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1.03.10 18:44:2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이긍익(李肯翊·1736~1806)이 지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은 방대한 규모로 유명하다. 59권 42책으로, 저술 기간만 30년에 이르고 있다. 그는 부친 이광사 유배지인 신지도(薪智島)에서 42세 때부터 저술하기 시작하여 타계할 때까지 이 책에 매달렸다.

특히 그가 추구했던 객관주의 역사 의식은 지금도 사계의 표본이 되고 있다. 그는 역사 저술의 기본 태도로 '술이부작(述而不作)'을 견지했다. 서술은 하되 작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흔히 연려실기술에는 야사 모음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이긍익은 수집한 각종 야사를 글로 남기되 반드시 출처를 명기했다. 그러나 자신의 주관은 하나도 첨가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술이부작'이다.

'연려실'은 그의 서실(書室)이름으로, 중국 한나라의 유향(劉向)이 옛 글을 교정할 때 명아주 지팡이에 불을 붙여 방안을 밝게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이긍익은 우리고장 청원 문의의 덕천사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덕천사우(德川祠宇) 숙종 갑술년에 세웠다. 유희령 호는 몽암(夢庵)이며 호조참의를 지냈다. 유흥룡 호는 숙옹(塾翁)이며 감찰을 증직하였다. 우신언 호는 묵재(默齋)이며, 찰방을 지냈다. 정응창 호는 유항(柳巷)이며 공조 좌랑을 증직하였다.'-<연려실기술>

인용문 중에 유희령(柳希齡·1480년∼1552)이라는 인물의 이름이 보인다. 그의 본관은 진주이다. 따라서 영남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그가 우리고장 청원 문의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얼마전 유인숙(柳仁淑·1485∼1545)이라는 인물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을사사화에 직접 연루된 것이 드러나, 그의 세 아들과 함께 문의에서 처형됐다.

일부 기록은 청원 현도면 노산리를 처형지로 적고 있으나, 고증은 잘 안되고 있다. 노산리는 대청댐 하류로, 신탄진 건너편이 된다. 따라서 고증 여부에 관계없이 문의 일대에 유인숙의 연고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인숙은 기묘사화 때는 사림을 적극 두둔하다 파직돼 구속당한 전례도 있다.

바로 유인숙의 조카가 유희령이다. 그는 작은아버지 유인숙이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하자 어떤 이유에서 인지 관직을 버리고 우리고장 문의로 내려온 것으로 돼 있다.

그의 문의 은거생활은 길지는 않았다. 그는 2년 후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 호조참의까지 오르나 1545년 발생한 을사사화의 화를 입게 됐다. 그 결과, 그는 절도(絶島)로 유배된 후 8년만에 병사하면서 다시는 문의 땅을 밟지 못했다.

앞서 연려실기술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유희령의 대표 저서로 대동시림(大東詩林)과 대동연주시격(大東聯珠詩格)이 있다. 조선 명종 때 문인은 권응인은 자신이 지은 송계만록(松溪漫錄)에서 두 권의 책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대동시림과 대동련주시격을 지었는데, 이것은 술(述)이지 작(作)이 아니다. 두 분이 지은 시문은 세상에 보기 드무니, 이것은 술(述)에는 능하지만 작(作)은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객관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이긍익과 유희령은 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