이 있으나 북에 남아있는 부모·아내·자녀들은 그의 가슴 속에 항상 남아있었다.

그가 북에 남은 가족들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던 것은 지난 2007년 7차 이산가족 화상상봉이었다.

60여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한 그는 당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이옹은 "화상통화로 (이북에 있는 형제와)금강산에서 만나자고 약속만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의 약속은 14년이 흐른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세월만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백수(百壽)를 넘은 나이가 됐다.

피난민촌에 모여 살던 이웃들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이제 남은 실향민은 이옹 혼자다.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이산가족 중 충북에 사는 이산가족도 이창화옹밖에 남지 않았다.

수십년간 그리움에 살던 이옹을 살뜰히 챙긴 이들은 대한적십자사 진천지구 적십자봉사원들이었다.

그를 50여년간 지켜본 진천이월봉사회 여점숙(여·69) 봉사원은 이옹이 항상 북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했다고 회상한다.

여 봉사원은 "가족들을 이야기할 때 가슴에 사무친 것이 있어 보였다"며 "여기 있는 가족들이 서운해할까 봐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매년 명절 때마다 이옹을 찾아간 여점숙 봉사원은 올해도 설 명절을 앞둔 8일 그의 집을 방문해 한우선물세트를 전달하며 안부를 확인했다.

이창화옹은 여 봉사원에게 "이렇게 명절 선물을 챙겨줘 고맙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여 봉사원도 "120세가 돼도 찾아올 테니 건강하게만 계셔달라"며 "건강을 잘 지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면 그리운 가족을 만날 수 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여 봉사원은 "매년 기력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항상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말했다.

/ 강준식기자 good12003@naver.com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