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서부를 남서류해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총길이 89km의 하천으로 대곡천이라고도 불리어지는 미호천은 금강의 가장 큰 지류하천이다. 한남금북정맥 산줄기의 최북단에 위치한 음성 망이산(마이산 472m)에서 발원하여 진천~오창~청주 분지 등 곡창지대를 끼고 충청남도 연기군 합강리에서 금강 상류와 합류한다. 충청북도 최대의 곡창지대인 '까치내'는 미호천과 무심천이 합류하는 하천 연안을 따라 비옥한 토지가 넓게 형성된 평야 지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고운 모래톱과 깨끗한 수변공간은 온갖 철새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으며 특히 천연기념물 454호인 미호종개가 서식하는 등 희귀한 많은 생물종이 다양하게 살고있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상류로부터 유입되는 농공단지의 폐수나 생활폐수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1960~1970년대의 미호천은 명경지수(明鏡止水)는 아니었으나 그런대로 맑은 물이 흐르는 추억의 강이었다. 아련한 기억 속 미호천은 청주시민의 천렵 터였다. 여름만 되면 행락객들은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철부지 아이들은 해가는 줄 모르고 멱을 감았고 모래무지나 피라미 떼를 쫓았다. 강변 곳곳에 널린 광활한 모래밭에서 모래성을 쌓거나 씨름판을 벌였으며 누가 멀리가나
# 금요일△청주우정산악회(011-464-1434)* 2일 : 강릉 고루포기산* 16일 : 거제 계룡산△청주무궁화산악회(010-3423-2783)* 2일 : 용인 태화산* 9일 : 아산 광덕산* 16일 : 가평 명지산* 23일 : 남원 문덕봉* 30일 : 강릉 괘방산△청주우리산악회(010-2466-3822)* 2일 : 부산 갈맷길* 9일 : 광주 무등산* 16일 : 원주 배부른산* 23일 : 임실 오봉산* 30일 : 동두천 마차산△청주 의정산악회(016-864-3259)* 2일 : 고성 향로봉* 16일 : 안동 학가산△청주에이스 금요산악회(011-487-5556)# 토요일 △해맑은산꾼들(010-6473-4488)* 3~4일 : 외 나로도 천등산* 10일 : 거창 보해산, 금귀봉* 17일 : 남원 고정봉* 24일 : 부산 이기대길* 31일 : 남양주 수락산△청주백두오름산악회(010-6486-1055)* 3일 : 동두천 소요산* 10일 : 완도 상황봉* 17~18일 : 거문도, 백도* 24일 : 지리산 만복대* 31일 : 부산 이기대길△청주산사랑 산악회(010-3423-8505)* 3일 : 완주 문필봉, 연석산* 10일 : 강진 만덕산* 17일 : 안산 풍도* 2
조선시대 왕비 중 청주한씨 외에 우리고장을 관향(貫鄕)으로 한 가문이 또 있다. 청풍김씨로 현종비 명성왕후와 정조비 효의왕후 등을 배출했다. 명성왕후와 명성황후는 다른 인물이다. 명성왕후의 한자는 明聖, 명성황후는 明成이다. 흔히 민비로 불리는 인물이 고종의 정비인 명성황후이다. 청풍김씨는 신라 김알지(金閼智)의 후예인 김대유(金大猷)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고려 말에 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을 지낸 인물로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봉해진 후 우리고장 제천의 청풍(淸風)에 세거했다. 청풍김씨가 문벌을 활짝 꽃피운 시기는 대동법 확장으로 유명한 명신 김육(金堉·1580∼1658) 때이다. 선조~효종 연간을 산 김육은 이때 이미 세거지 청풍을 떠나 한성에 터를 잡았다. 이처럼 시골에서 한양으로 올라가 누대에 걸쳐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가문을 경화벌열이라고 한다. 명성왕후와 효의왕후도 경화벌열의 여식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실제 태어난 곳은 청풍이 아닌 서울이다. 현종비 명성왕후는 김육이 사망한지 얼마 안 돼 왕비가 됐다. 바로 김육은 명성왕후의 친조부가 된다. 친아버지는 한때 복상(服喪) 문제로 송시열과 불화를 겪었던 김우명(金佑明)이다. 그녀는 한양 장
조선의 역대 임금은 추존된 경우를 포함해 총 32명이 배출됐다. 왕비는 이보다 다소 많은 48명이 배출됐다. 이는 병사 등으로 인해 왕비를 다시 얻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조선의 왕비는 국왕의 정실 부인으로서 중궁(中宮)의 자리에 있던 사람을 말한다. 사극을 보면 흔히 중전(中殿)으로 표현되나, 이는 '중궁전'의 준말이다. 이밖에 왕비는 국모(國母), 내전(內殿), 곤전(坤殿), 성녀(聖女) 등의 이칭도 지니고 있다. 왕비의 자리에 오르는 것에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었다. 간택 절차를 거쳐 세자빈에 책봉되면 훗날 세자인 남편이 왕위에 오를 경우 자신도 왕비가 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세자빈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왕비로 책봉된 사례도 적지 않았고, 원래의 왕비가 쫓겨나거나 사망하여 후궁이 왕비에 책봉된 예도 있다. 신분상으로는 숙종의 왕비였던 희빈 장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양반가의 출신이다. 왕비의 존칭은 왕과 동등하게 '전하'(殿下)이며, 품계는 없다. 1894년 갑오경장 때 왕비와 대비를 각각 왕후와 왕태후로 격상하면서 그 존칭이 '폐하'(陛下)로 바뀌기도 했다. 침전은 경복궁의 경우 교태전(交泰殿), 창덕궁은 대조전
조선전기 호불군주(好佛君主)로는 세종과 세조가 있다. 세조는 속리산 복천암과 정이품송 전설에서 보듯 초지일관 불교를 사랑했다. 세종은 다소 달랐다. 처음에는 불교에 대해 강압적이고 비판적이었다. 조선전기 여러 종파가 난립하자 선종과 교종 등 두 종단만 남기고 정리한 군주가 바로 세종이었다. '그러므로 조계·천태·총남 3종을 합쳐서 선종으로, 화엄·자은·중신·시흥 4종을 합쳐서 교종으로 하며, 서울과 지방에 중들이 우거할 만한 곳을 가려서 36개소의 절만을 두어, 양종에 분속시킬 것입니다.'- 당시 예조가 건의한 내용으로, 세종은 이를 모두 수용했다. 그 결과, 지금의 충북에는 보은 속리사와 충주 노은면의 보련사만 남고 모두 산문을 닫아야 했다. 대신 살아 남은 사찰에는 재정지원 규모가 확대됐다. '충청도 보은 속리사는 원속전이 60결인데, 이번에 1백 40결을 더 주고, 거승은 1백명이며, 충주 보련사는 원속전이 80결인데, 이번에 70결을 더 주고, 거승은 70명입니다.'- 세종은 말년에 가족사에 비운이 잇따르자 불교에 크게 의지했다. 그러나 궁궐 안의 호불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임금이 바뀌자 대신들의 상소가 경향을 가리지 않고 빗발쳤다. 다음은 충청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이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신라 혜공왕 때(776년) 진표율사가 처음 조성한 것으로 돼 있으나 직접적인 근거는 되지 못한다. 법주사 미륵대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조선 전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처음 등장한다. '법주사(法住寺) 속리산에 있다.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신라의 중 의신(義信)이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성덕왕이 중수했는데, 석조와 석교·석옹(石翁) 등이 있으며, 절 안 산호전(珊瑚殿)에는 금신장육상(金身丈六像)이 있으며, 문 앞에는 구리로 부어 만든 깃대가 있는데, 모양이 몹시 높고 그 한 쪽에 통화(統和) 24년에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인용문 중 '산호전에는 금신장육상이 있으며'라는 문장을 다시 한번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 표현은 당시 미륵대불이 장육상이기는 하나 산호전이라는 실내 전각 안에 모셔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금신'이라는 표현으로 봐서 32길상(吉相)의 하나인 황금옷을 입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법주사 미륵대불은 조선후기의 옛문헌에는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 특히 영험스런 면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의 국시가 유교였던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이
국제저널 '무형유산' 편집위원들이 최근 속리산 법주사를 방문, 문화재를 둘러보고 예불의식도 참관했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은 33m의 엄청난 높이로 주변 산세까지 압도하고 있다. 법주사 미륵대불은 재료상 콘크리트-청동-금동불 순으로 변화했다. 콘크리트가 청동불로 바뀌는데는 안정상의 이유, 청동이 금동불로 바뀌는데는 외관의 모습이 크게 작용했다. 전자의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부 콘크리트 철근이 부식됐을 가능성이 우려됐고, 후자는 청동인 까닭에 용접선이 그대는 드러나는 등 외관상 보기가 안 좋았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더라도 법주사 미륵대불이 황금색의 띄게 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는 단순히 '보기좋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32길상(吉相) 80종호(種好)라는 교리적인 이유도 작용하고 있다. 32길상은 중아함경과 방광대장엄경에 나오는 내용으로, 이른바 부처님 외모에 관한 규정이다. 이중 일반인이 비교적 쉽게 접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정유육계(頂有肉髮), 나발우선 기색감청(螺髮右旋 其色紺靑), 액광평정(額廣平正) 등이 있다. 순서대로 '정수리에 육계가 있다', '소라같은 머리칼이 오른쪽으로 돌아오르고 그 빛은 검푸르다', '이마가 넓고 평평하며 바르다'
지난 1997년 이문건이 쓴 묵재일기 속에 '설공찬전'(薛公瓚傳)이라는 한글 필사본 소설이 함께 적혀 있는 것이 발견돼 학계를 흥분시킨 바 있다. 저자는 우리고장 음성 태생인 채수(蔡壽)라는 인물이다. 작품은 일종의 저승 경험담 계열의 전기(傳奇)적인 내용으로, 주인공 설공찬의 영혼이 잠시 지상에 나와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는 구조로 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반역으로 정권을 잡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부분이다. 이는 연산군을 축출하고 집권한 중종정권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채수는 폭군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보필하여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라고 생각한 것 같다. 아울러 소설에는 여성도 글을 할 줄 알면 관직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는 여성을 차별하는 조선 사회체제를 통박한 것이다. 그 동안 학계에서는 최초의 국문소설인 홍길동전이 장편인 데다 완벽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그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 국문표기 소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그러나 그 중간 작품으로 제시된 안락국태자전·왕랑반혼전 등이 소설이 아닌 모두 불경의 번역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줘왔다. 설공찬전은 조선 최초의 금서였다. 그러나 각계각층의 독
매서운 한파 속 도심의 아침은 온통 웅크린 사람들 일색이다. 잔뜩 껴입은 사람, 뒤집어 쓴 사람 나름 혹독한 계절의 강을 건너는 방법들이 난무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보이는 대원들의 모습이 반갑다. 날씨가 추워서 불참하는 대원들이 많을거란 우려와는 달리 변함없이 자리해준 대원들의 자리가 든든하다. 재잘재잘 묵은 회포 푸는 사이에 대원들을 태운 차량은 경부고속도로 옥천 나들목을 빠져나온 다음 37번 도로를 이용하여 보은방면으로 향한다. 소정리와 장계리를 지나 인포삼거리에서 안남면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굽이길을 따라 잠시 평화로움을 즐기다보면 아담한 면소재지의 아기자기함이 드러나는 안남면이다. 한눈에 가늠되는 아담한 규모이지만 면사무소, 경찰서, 학교 등 있을건 다 있다. 면사무소 앞으로 주차장이 넓게 형성 되어있다. 안내팻말과 편의시설 또한 잘 되어있다. 둔주봉을 중심으로 대청호 둘레길과 향수 100리길 등 다양한 컨셉이 가미된 관광지 개발과 함께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지역주민들의 손님맞이도 나날이 발전을 한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마을앞 보리밭으로 하얀눈이 내려앉았다. 하얀 조각보를 펼쳐놓은듯 아름답다. 한적한 시골마을은 동면에 들어간 듯 조용하다
'안순이 말하기를, '인명(人命)은 지극히 중한 것이고,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죄를 알지 못하고 극형에 두는 것은 의(義)에 있어 어떻겠습니까. 마땅히 유사(攸司)에 회부하여 그 죄를 밝히십시오' 하니…'- 인용문에 안순(安純·1371∼1440)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안순은 중세 봉건시대인 조선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인권에 대한 의식을 강하게 지닌 인물있다. 특히 그는 사형 집행의 신중함을 역설했다. 사고가 유연했던 그는 흐르는 물의 운동 에너지를 이용하는 수차(水車)에도 관심을 보였다. 수차의 역사는 청동기시대인 기원전 1세기 무렵의 서아시아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서아시아 사람들은 하사(下射), 즉 아래로 떨어지는 물을 수차에 이용해 밀을 빻았다. 중국에서는 후한 초기에 수대(水石+焦), 삼국·육조 때는 수애(水석+豈), 당·송 때는 통차(筒車)가 발달했다. 수대는 물방아, 수애는 맷돌류, 통차는 관개용 수차를 각각 의미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 때 수차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백성에게 수차(水車)를 만들도록 권한 것은 한 마을에 몇 개씩이며, 관에서 만들어 나누어 준 것은 한 마을에 몇 개씩인가.권경(勸耕)한
인류 뇌물의 역사는 기원전 15세기 무렵의 이집트 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도 뇌물이 골칫거리였다. 이집트 왕조는 뇌물을 '공정한 재판을 왜곡하는 선물'이라고 규정, 이를 단속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때 수령이나 무관에 임명된 벼슬아치는 인사가 날 경우 해상 부서인 이조나 병조에 가서 사례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를 당참례(堂參禮)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는 당시 규정으로 불법은 아니었다. 조선전기에 이미 그 내용이 보인다. '새로 임명된 호군(護軍)은 사은숙배하고 의정부에 당참례를 행한 뒤 본방에 참알·회좌(回坐)를 행하기 전에는 (…) 각처에만 명함을 들이고, 타처에는 출입할 수 없다.'- 문제는 당참례가 아닌, 이때 은밀히 오가는 굼품인 당참채(堂參債)에 있었다. 지방관에 임명된 수령이나 무관이 인사부서인 이조나 병조를 방문했을 때 그곳 하급관리들이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했다. 이때 자문(尺文)이라는 영수증까지 발부됐다. 어떤 거래가 있을 경우 이를 증명하기 위해 교부됐던 자문은 길이가 한 자 가량되는 짧은 글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결국 지방관들이 부임지 고을에서 당참채의 재원을 마련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백성들에
신미대사를 이야기 할 때 함께 거론되는 인물이 동생 김수온(金守溫·1410∼1481)이다. 신미대사의 본명이 김수성이니까 영산(영동 지칭) 김씨의 '守' 자 돌림이다. 김수온은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학사, 승문원교리 그리고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한성부윤(오늘날 서울특별시장)에 이어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에 봉해졌다. 부원군은 임금의 장인, 즉 국구(國舅) 또는 정1품 공신에게 준 칭호로 받는 사람의 본관인 읍호(邑號)를 그 앞에 붙인다. 김수온은 탁월한 문장가였다. 그의 졸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세종이 그 재주를 듣고 특별히 명하여 집현전에 사진(仕進)하게 하고, 치평요람을 수찬하는 일에 참여하게 하였다. 임금이 때때로 글제를 내어 집현전의 여러 유신을 시켜 시문을 짓게 하면, 김수온이 여러 번 으뜸을 차지하였다.'- 형 신미대사와 마찬가지로 김수온도 세종에 이어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세조은 김수온의 집이 가난하다는 말을 듣고 쌀 10석과 말(馬)를 내려주었다. 세조는 김수온이 우리고장 영동의 어머니에게 문안차 가려하자 한강에서 술을 내어 전송하기도 했다. '그때 김수온이 어머니를 성문하러 영동현(永同縣)에 가는
[충북일보] 최근 청주시 미호강변에서 아주 기묘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 새벽에 수백여 명의 인파가 강변 공원 앞에 줄을 서있는 낯선 장면이 목격되고 있다. 젊게는 30대에서 많게는 70대 노인까지 행렬에 참여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아예 돗자리를 펴고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충북일보가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이들은 미호강 파크골프장에서 '2025 생활스포츠지도자' 실기·구술 시험을 보러온 응시자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 야심한 시간에 줄을 서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파크골프 종목 생활스포츠지도자 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식 시험장이 전국에서 청주 딱 한 곳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3천여 명의 응시자들이 서로 연습기회를 얻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한 응시자에게 왜 이렇게 줄을 서는 것이냐고 묻자 "밤 11시부터 줄을 서도 새벽 5시 30분 파크골프장 개장시간에 대기번호 후순위를 받을 정도"라며 "줄을 서지 않으면 입장조차도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춘천에서 왔다는 또 다른 응시자는 "사람이 너무 몰려서 하루 1번 겨우 연습하는 상황인데 이마저도 전날부터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청주시가 청주시설관리공단을 도시공사로 전환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16일 시에 따르면 오는 20일부터 열리는 청주시의회 정례회에 '청주도시공사 설립 및 운영 조례'를 상정할 예정이다. 시가 시의회에 상정한 조례안에는 기존 청주시설관리공단의 기능을 확장해 도시개발사업과 위수탁·대행사업을 수행하는 통합형 공사를 만드는 방안이 담겼다. 시가 공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앞으로 지역에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다양한 개발사업을 타 기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추진하기 위해서다. 현재 청주시는 개발사업을 주도할 주체가 없어 대부분의 개발사업을 LH나 충북개발공사, 민간사업자에게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또 시설관리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청주시설관리공단으로는 각종 개발사업을 처리할 여건이 안된다는 것도 시가 새로운 컨트롤타워 조직 구성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다. 더욱이 청주시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바이오 등 첨단 산업의 중심지역이고 공항과 철도, 도로 모두 발달해 앞으로의 개발 수요는 차고 넘치기 때문에 도시공사 전환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시의 주장이다. 시는 시설공단이 도시공사로 전환되면 도시개발에 따른 이익이 지역에 환원할 수 있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