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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 화백 탄신 100주년 - 그의 작품세계

전통과 현대 접목한 '한국화의 巨木'
화조화·영모화·신선도·미인도 등 평생 다양한 작품 시도
소박하고 힘찬 화풍…독보적인 예술세계 구축

  • 웹출고시간2013.07.18 16:36:5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2. 운보의 작품세계와 변천

산사

운보 김기창(1914∼2001) 화백은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이겨낸 한국미술의 거목으로 평가돼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생전,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각종 상을 휩쓸며 금관문화훈장까지 받았으나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인사로 분류한 뒤 교과서에서 자취를 감추는 등 친일파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본화부 추천작가는 물론 전쟁이 한창이던 때 각종 친일매체에 삽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해방이후 미술계 중심에서 잠시 배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운보는 다시 화단의 중심에 섰고 그 중심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구 만원권과 신권

ⓒ 한국은행
그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1만원권 세종대왕'일 것이다.

1975년 한국은행의 요청으로 1만원권 지폐에 들어갈 세종대왕 초상을 그리게 되면서 그 그림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1만원권 지폐에 들어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우리는 늘 일상에서 운보의 그림을 접하고 있는 셈이다.

운보는 평생 다양한 화풍을 시도했다. 예술적인 표현은 어느 하나로 집약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다.

2만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작업량과 화조화, 영모화, 신선도, 미인도, 문인화, 수묵산수, 성화, 반추상, 추상, 민속화, 청록산수, 바보산수, 문자도 등 넘나드는 광범위한 작품이 그의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문자도

소박하고 힘찬 화풍을 특징으로 동양화와 서양화의 기법을 혼합해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운보의 끊임없는 실험정신은 한국화의 고루한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궤도에 올려놓는 계기가 됐다.

그의 작품에서 한국화의 현대화된 모습은 1950년대 초반 '구멍가게' '타작마당' '복덕방'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이후에도 해체와 종합을 시도해 1950년대 후반 '군마' '투우' 시리즈에서는 폭발하는 내면의 에너지를 담아 힘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운보의 작품에서 1970년대 초에 선보인 '바보산수' '바보화조'는 조선시대의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통 계승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운보 작품의 변천과정

△1914~1959 : 유년시기·배양의 시기

선전시기로 일본화풍의 사실적인 경향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당 김은호 문하에서 구상적이고 문학적인 훈련을 거친 시기.

△1946 : 조형의식 변화·외색 탈피

몰선채화의 도안풍 채색화와 몽롱체의 일본적 감성을 탈피하고 운필의 자유로운 구사를 통해 필선이 만들어 내는 구성의 세계를 이끌어 냄.

△1950 : 간명한 구성적 방법

힘에 넘치는 필세와 수묵의 간결한 표현에서 독특한 구성 체계가 뚜렷한 성과로 등장. 그의 문학적인 취미가 작품세계의 중요한 배경이 돼 '정청' '엽귀' '고담' 등을 제작하게 됐고 이후 탄탄한 사실력을 바탕으로 해학과 익살이 반영된 작품을 구사하는 토대가 됐다.

△1960~1975 : 시·공간의 변화

해방과 함께 제기되는 탈 일본화의 바람과 함께 채색 위주 몽롱체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서구적인 회화의식을 수용한 형상의 해체를 통해 과도단계의 경향을 구사하게 됐다.

△1962 : 추상세계로 몰입

아내 우향과 함께 작업하면서 완전한 추상의 세계로 진입. 거대한 스케일로 진일보해 수묵화에서 운필이 주축이 되는 동물그림을 제작했다. 이 즈음에 본인이 잠시 신문사에서 근무한 경력을 지니고 있어서인지 어느 누구보다 많은 신문삽화를 그렸다.

△1966 : 다원화 시기

'태양을 먹은 새' '잠동' '불사조' 등의 앵포르멜적인 작업과 청록산수에 대한 실험적인 경향을 동시에 선보인다. 유럽·미국을 비롯한 세계여행에서 체득한 동양화의 현대화라는 당면과제를 재인식하는 시기로 1975년의 바보회화 창출이라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1976~1983 : 바보 산수화로의 귀결

남경화랑 전시를 기점으로 산수와 화조등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조선시대 후기 민화적 기법과 사상적인 근거를 현대화 하는 작업에 몰입. 민화, 풍속도가 주류를 이뤘다.

△1983~1993 : 자연회귀의 도가적 사상구현

1980년대에 들어 운보의 화풍 시기는 바보회화 시리즈를 다양하게 진전시켜 가면서 화조와 문인화풍의 작업을 구사 실험적 창작 정신을 발휘했다.

/ 김수미기자

김재관 작가가 말하는 운보의 작품세계

한국현대미술의 중진작가로 국내 최초 미술학 박사를 취득(1996년)한 김재관 쉐마미술관 이사장은 운보를 "한국화단의 유일무이한 독보적인 화가"라고 평했다.

다섯 살 때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기 시작한 운보는 8세에 보통학교에 입학하던 당일 불행하게도 고열에 의한 청신경 마비로 후천성 귀머거리가 된다.

어머니의 권유로 17세 때 당대 최고의 동양화가 이당 김은호 화백 슬하에서 그림을 배운지 반 년 만에 선전(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며 미술계를 놀라게 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이당 김은호 화백의 영향과 잠시 일본 유학 시 일본인 스승 시즈사와 겐게즈(失澤弦月)와 노다 구보(野田 九浦)의 지도를 받은 적이 있으나, 대체로 운보 자신의 천재성에 의하여 개척되었다고 할 만큼 그의 작품세계의 변천은 독보적이다.

해방 이후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독자적 화법과 양식의 변천과정을 만들어낸 화가는 운보가 유일할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청록산수, 바보산수, 걸레추상화는 그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대변할 뿐만 아니라 한국 근ㆍ현대 미술사에 가장 빛나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장르의 경계를 떠나, 인물화, 영모화, 산수화, 풍속화, 문자도, 점과 선의 심상시리즈 등 모든 화재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한국화단의 유일무이 한 독보적 화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서양미술에 비교한다면, 청록산수는 근대미술을 상징하는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에 비견할 수 있으며, 바보산수는 선 원근법을 해체시킨 입체파 회화에 버금가는 것으로, 걸레 추상화와 점과 선에 의한 심상도(心像圖)는 서구 현대미술의 추상표현주의와 비견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장엄한 예술세계라 할 수 있다.

*김재관 작가는?

현재 쉐마미술관 이사장으로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쌍파울로국제비엔날레에 한국대표, 2008년 서울시립미술관이 선정한 한국미술50년사에 가장 우수한 추상미술화가(작고작가 포함) 44인에 선정됐다.

배우 이정재·전도연 주연의 영화 '하녀'에서 극중 저택 거실에 'Relation ship-Control & Deviation 95-V'와 'Personalities 02-402' 등 다수의 작품을 걸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김수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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