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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통일돼 지사들 魂 위로했으면"-오상근 광복회충북도지부장

"일본, 과거 잘 못 인정하고 사과하길"-윤금례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 웹출고시간2007.08.14 21:27:1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저희 광복군들은 오로지 대한독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남북이 갈라진 현실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하루빨리 통일돼 광복군들의 노고와 작고하신 애국지사들의 영혼을 위로했으면 합니다.”

지난 1944년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 입대 임시정부 요원들의 경호와 가족들의 안전 등을 위해 헌신한 오상근(85.진천읍)광복회충북도지부장은 오로지 대한독립을 위해 희생한 김구 주석과 애국지사들은 물론 동료들을 생각하며 회상에 젖는다.

오 지부장은 지난 1922년 1월25일 진천군 백곡면 성대리에서 전형적인 농사꾼인 부친 오태영(작고)씨의 4남2녀중 3남으로 태어나 백곡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충북도농도실천소를 1년수료한뒤 지난 43년 6월 일본군 징병 제1호로 일본군으로 끌려갔다.

일본군에 끌려간 오지부장은 같은해 11월 일본군을 가까스로 탈출, 조국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 중국 중경시 터교에 위치한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 입대 임시정부 요인들의 경호과 그가족들에 대한 안전 등을 담당했다.

“당시 김구 주석을 가까이 모시고 있다는 것이 우리 광복군들은 큰 자부심이였고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광복군들은 조국독립을 위해 싸웠으며 목숨을 아끼지 않으셨지요. 지금도 김구 주석의 독립을 위한 애처로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당시를 회고 한다.

아울러 오지부장은 “목숨을 걸고 오로지 대한독립을 위해 싸우는 광복군에 입대하기 위해 중국 규향에 위치한 일본군대를 탈출 수백키로 떨어진 곳을 수개월 걸어서 먹지도 못하고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동료 5명이 함께 탈출을 시도 수차례 죽을 고비와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 너무 힘들었지만 광복군에 들어간다는 희망에 어려움도 몰랐다”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견디었는지 꿈만 같다.”고 말한다.

오 지부장은 해방이되고 지난 1953년 진천군청에 입문 농림과장 식상과장과 음성군청 문화공보과장을 거쳐 지난 76년 교육행정으로 전환, 진천농고 광혜원중고 진천중학교 서무과장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86년 6월30일 정년퇴임했다.

이후 진천신협 이사장, 유도회진천군지부장을 역임하고 지난 2002년 광복회충북도지부장을 맡아 광복회원들과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

오지부장은 그동안 대통령표창과 충청보훈대상, 90년12월20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상했다.

오 지부장은 20여년을 넘게 중풍으로 고생한 부인 김학유(작고)씨를 돌보며 슬하에 1남3녀를 훌륭히 키웠고 현재는 진천읍 교성리에서 홀로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생활하고 있다.
진천 / 손근무 기자
“나라를 잃는 아픔을 두번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젊은이들이 학교나 직장에서 맡은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최근 미국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며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도내에도 8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있는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937년 16세 꽃다운 나이로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던 윤금례 할머니(86.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경상남도 상주가 고향인 윤 할머니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징집돼 일본군의 성노예로 2년여간 치욕스런 생활을 겪고 모국으로 돌아왔다.

18세의 어린나이에 충주시 수안보면이 고향인 남편과 결혼해 그 곳에 신혼집을 차렸지만, 결혼 10년만에 남편은 9살,6살이던 두 딸과 태중의 막내를 남겨둔 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비단장사와 음식장사, 구멍가게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않고 뛰어들었지만 여자의 몸으로 한 가정을 꾸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위안부 생활을 할 때 얻은 온갖 병이 합병증으로 돌아와 할머니의 몸을 괴롭혀 병원을 전전해야했다.

윤 할머니의 큰 딸 김화자(66)씨는 “어린시절 어머니와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이 ‘50세까지 사시기도 힘 들 정도로 몸이 많이 약해지셨다’고 말하곤 해 어머니께서 돌아가실까봐 늘 마음을 졸이며 살아왔다”며 “어머니는 평생 약을 입에 달고 사시는데 밤에는 수면제를 드셔야만 깊은 잠에 드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윤 할머니의 동생 윤순임(82?청주시 상당구 내덕동)할머니도 ‘일본군 위안부’라는 가슴아픈 이름표를 달고있다.

4자매중 첫째인 윤금례 할머니와 둘째인 윤순임 할머니는 각각 16세, 12세되던 해에 일본으로 끌려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슴에 새겨야 했다.

윤금례 할머니는 현재 혈압과 심장병으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데 최근 노환으로 청력과 기억력에 손상이 왔으며, 윤순임 할머니도 최근 복부에서 종양이 발견돼 정밀검사를 받기위해 서울에 머무르고있다.

윤금례 할머니의 딸 김씨는 “방금들은 이야기도 잘 잊어버리시는 어머니가 TV에 위안부 관련 방송이 나오면 눈물을 흘리며 속상해 하신다”며 “최근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일본의 공식 사과 결의안이 채택된 것으로 아는데 하루빨리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홍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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