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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의 ‘자화상’

삶의 궤적 얼굴에 고스란히 담아

  • 웹출고시간2008.10.01 20:22:3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글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아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설명하려 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대상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며 즐기는 사람은 그 대상을 삶 속에 가져다 놓고 그 속에서 함께한다는 것이다.

옛 그림들을 보면 문득 그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어떤 그림을 처음 보게 되어 그것이 눈에 들어오면 그 그림을 알기위해 자신에게 끊임없이 설명을 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그 설명조차 진부해지면 이번에는 좋아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것으로 흡족하다. 다음단계가 그 그림 속에 들어가 그림과 함께 하나가 되어 대상에 묻혀 사는 것이 일상이 된다 하는데, 아직 그런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한 것 같다. 그저 보면 좋을 뿐이다.

옛 그림이 더욱 좋은 것은 그림을 통해, 오래전 살았을 그린이의 삶을 엿보게 되고 그린이의 속내나 품성을 더듬어 내 마음대로 해석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한 미술평론가는 미술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 했다. 특히 오래되어 그린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그림이 단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붓의 한 획 한 획에 담긴 의미들을 읽어내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공재(恭齋)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종이에 수묵담채, 38.5x20.5cm, 국보240호, 개인소장). 언뜻 보면 무서운 장수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조선 초상화의 사실주의 정신에 입각해 그린, 부드럽고 고요하고 인자한 윤두서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보이는 그림이다.

그림을 읽어내는 재미가 독특하고 한번 들여다보면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림이 하나 있다. 공재(恭齋)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종이에 수묵담채, 38.5x20.5cm, 국보240호, 개인소장)이다.

이 그림은 학창시절 미술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것이어서, 아주 오래전부터 자화상 하면 마치 윤두서의 ‘자화상’이 교과서처럼 인식되어 있던 그림이기도 하다. 그 그림이 세월이 흘러 그림속의 인물과 비슷한 연배의 나이가 되고 보니 새삼스럽게 그 자화상이 자꾸만 아른거리는 것이다. 그림속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이런 모습의 얼굴만 가질 수만 있다면, 하는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그렇다고 그림속의 모습이 어질고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만은 정령 아니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림을 보고 즐기기에 앞서 그림을 알아야 하고 그림을 좋아해야 했으므로 그린이의 일생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증손자로 해남 윤선도 고택을 이어가던 종손이었다. 또한 윤두서는 다산 정약용의 외할아버지였다. 이러한 집안의 분위기가 윤두서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그는 큰아버지 댁에 아들이 없어 양자로 가 살았으며 성리학은 물론 천문, 지리, 수학, 의학, 병법, 음악, 서예 등 다방면에 걸쳐 박학을 추구했던 학자였다. 20대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조정의 당쟁이나 당파에 휩쓸려 희생되던 형님들을 보면서 벼슬에 나가지 않고 시.서.화를 즐기며 일생을 보냈다.

그는 특히 인물화와 말을 잘 그렸다. 산수화를 비롯한 일반 회화 작품은 전형적인 조선중기의 화풍으로 전통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평이다. 유작으로는 60여점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 ‘해남윤씨가전고화첩’을 비롯, ‘노승도’, ‘출렵도’ ‘백마도’ ‘우마도권’ 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외에 여러 사람들이 남긴 글에서 그의 삶과 행적이나, 그의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우선 아들 윤덕희가 아버지의 ‘행장(行狀)’를 기록한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공재 윤두서는 15세에 결혼하였는데 키가 훤칠하고 어른다운 풍도가 있었다....... 노복을 부릴 적에 위엄으로 하지 않고 덕스런 얼굴로 대하니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경하였다....... 때때로 글을 짓고 쓰는 틈틈이 뜻 닿는 대로 붓을 휘두르고 먹을 뿌리셨다. 다만 사물의 닮은 점만 위주로 하지 않았으므로 정신과 뜻의 나타남이 완연히 살아 움직여 드넓고 고상한 운치가 있었다 ....... 베푸는 것을 좋아하여 남의 급하고 곤궁한 사정을 두루 돌보았는데, ...... 자신이 입고 있던 새 옷이라도 벗어 주어 곤란 중에 내버려 두지 않았으니, ...... 세상 사람들이 심하게 가리는 당파색에 대해서 공은 홀로 마음에 맞고 안 맞음을 두지 않았으며 동인이니 서인이니 하는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으셨다. .......용모와 말씨처럼 밖으로 드러난 것이 중후하고 존엄해서 자연히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하는 마음이 일게 하였다...... 을미년 겨울에 우연히 감기를 앓다가 마침내 그해 11월 26일 백년동의 옛 집에서 돌아갔으니 향년 48세였다.

다음은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이자 윤두서와 절친했다는 이하곤이 남긴 ‘윤두서가 그린 작은 자화상에 붙이는 찬문’이라는 글이다.

여섯 자도 되지 않는 몸으로 온 세상을 초월하려는 뜻을 지녔구나! 긴 수염이 나부끼고 안색은 붉고 윤택하니, 보는 사람들은 그가 도사나 검객이 아닌가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진실하게 삼가고 물러서서 겸양하는 풍모는 역시 홀로 행실을 가다듬는 군자라고 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다.

친구의 그림을 보고 느낌을 쓴 이 글은 윤두서의 실제 풍모와 그림이 일치하고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윤두서가 자신을 표현한 그림, ‘자화상’은 이렇듯 그의 삶의 모습이나 성품까지도 가늠해볼 수 있어 보고 또 보아도 그저 좋은 것이다.

그의 그림 곁으로 다가가면 이렇다. 친구 이하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전장에 나가 군사를 호령할 것 같은 장수의 기질이 먼저 느껴진다. 벼슬도 마다하고 학자의 길을 걸으며 고향산천에서 가난한 이웃들이나 돌보며 살았을, 어질고 부드러움은 온데간데 없다.

부리부리한 눈매, 살아서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은 강열한 눈동자, 우직하고 고집스러운 둔턱한 턱선, 한 올 한 올 세어도 셀 수 있을 것 같은 세밀한 수염. 옷도 없고 귀도 보이지 않고,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져 세상을 향해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것 같은, 이 자화상이 대체 윤두서의 모습이던가 싶다. 한마디로 무섭다. 보는 이를 압도하여 빨아들일 것 같다. 화면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좌우 대칭, 위 아래의 균형잡인 구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완벽하다. 이런 느낌은 그저 한순간에 외형만을 멀찌감치 서 보았을 때의 느낌이다.

그렇다면 ‘자화상’ 안으로, 깊숙이 내밀하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의 정신이나 그의 성품이나 그의 풍모가 온전하게 다시 보이는 것이다. 눈은 다시 고적하다. 글을 많이 읽은 선비답게, 욕심을 비운 학자답게 강하면서도 깊다. 날렵하면서도 서늘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당길 것 같은 깊은 눈동자가 그대로 삼백년을 거슬러 다가오고 있다.

양쪽 볼 위로 펼치듯 그려놓은 구레나룻은 얼굴 이미지를 강조하는데 더 할 나위 없다. 수염의 한 올 한 올을 섬세하고 힘 있게 표현한 가운데, 그 중심에 모아진 듯 놓여있는 입술은 엷은 미소가 보이며 그의 우직함이나 강건함이나, 무거운 마음의 깊이가 보인다. 안경자국이나 눈 밑의 쳐진 근육은 세월의 오랜 흔적이, 연륜이 그가 살아온 길지 않은 생애가 무색하게 곱절로 내비친다.

태어난 집안의 규모에 비해 삶을 마감하기까지 어려운 여정이 많았던 윤두서다. 그가 허망하기만 한 세상을 자신의 얼굴에 담았고 그것을 그림에 담았다. 지고지순했지만 결코 화려하지 않은 그의 삶의 궤적이 얼굴에 있었고 그 발자취가 느껴지는 ‘자화상’인 것이다.

조선초상화의 사실주의 정신에 입각한 이 그림 ‘자화상’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인자하고 부드럽고 고요한 윤두서가 읽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던가.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바로 자신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그래서 많은 이들의 자화상은 곧 자기 성찰이라고 한 모양이다.


김정애 / 문화담당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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