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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3.06 19:23:2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이준경(李浚慶·1499~1572)의 광주이씨 가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심한 부침을 겪었다. 이준경의 증조부 이극감은 무오사화와 간접적인 관련이 있다. 간신 유자광이 조의제문을 밀고할 때 그는 그의 직속 상사였다.

이준경의 조부는 세좌(世佐)다. 그는 인수대비가 며느리 폐비윤씨(연산군 생모)에게 사약을 내릴 때 형방승지로서 이를 운반했다. 연산군이 가만둘리 없다. 그는 거제도로 이배되던 중 지금의 경남 사천에 이르러 자살 하명을 받고 스스로 목을 맸다.

이준경의 부친은 수정(守貞)으로, 그를 포함해 4명의 아들이 연좌법에 따라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러자 당시 사관이 이렇게 적었다.

'왕이 이씨종친(광주이씨)이 강성한 것을 근심하여 모두 없애 종자도 남기지 않으려 하였다'-<연산군일기>

이수정은 슬하에 윤경(潤慶)과 서두에 언급한 준경 등 두 아들을 뒀다. 이들도 연좌법에 따라 우리고장 괴산으로 유배됐다. 이들의 괴산 유배생활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실각하면서 자유의 몸이 됐고, 이후 충주의 사촌형 이연경(李延慶) 밑에서 수학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벼슬길에 나간 이준경에게도 첫 시련이 찾아왔다. 1549년 그는 충주 이홍윤 역모사건과 관련해 우리고장 보은에 유배됐다. 그러나 세자 탄생의 은사를 입어 바로 풀려났다.

이후 이준경은 승승장구하게 된다. 선조 임금 아래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 이른바 삼정승을 모두 역임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가문의 피해를 의식한 듯, 사화(士禍)의 희생자를 복권시키려 노력한다.

'그리하여 송인수의 직첩이 드디어 회복되니 인심이 크게 기뻐하였다. 당시 영의정 이준경이 국정을 맡고 있었는데, 일부 동료들은 그가 하는 일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혹 뒤탈이 있을까 싶다 해도 이준경이 이를 듣지 않자, 논의하는 자들이 그를 장하게 여겼다.'-<선조실록>

이런 이준경은 임종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임금에게 소장을 쓰게 된다. 그의 진면목이 소장에 들어 있다.

"나의 수명이 이미 다하였다. 어찌 약을 먹어 목숨을 연장할 수 있겠는가. 오직 우리 임금에게 한 말씀 올리고 싶을 뿐이다" 하였다. 그리고 입으로 불러 소장을 초하여 올리기를, "흙 속에 들어가는 신 모(某)는 삼가 4건의 일을 갖추어 유언을 올리니, 전하께서는 조금이라도 살펴주소서…"-<선조실록>

그는 소장의 네번째 단락에서 붕당혁파를 강하게 건의했다.

'넷째, 사사로운 붕당을 깨뜨려야 합니다. (…) 그렇지 않으면 끝내는 반드시 국가의 구제하기 어려운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선조실록>

이준경은 조선 지식인 중 처음으로 붕당의 피해상을 지적했다. 훗날 정조도 그의 저서 홍재전서에서 '이준경의 파붕당설(破朋黨說)에서 시작하여 고상 조문명의 탕평소로 끝을 맺은 것은 심오한 뜻이 있는 것이다'라고 그의 혜안을 칭찬했다.

그의 소장은 당시 이렇게 끝맺는다. "지하로 가는 신 이준경은 삼가 네 가지의 조목으로 죽은 뒤에 들어주실 것을 청하오니 전하께서는 살펴주소서."-<선조실록> 그러나 당시 조정은 그의 상소를 수용하지 않았고, 조선의 국운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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