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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 산경탐사Ⅰ- 한남금북정맥을 가다 ⑮

추억들이 흑백필름처럼 되살아나

  • 웹출고시간2008.11.06 18:00:2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칠장사에서 바라 본 한남금북정맥. 이곳에서 한남금북정맥은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린다.

오늘(10월28일)은 청풍명월산경탐사 마지막 날이다.

감회가 새롭다. 6월 더운 여름날 속리산 천왕봉을 시작으로 장장 5개월여간 이어온 청풍명월산경탐사.

4백리(도상거리 152㎞) 산줄기 따라 곳곳에 배어 있는 선인(先人)들의 삶의 흔적을 더듬어 온 산경탐사가 드디어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한남금북정맥 탐사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이 동시에 스친다.

탐사단의 얼굴에도 묘한 감정의 일렁임이 비춰진다.

걸미고개를 출발해 안성컨트리클럽 정문을 통과했다. 클럽하우스가 보이기 시작하는 부분에서 왼쪽으로 돌아 잔디밭을 가로질러 잰걸음으로 건넜다.

노란 표식기가 달려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상쾌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향극한 낙엽내음과 흙내음이 어우러져 코끝을 기분좋게 자극한다. 크게 한번 숨을 들이마시면서 대자연에 나를 던졌다.

마치 정돈된 공원 오솔길을 걷는 것처럼 숲길은 조용하다. 골프장을 끼고 산줄기를 이어가는 만큼 가끔씩 골프장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누렇게 변해가는 잔디에서 '굿샷'을 기원(?)하는 원색 골퍼들의 모습이 조화롭다.

골프장을 지나면서 산높이가 높아진다. 다소 힘은 들지만 적당한 산오름이 주는 신선함이 그만이다. 숲속에서 들리는 새소리는 오늘따라 유난히 청아하다. 뿌듯한 충만함이 가슴가득 밀려든다.

완만한 오름을 거듭하던 산길은 어느덧 376m봉에 다다렀다.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하고 있다. 갈색 솔잎이 소북히 쌓인 산길은 침대위를 걷는것처럼 폭신하다. 가던길을 멈춰 호흡을 가다듬는다. 마지막 구간이라는 물리적 사실이 서두름보다는 느림으로 몸과 마음을 이끈다.

이제 한남금북정맥의 종착지점인 칠장산(491.2m)이 머지 않았다. 마음이 갑자기 달음질치기 시작한다. 4백리 길을 이어온 정맥의 끝지점을 어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칠장산 오르는 길은 녹녹지 않다. 100m를 넘게 고도를 높혀야 하는 만큼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멀리서 목탁소리가 끊어질듯 이어진다. 칠장산이 품은 칠장사에서 들리는 소리인 것 같다. 스치는 바람결에 실려오는 목탁소리는 오름에 지친 육신에게 편안한 안식을 가져다 준다.

드디어 한남금북정맥의 끝지점인 칠장산 바로 코밑에 도착했다. 이정표가 탐사단을 맞는다. 한남금북정맥과 한남정맥, 금북정맥 갈림길임을 알리는 이정표다.

이정표 옆에는 충북의 산악회인 레저토피아 금요산악회에서 세워놓은 한남금북정맥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5개월간 산경탐사단 안내를 맡은 산악인 김웅식씨가 한남금북정맥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결고운 충북인들의 삶의 흔적이 오롯이 배어있는 한남금북정맥 탐사를 통해 우리 지역과 자연을 더욱 사랑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그말의 의미에 마음이 움직인다. 산경탐사 내내 과연 탐사의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하던 필자에게는 마치 마음의 구름이 걷히는 듯하다.

칠장사 입구에 서 있는 수령 1천년의 은행나무.

그렇다. 바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됐다는 사실이 산경탐사 화두의 답이었던 것이다.

한참을 이 곳을 떠나지 못했다. 아니 떠나고 쉽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속리산 천왕봉을 시작으로 지나온 산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말티재, 구치, 시루산, 구봉산, 국사봉, 선두산, 선도산, 상봉재, 상당산성, 좌구산, 칠보산, 보광산, 보현산, 소속리산, 마이산, 황색골산, 걸미고개, 칠장산….

산이름이 떠올때마다 기억의 저편에 머물러 있던 추억들이 낡은 흑백필름처럼 되살아난다.

칠장산을 끝으로 한남금북정맥은 끝이났지만 산길은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이어진다. 한남정맥은 서북쪽으로 경기도 김포 문수산까지 이어지며, 금북정맥은 남서쪽으로 충남 태안반도에 있는 안흥까지 계속된다.

언젠간 그 길을 가리라 마음속에 다짐하면서 조용히 산을 내려섰다.

산죽이 군락을 이룬 산등성이를 느릿하게 빠져나와 칠장사로 향했다.

늦가을이 주는 고즈넉한 정취가 사찰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파란 가을하늘과 어울린 절집은 보는 것만으로도 안식과 평화를 주는 듯 하다. 가늘게 떨고 있는 풍경소리는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는 칠장산 자락 깊은 골까지 퍼져나갔다.

한남금북정맥은 필자의 아쉬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아무런 말이 없다. 그 위로 가을은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다.


/특별취재반

칠장사는 1983년 9월 19일 경기도문화재자료 24호로 지정됐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말사이다. 창건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10세기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1014년(현종 5)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중건했다는 설이 있다. 사찰의 이름은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일곱 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고려시대 1383년(우왕 9)에 충주 개천사에 있던 고려역대실록을 이곳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389년(공양왕 1)에 왜구의 침입으로 전소된 것을 조선시대 1506년(중종 1)에 흥정이 중건했다. 1623(인종 1)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원찰로 삼아 크게 중창했다.

1674년(현종 15) 권력자들이 장지로 쓰기 위하여 사찰을 불태웠으나 초견이 다시 중건했고, 1694년(숙종 20)에 다시 불에 탔으나 1704(숙종 30)에 석규가 대법당과 태청루 등을 지었으며, 1725년(영조 1)에 선진이 원통전을 세웠다. 1726년(영조 2), 1751년(영조 27)에도 약간 이축·증축했고 1877(고종 14)과 이듬해에 중건했다.

대웅전, 사천왕문, 원통문, 명부전, 나한전 등을 비롯하여 12동의 건물이 있으며, 혜소국사탑, 탑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혜소국사는 속성은 이씨이며 이름은 정현인데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 때 광교사 총회에게서 구법하고 17세에 영통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28세에 왕명에 의하여 대사가 되었으며, 칠현산에서 아란탑(阿蘭塔)을 세워 홍제관이라 하고 좌선하였다. 1054년 83세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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