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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4.11 13:22:34
  • 최종수정2017.04.11 14:48:03

800년의 약속 포스터.

[충북일보] 예술이 세계 장벽을 뛰어넘는 순간이다. 독일인 음악가와 베트남인 연극배우, 한국 무용가가 주연이다. 동양인과 서양인, 언뜻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얼굴 생김새나 머리 빛깔, 언어가 다르다. 어디 그뿐이랴. 역사와 문화, 삶의 시공간이 뿌리부터 다른 사람들이다. 한민족이 한 장르로 마음을 맞추어 공연을 펼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들은 국경과 장르를 초월하여 열연 중이다.

예술가는 역시 남다르다. 전 세계를 거리낌 없이 넘나들고 있지 않은가. 문화와 국가, 민족과 이념을 초월한 무대공연 예술이다. 장르가 스포츠든 음악이든 이념과 사상이 달라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민속악기 연주와 고전무용과 현대무용, 대사로 펼치는 무용극. 수준 높은 작품을 보여주고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으랴. 그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으리라.
삶의 뿌리부터 다른 이들이 모여 감동의 신화를 낳는다. 한국과 베트남 수교 25주년을 기념하는 합동 무용극, '800년의 약속'은 베트남에서 여러 번 공연되었고, 한국 초청에 서울과 안산, 청주 공연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해 전유오 안무가에게서 베트남 공연 소식을 들었고, 서울 공연 호평과 작품의 우수성을 매체에서 보았다. 만인이 인정한 작품이 궁금하여 동영상 CD를 미리 받아 보고 감동을 하여 청주 공연을 무척 기대하였다. 이런 우수한 작품을 충북 도민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800년의 약속' 공연 모습.

무용극 '800년의 약속'은 한국과 베트남 관계가 예전부터 깊은 인연이었음을 말해준다. 1226년 베트남에서 황해도 옹진까지 먼 바닷길을 떠나온 리 왕조 마지막 왕자인 리롱뜨엉(이용상)이 고려와 인연을 맺고 살아온 삶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는 도적 떼를 몰아내 마을 사람들을 도와준다. 또한,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용맹함과 지략을 앞세워 수많은 적을 물리쳐 고려에서 높은 관직을 받는다. 그의 아들 또한 높은 벼슬로 마을을 다스리게 된다. 늘 고향 땅 따이비엣과 두고 온 가족을 목메어 그리워하나, 결국 그는 영혼으로 고향 땅을 밟는다.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삶에 굴복하지 않는 그의 삶과 애환은 허구가 아닌 실화라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제2장 머나먼 바닷길 - 머나먼 바닷길-리롱뜨엉은 오랜 세월 외로움과 고난 속에서 바다를 표류한다.

관객은 숨을 죽이고 전유오 무용가의 몸짓 언어를 따라간다. 리롱뜨엉은 오랜 세월 동안 외로움과 고난 속에서 바다를 표류한다. 피터 쉰들러의 음악도 느리고 무겁다. 그녀의 섬세한 손짓과 발짓 하나에 실린 무게 또한 말할 수 없으리라. 정처 없이 떠도는 머나먼 바닷길과 왕자의 심적 고통을 실어 그 무게를 어찌 가늠하랴.

제5장 그리움 - 그리움-리롱뜨엉은 먼 바다를 바라보며 고향 땅을 그리워한다.

제5장 '그리움'에 다다라 노인의 노랫소리에 목울대가 울컥거리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저녁노을이 번지는 시각, 귀에 무척 낯익은 익숙한 목소리이다. 애절하고 구성지게 부르는 '한오백년' 노래 앞에서 무용가도 결국 무대 바닥에 쓰러져 엎드려 오열하는 듯하다. 평생을 기업 경영인으로 살아오신 구순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삼십 년이 넘도록 곁에서 수행한 사람이니 당신의 목소리를 어찌 모르겠는가. 눈물이 번져 눈앞의 무대가 흐려진다.

유년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눈물어린 회한의 춤을 춘다.

그녀의 삶을 보면 뼛속까지 순수 예술가이다. 서원대학교 무용과 교수로 재직하다 학과가 폐과되어 아버님의 권유로 베트남으로 떠난다. 그곳에 머물며 기업인으로 활약하나, 역시 그녀의 몸은 무용을 저버릴 수가 없었나 보다. 틈나는 대로 연습장으로 달려가 춤을 추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고 토로한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베트남에서 끊임없이 무용 작품을 구성하여 발표하다 '800년의 약속'을 만난 것이다. 또한, 베트남에 무용단을 창단하여 제자를 키우고 한국의 고전무용을 알리며 그들과 관계가 돈독해진다. 무엇보다 그녀는 어려운 이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성품이다. 현지인은 물론 한국인과 베트남인이 가정을 꾸린 다문화 가정의 애환을 무시로 위무하고 있다.

그녀의 삶 자체가 무언의 약속을 수행한 삶이다. 몸짓 언어인 무용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아니 또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있다. '800년의 약속'이 한국과 베트남의 오랜 인연이듯, 그녀의 따스한 숨결과 우정은 국가 간 문화 사절로 큰 역할을 이뤄낸 것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청주 공연이 감회가 깊었으리라. 청주 시민들도 이에 화답하듯 1500여 석의 좌석이 매진되어, 빗속을 뚫고 온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자 아우성이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화답인가.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저녁에 무용극 각 장마다 울려 퍼진 관객의 힘찬 박수 소리가 천 리, 만 리…예전 망명을 떠났던 수만 리 뱃길이었던 베트남까지 닿았으리라. 베트남은 이제 하루 만에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이번 공연으로 많은 사람이 가슴에 간직한 약속을 거울처럼 꺼내 보며, 한국과 베트남이 이미 이웃이었다는 걸 깨우치리라.

태초에 인간의 뿌리는 하나이다. 여러 국가로 나뉘어도 변함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갈 운명 공동체이다. 방금 일어난 사건이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어느 곳에서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소식을 접한다. 인종차별로 총질이 난무하고, 보이지 않는 질시로 상처 입은 이웃을 보면 우리는 누구나 가슴 아파하고 슬퍼한다. 정녕코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내 모습과 다르다고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조력자로 끊임없는 응원이 필요하다.

예술은 어떠한 고통도 극복할 수 있는 감성을 선물한다. 우리는 혼을 실은 무용가의 몸짓 하나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기운은 딱딱한 가슴을 물렁물렁하게, 마음은 순수 정화되어 동족을 죽이는 비극과 전쟁은 사라지리라. 한국 땅에 머무는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이 되는 뜻깊은 공연이다. 온몸으로 쓴 그리움의 시(詩), '800년의 약속'은 가슴에 두고두고 남아 울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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