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각(麒麟閣)이라는 중국 음식점 이름을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래 의미의 기린각은 음식과는 관련이 없다. 중국 전한 때의 황제인 무제(武帝·BC 156~BC 87)가 장안에 기린각이라는 누각을 세웠다. 그후 선제(宣帝·BC 91~BC 49) 황제는 11인의 공신상 그림을 기린각에 걸었다. 이때부터 기린각은 입신양명을 상징하게 됐다. 조선 중종대의 인물로 박영(朴英·1471∼1540)이 있다. 그는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宣傳官)에 오르는 등 전도가 양양했으나 어떤 이유에서 인지 기린각이 되는 것을 꺼렸다. 선전관은 임금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던 직이었다. 그는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이를 핑계로 낙향, '송당'(松堂)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유유자적했다. '사신은 논한다. 박영은 선산 사람이다. 소시 적에 무예를 업으로 삼아 무과에 올랐다. 그리고 유학의 서적을 통달하고 낙동강 가에 집을 지어 살며 영화와 복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일찍이 남쪽 변방에 장수로 나가서 시를 쓰기를, 투구 쓰고 갑옷 입은 왕손 늙어가네 기린각에 이름 오르는 것 마음에 없어…'- 그는 태종의 맏아들인 양녕대군(이제)의 외손자이기도 했다. 인용문의 '왕손'이라는 표현은 그래
조선시대에는 삼금이 존재했다. 송금(松禁), 우금(牛禁), 주금(酒禁)이 그것이다. 이중 금주령은 흉년 때 곡식 절약이 주목적이었으나 적용 범위는 일정하지 않았다. 사신 접대용, 혼례용, 약용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했다. 술을 점잖게 이르는 말인 '약주'는 여기서 유래한 표현이다. 이밖에 겨울 추위가 심할 때는 체온유지 등을 위해 금주령을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관련 내용이 실록에 등장한다. "수원 부사 김사원(金嗣源)은 술을 많이 장만하여, 장례(葬禮)에 모인 재상에게 주었으므로, 본부에서 바야흐로 국문(鞫問)하는데, 이제 관찰사 김양경(金良璥)이 아룀에 따라 국문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사헌부에서 차자(箚子)를 올린 것으로, 뒤에는 "김양경이 금주령에 관한 규정을 어겼으니 파직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뒤따른다. 이에 성종은 "무리를 지어 술을 마셨다면 워낙 죄가 있겠으나, 비바람이 일던 날에 늙은 재상에게 술을 주었는데 무슨 안될 것이 있겠는가. 그것을 말하지 말라"며 감양경을 감싼다. 인용문에 등장하는 '차자'는 일정한 격식을 갖추지 않고 사실만을 간략히 적어 올리던 상소문을 일컫는다. 김양경은 상주 사람이나 우리고장 충청도관찰사를 오래 지냈다. 사료
부역은 국가나 도로 등 공적인 사업을 위해 보수없이 국민에게 노역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부역은 획일성을 지니면서 곧잘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했다.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자마자 이 부분의 개선책을 직접 언급한다. '환과고독(鰥寡孤獨)은 왕정(王政)으로서 먼저 할 바이니 마땅히 불쌍히 여겨 구휼해야 될 것이다. 소재 관사에서는 그 굶주리고 곤궁한 사람을 진휼(賑恤)하고 그 부역(賦役)을 면제해 줄 것이다.'- 인용문 중 '환과고독'은 맹자가 처음으로 언급한 표현이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왕도정치(王道政治)에 대해 묻자 맹자는 이렇게 답한다. "늙어 아내 없는 이를 홀아비(鰥), 늙어 남편이 없는 이를 과부(寡), 늙어 자식이 없는 이를 외로운 사람(獨), 어리고 아비 없는 이를 고아(孤)라고 합니다.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은 천하에 궁벽한 백성들로서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일반어가 된 고독은 사실은 가족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것이 발전해 '몹시 외롭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실록에 한 신하가 부역과 관련된 상소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장령 곽은(郭垠)과 헌납 양면(楊沔)이 아뢰기를, "날씨가 추울 때에 수리도감(
대곡 성운(成運·1497~1579)은 본래 한양에 거처하고 있었으나 형 '우'가 을사사화의 참화를 당하자 우리고장 보은을 찾았다. '공(성운 지칭)은 나면서 아름다운 자질이 있었고 일찍이 세속의 그물을 벗어났다. 그 형 우(禹)가 을사사화에 비명으로 죽으니, 이로부터 더욱 세상에 뜻이 없고 속리산에 은거하였다. 시가 그 인품과 같아서 한가롭고 아담하여 서호처사(西胡處士)의 운치가 있으니…'- 속리산을 찾은 성운이 마냥 은둔만은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시문집에는 거유 조식(曺植·1501~1572) 등과 교유한 흔적이 많이 나타난다. 다음은 조식에게 보낸 한시 한 수다. '높은 기러기 날개 치며 남쪽 향해 날아가니(冥鴻矯翼向南飛) / 때는 바야흐로 가을 바람 낙엽질 때라(正値秋風木落時) / 땅에 가득한 벼와 기장을 닭과 오리는 쫓아다니지만(滿地稻梁鷄鶩豚) / 푸른 하늘 구름 밖에서 스스로 기심을 잊네(碧天雲外自忘機)'- 익히 알다시피 그의 대표 문집은 대곡집(大谷集)이다. 그러나 이 문집은 성운 자신이 완성한 것은 아니다. 사연이 다소 깊다. 아들이 편집에 나섰으나 완성하지 못했고, 그 손자대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됐다. 성운은 아들이 없었다. 그러자 그는
청원상주 고속도로를 상주 방향으로 타고가다 보면 보은 삼승면에 이르러 오른쪽 방향으로 우뚝 솟은 산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속리산과 구병산 사이에 위치하는 금적산(金積山·652)이다. 세간에서는 보은군의 최고봉인 천황봉(1,058m)을 '지아비산', 구병산을 '지어미산', 그리고 금적산을 둘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뜻으로 '아들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 정상에는 봉수대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 봉수대는 옥천 청산의 박달라산에서 받은 신호를 북쪽의 용산점 봉수대로 전하는 역할을 했다. 현재 봉수대 흔적은 많이 사라지고 주변에 송신탑이 위치하고 있다. 학문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이른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자신의 인격 수양을 위해 학문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논어 헌문 편은 위기지학이 무너진 풍토를 한탄하고 있다. '옛날의 배움은 자기를 위한 것이었다(古之學者爲己). 요즘의 배움은 남을 위한 것이 되고 있다.(今之學者爲人)' 조선시대 때 위기지학에 충실했던 인물의 한 명으로 명재상 황희(黃喜·1363~1452)가 꼽히고 있다. 그는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주위로부터 두루 존경을 받았다. 실록에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 '이황은 타고난
조선시대 시문선집의 대표적인 것으로 동문선(東文選)이 있다. 서거정이 대표저자로 시(詩)가 4분의 1이고 나머지는 문장이 차지하고 있다. 이것 외에 이름이 같은 2개의 동문선이 별도로 존재하고 있다. 1518년(중종 13)에 신용개(申用漑), 김전(金詮), 남곤(南袞) 등이 편찬한 것과 1713년(숙종 39) 송상기(宋相琦) 등이 편찬한 것도 전해져 오고 있다. 따라서 서거정의 것을 '정편 동문선', 신용개의 것을 '속동문선'(續東文選), 송상기의 것을 '신찬 동문선'으로 구별하여 부르기도 한다. 책이름을 동문선이라고 한 것은 중국의 '문선'(文選)을 따랐다는 뜻으로, 목차도 그것에 준하고 있다. 동문선은 관료·귀족의 미의식에 맞춰, 이른바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의 화려하고 숭엄한 문체로 쓰여진 것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따라서 철저하게 상층 지배층 중심의 시문을 의식적으로 실었다. 교서를 보면 조선시대 역대 왕들도 이 문체를 선호했다. 우리고장 출신으로, 동문선에 시를 남기고 있는 인물로 정수곤(丁壽崑·1452∼1486)이 있다. '찬 하늘의 짧은 해가 가벼운 북을 던지듯(寒天短日擲輕梭) / 나그네는 출새가를 길게 읊조린다(客子長吟出塞歌) /(…)/ 10년의
이긍익(李肯翊·1736~1806)이 지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은 방대한 규모로 유명하다. 59권 42책으로, 저술 기간만 30년에 이르고 있다. 그는 부친 이광사 유배지인 신지도(薪智島)에서 42세 때부터 저술하기 시작하여 타계할 때까지 이 책에 매달렸다. 특히 그가 추구했던 객관주의 역사 의식은 지금도 사계의 표본이 되고 있다. 그는 역사 저술의 기본 태도로 '술이부작(述而不作)'을 견지했다. 서술은 하되 작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흔히 연려실기술에는 야사 모음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이긍익은 수집한 각종 야사를 글로 남기되 반드시 출처를 명기했다. 그러나 자신의 주관은 하나도 첨가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술이부작'이다. '연려실'은 그의 서실(書室)이름으로, 중국 한나라의 유향(劉向)이 옛 글을 교정할 때 명아주 지팡이에 불을 붙여 방안을 밝게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이긍익은 우리고장 청원 문의의 덕천사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덕천사우(德川祠宇) 숙종 갑술년에 세웠다. 유희령 호는 몽암(夢庵)이며 호조참의를 지냈다. 유흥룡 호는 숙옹(塾翁)이며 감찰을 증직하였다. 우신언 호는 묵재(默齋)이며, 찰방을 지냈다. 정응창 호는 유항(柳
조선시대 임금 중 재위 기관이 가장 짧았던 인물은 인종(仁宗·1515∼1545)이다. 임금이 된지 8개월만에 병사했다. 야사에 계모 문정왕후(1501~1565·명종의 생모) 독살설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어느날 인종이 문정왕후가 거처하고 있는 대비전을 찾았다. 이때 그녀가 그에게 떡을 건냈고, 인종은 이를 받아 먹은 후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못가서 숨을 거뒀다는 것이 독살설의 전모다. 인종은 재위기관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묘사화 때 희생된 조광조, 김정 등을 복원시키는 등 친사림파적인 정책을 많이 펼쳤다. 인종의 친사림파적인 정책에는 성균관 유생들의 상소도 많이 작용했다.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성균관 유생들에게는 여론정치의 일환으로 상소권이 주어져 있었다. 이와 관련, 당시 유생들은 세번의 상소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 격정적인 내용이 자뭇 인상적이다. '아아, 하늘이 장차 사문(斯文)을 망하게 하려고 합니다. 조광조처럼 어진 사람이 있어도 억울하게 죽었고 (…)신들은 땅에 엎드려 마음 아파하면서 천심(天心)이 마침내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도(道)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조광조 한 사람이 죽자 온 세상이 취제하여 곧고 바른 말과 행실
이준경(李浚慶·1499~1572)의 광주이씨 가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심한 부침을 겪었다. 이준경의 증조부 이극감은 무오사화와 간접적인 관련이 있다. 간신 유자광이 조의제문을 밀고할 때 그는 그의 직속 상사였다. 이준경의 조부는 세좌(世佐)다. 그는 인수대비가 며느리 폐비윤씨(연산군 생모)에게 사약을 내릴 때 형방승지로서 이를 운반했다. 연산군이 가만둘리 없다. 그는 거제도로 이배되던 중 지금의 경남 사천에 이르러 자살 하명을 받고 스스로 목을 맸다. 이준경의 부친은 수정(守貞)으로, 그를 포함해 4명의 아들이 연좌법에 따라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러자 당시 사관이 이렇게 적었다. '왕이 이씨종친(광주이씨)이 강성한 것을 근심하여 모두 없애 종자도 남기지 않으려 하였다'- 이수정은 슬하에 윤경(潤慶)과 서두에 언급한 준경 등 두 아들을 뒀다. 이들도 연좌법에 따라 우리고장 괴산으로 유배됐다. 이들의 괴산 유배생활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실각하면서 자유의 몸이 됐고, 이후 충주의 사촌형 이연경(李延慶) 밑에서 수학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벼슬길에 나간 이준경에게도 첫 시련이 찾아왔다. 1549년 그는 충주 이홍윤 역모사건과 관련해 우리고장
우리나라 상례(喪禮)는 생각보다 복잡한 면이 있다. 문상(問喪)은 타인의 상사(喪事)에 대하여 슬픈 뜻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조문(弔問), 조상(弔喪)도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밖에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상례 중의 하나로 '심상'(心喪)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상복을 입지 않은 채 마음으로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스승을 위한 상례였으나 재가한 어머니 또는 계모, 적모(嫡母)를 위해 할 수 있다. 적모는 자신을 낳지 않았으나 법적인 어머니를 말한다. 조선시대 때 '심상' 때문에 목숨을 잃은 고위 관료가 있다. 매우 유능한 관료였으나 연산군이라는 시대성을 잘못 만나면서 뜻을 펴지 못하고 중도에 목숨을 잃어여만 했다. 정성근(鄭誠謹·?∼1504)이라는 인물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성근은 승지에 오르는 등 성종의 은혜를 입었고, 따라서 그가 승하한 이후에도 심상의 자세를 가졌던 모양이다. 조선의 국시가 유교인 만큼 이는 어찌보면 칭찬받을 일이다. 그러나 연산군에게는 이같은 모습이 달리 보였던 모양이다. 생모 폐비윤씨의 죽음과 관련해 연산군의 가슴 속에는 항상 아버지 성종에 대한 증오의 마음이 쌓여 있었다. 실록 곳곳에서 그런 흔적이 발견된다. 성종
오늘날 간통은 결혼의 파기, 즉 이혼을 전제로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성립한다. 조선시대 때는 부부 상호간의 고소 여부와 관계없이 적발 즉시 처벌 대상이 됐다. 이때 부인이 간통을 저질렀다면 그 부인과 간부(姦夫)는 곤장 90에 처했졌고, 또 흥분해서 간통 현장에서 부인과 간부를 죽였다 해도 비난 대상이 되지 않았다. 남녀 차별적 요소도 많아 남편이 다른 여자와 정을 통했다 하더라도 그 여자가 혼인한 여자만 아니라면 첩으로 삼으면 그만이었다. 반면 여성들에게는 평생의 족쇄가 채워졌다. 특히 양반 부녀자들의 경우 '자녀안(恣女案)'이나 '유녀적(遊女籍)'이라는 것에 이름이 올라 평생 간음한 여성으로 낙인 찍히거나 관노비가 돼야 했다. 이처럼 조선 정부는 간통을 개인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했다. 얼마전에 민발(閔發·1419∼1482)이라는 인물을 소개한 적이 있다. 1469년 남이옥사가 일어났다.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 未平國), 바로 그 사건이다. 이때 민서(閔敍)라는 인물이 주살됐고, 그의 아우가 바로 민발이다. 그도 연좌제에 의해 극형에 처해질 위기를 맞았으나 충주로 유배되는 선에서 마무리 됐다. 그는 세조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계유정난 때 수
'독대'(獨對)는 임금과 신하의 은밀한 만남이었기 때문에 자주 문제가 됐다. 문장가로 유명한 변계량(卞季良·1369~1430)이 상소를 올린다. "옛 제도에 따라 4품 이상으로 하여금 날마다 차례를 돌려 대답하게 하시어 더욱 말할 길을 넓히시어, 아랫사람의 심정을 다 아룀으로써 신하의 사특하고 정직함을 살피시면 매우 다행이겠나이다."- 변계량이 건의한 것은 독대의 반대개념인 이른바 '윤대'(輪對)였다. 윤대는 글자 그대로 문관은 6품 이상, 무관은 4품 이상의 관리가 임금 앞에 나아가 직무에 답변하는 것을 말한다. 윤대는 임금의 근무 강도를 고려해 하루 5명을 넘기지는 않았다. 연산군 때 한 신하가 윤대에 나아갔다. 얼마전에 강원도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연산군 시절에도 비슷한 폭설이 내렸던 것 같다. '윤대를 받았다. 내섬시부정 박삼길(朴三吉)이 아뢰기를, "(…) 강원도에 한 길 이상의 많은 눈이 내려서 노루·사슴들이 한 곳에 모여 서서 많이 굶어 죽었고 살아 남은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박삼길의 윤대는 계속 된다. 아래 인용문에 나오는 '여수'는 군대의 우두머리를, '패두'는 인부 열 사람의 우두머리를 일컫는다. 지금 식으로 표현하면 노가다 십
[충북일보]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손님이 연이어 들어선다. 혼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오늘 저녁을 위해 포장하는 손님, 선물용으로 예쁘게 포장해달라는 손님, 내일 점심 포장을 예약하는 손님도 있다. 포장하는 메뉴도 다양하다. 진열장에 보이는 빵 메뉴부터 6가지 종류의 샌드위치, 라자냐, 샐러드, 잠봉뵈르 등 신중한 선택이 이어진다. 스피카 카페에서는 청주 흥덕초등학교 정문이 바로 보인다. 통창 너머로 재잘대는 아이들의 모습부터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환하게 들어오는 채광이 따스한 공간을 연출한다.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문을 열고 있는 이곳에서는 재료가 떨어지기 전까지 맛있는 냄새가 새어 나온다. 스피카의 이선영 대표는 10년 넘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음악과 영상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는 성인이 된 후 일본으로 떠날 용기를 줬다. 일본의 베이커리나 카페 등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보낸 시간은 돌이켜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기억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좋아하는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며 성취감이 있었지만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가오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게 됐다. 40살이 되면 뭔가 달라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여름철 폭우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17일 시에 따르면 올 여름 청주지역 무심천 범람에 대비해 시민들의 통행을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한다. 이 자동차단시설은 갑작스러운 폭우나 장마기간 무심천의 수위가 위험수준에 달했을 때 시민들의 세월교 보행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시설로, 시는 지난해 운천동 세월교 1곳에 양방향으로 이 시설을 설치해 시범운영했다. 시는 이달 내로 무심천 19곳 세월교 전체에 자동차단시설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단시설 1기를 설치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은 1천만원 수준으로, 모두 38개 시설에 3억8천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금까지는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면 직원들이 세월교를 일일이 방문해 차단선을 설치했다. 그러나 올해부턴 원격으로 작동하는 이 시설을 무심천 전 구역에 설치해 재난대비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또 이 시설은 한번 설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예산투입 대비 사업효과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함께 시는 재난 예보·경보시설도 개선한다. 시는 노후화된 예보·경보시설을 점검해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재난상황에 대비할 방침이다. 총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