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현존하는 조선시대 고지도 가운데 '1892년 군현지도'(혹은 〃 지방지도)가 있다. 흥선대원군으로 상징되는 19세기말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로, 서양 기운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1866년(고종 3) '서세'는 한반도 서해안에도 출현하였다. 미국 제너널셔먼호는 통상을 요구하며 대동강까지 거슬러 올라왔다가 평안 도민들의 장마철 화공(火攻)을 받고 침몰했다. 당시 평안관찰사는 아이러니하게도 후에 개화파의 비조가 되는 박규수(朴珪壽, 1807~1876)였다. '쇄국'(鎖國)은 나라에 빗장을 지른다는 뜻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은 병인양요(1866) 이후 서구 열강의 개항 요구에 맞서기 위해 포수(砲手)들을 집중적으로 양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포수부대는 수도 한양과 병인양요가 일어난 강화도 일대에 집중적으로 배치됐으나 독일인 오페르트의 남연군(南延君, 흥선대원군 아버지) 묘 도굴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는 내륙에도 배치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황간현은 지금의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황간면 일대로, 백두대간 추풍령 이북이 여기에 속한다. 당시 흥선대원군 정부는 추풍령 이북에도 포수부대를 배치하고, 일대를 '포수
임진왜란 때 최소 10만명 이상의 조선인이 전쟁 포로가 돼 일본으로 끌려간 것으로 학계에서는 파악하고 있다. 왜는 이렇게 끌고 간 조선인 포로의 일부를 국제 노예무역에 이용하였다. 당시 왜는 포르투칼로부터는 조총과 담배를 수입하면서 조선인 포로를 결재 수단으로 사용했다. 일설에 의하면 왜는 조총 1자루를 구입하는데 조선인 피로 40명을 지불하였고, 당시 노예시장이 개설된 곳은 태평양전쟁 때 원자탄 피폭을 당하는 나가사키(長崎)였다. 조선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왜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1607년(선조 40) 교류를 재개하였다. 조선은 일본에 조선통신사를 파견했고, 당시 부사는 청주가 관향으로 《해사록》을 쓴 경섬(慶暹, 1562∼1620)이었다. 경섬의 조선통신사는 그해 1월 한양도성을 나서 4개월 후에 왜의 수도인 에도(江戶, 현 도쿄)에 도착했다. 당시 도쿠가와 정부는 조선과의 국교 재개를 원했던 만큼 조선인 포로 문제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었다. "사로잡혀 온 귀국의 남녀들이 각 지방에 흩어져 산 지 20년이 됩니다. 나라 안의 선비들이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줌으로써, 혹 시집이나 장가간 자도 있고 어린 아이를 둔 자도 있습니다.
고려와 몽고는 처음에는 사이가 괜찮은 편이었다. 두 나라는 압록강 유역의 거란군을 토벌하는데 군사적으로 협력하였다. 몽고는 거란을 토벌하는데 성공하자 과도한 조공을 요구했고, 여기에 몽고사신 저고여가 국경에서 피살되는 사건까지 겹치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고려 고종 8년(1231) 살리타가 이끄는 몽고군이 1차 침입을 하였다. 당시 실제 권력자 최우(崔瑀, ?~1249)는 고종에게 강화도로 천도할 것을 주청하였다. 그러자 김세충(金世沖, ?~1232)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고, 두 사람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김세충: 송경(개경)은 태조 때부터 역대로 지켜온 것이 무려 2백여년이다. 장차 도읍할 땅이 어디있는가? 최우: 그렇다면 왕성을 지킬 비책이라도 있는가? 김세충은 머뭇거리며 즉답을 하지 못했다. 무신 최우는 김세충을 끌어내 목을 베고 강화도 천도길에 올랐다. 그는 운반 수단이 마땅치 않자 나라 세곡(稅穀)을 나르는 수레 1백량을 동원해 자기 집안의 물건을 강화도로 옮겼다. 그는 백성들에게 섬이나 산성으로 들어갈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국가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이때 장맛비가 열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15년만에 조선과 왜(일본)는 국교를 재개하였다. 열도의 새 권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쓰시마를 통해 "국교를 강력히 희망한다"는 국서를 조선에 보내왔다. 조선도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를 데려오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했다. 선조 40년(1607) 임진왜란 종전 후 처음으로 조선통신사가 파견되었다. 정사는 여우길(呂祐吉, 1567∼1632), 부사는 청주가 관향으로 《해사록》을 쓴 경섬(慶暹, 1562∼1620)이었다. 경섬은 1607년 1월 12일 궁궐에 들어가 하직인사를 올렸고, 그러자 선조는 간단한 술과 함께 말안장, 정남침(定南針 나침반)을 하사하였다. 한양 도성을 빠져나온 경섬은 한강의 어느 촌락에서 통신사로서의 첫밤을 맞았고, 이때 선조의 국서를 살펴봤다. "임진년의 변란은, 귀국이 까닭 없이 군대를 일으켜 극히 참혹한 화란(禍亂)을 만들고 심지어 선왕의 능묘에까지 욕이 미쳤으므로, 우리나라 군신의 마음이 아프고 뼈가 저리어, 의리에 귀국과는 한 하늘 밑에 살지 못하게 되었었던 것입니다. (중략) 이제 귀국이 옛일을 혁신하여 위문 편지를 먼저 보내와 '전대의 잘못을 고쳤다' 하여 성의를 보이니, 참으로 이 말과
[충북일보] 5월의 내장산(763m)을 찾는다. 단풍나무들이 초록의 향연을 펼친다. 진녹색의 물결이 황홀하다. 초록의 단풍나무들이 우거져 터널을 이룬다. 초록 비단을 덮어놓은 듯하다. 내장사 입구까지 녹색 천지다. 온통 파랗다. 파릇한 새싹을 살피다 하늘빛을 띤 꽃을 만난다. 이름 모를 꽃의 화려함에 잠시 놀란다. 탐방로 곳곳에 식재된 각종 야생화 무리가 좋다. 진입로 가로수는 온통 단풍나무다. 가을이 되면 노랗고 빨갛게 물든다. 지금은 진초록 잎으로 찬란하게 빛난다. 내장산의 봄은 이르게 시작한다. 그 덕에 여름으로 진입 속도가 빠르다. 봄기운이 끝나고 여름이 완연해지고 있다. 여름이 북상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도 5월의 내장산은 여전히 싱그럽고 아름답다. 내장산이 여름의 녹음 속으로 치닫고 있다. 일주문에서 내장사까지 단풍터널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녹음이 단풍을 대신한다. 녹색터널이 되레 단풍보다 화려하다. 진한 단풍나무 향기가 산객을 맞는다. 찾는 이가 많지 않으니 한적하다. 2016년 5월 21일 오전 10시 5분 단풍나무 녹음 길을 따라 내장사까지 편하게 걷는다. 단풍이 없으니 혼잡하지도 않다.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이번 산행 계획
《병자일기》는 문신 남이웅(南以雄, 1575∼1648)의 부인 남평조씨가 쓴 일기로, 병자호란 전후의 농촌 현실과 노비들의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다. 《병자일기》 속의 남평조씨 생활은 대략 난중피란기(1636년 12월 15일~1637년 2월 17일), 서산·당진체류기(1637년 12월 18일~1638년 1월 25일), 충주 이안 체류기(1638년 1월 26일~5월 28일), 서울 귀환기(1638년 5월 29일 이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안은 지금의 충주시 대소원면 본리에 해당한다. 이런 《병자일기》는 국문학적으로도 사료적 가치가 높다. 《병자일기》는 해서체의 난필에 띄어쓰기가 안 돼 있어 단번에 읽히가 쉽지 않다. 그러나 수정체를 서서히 움직이면 중세 우리말의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김영춘의 논문에 따르면 《병자일기》를 통해 17세기 국어의 단모음화·전설모음화·원순모음화·모음이화·자음동화 등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단모음화는 치음(齒音, ㅅ·ㅈ·ㅊ)의 영향을 받아 ㅑ·ㅕ·ㅠ 등 복모음이 ㅏ·ㅓ·ㅜ 의 단모음으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남평조씨는 충주 체류기간 쓴 일기에서 지금의 '소'[牛]를 '쇼', '소나기'를 '쇠나기', '
고려 공민왕 10년(1361) 11월 홍건족(紅巾族)이 쳐들어왔다. 홍건족은 머리에 붉은 두건을 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들은 오랑캐가 아닌 한족이었다. 홍건족이 빠른 속도로 남진하자 공민왕은 겨우 28명의 신하만 데리고 황급히 개경 도성을 빠져나와 몽진에 올랐다. 국왕의 도피는 피난이 아닌 몽진(蒙塵)으로 표현했다.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 썼다는 뜻으로, 궁궐의 편안한 생활과 대비되는 표현이다. 음력 11월은 겨울의 초입에 해당하는 시기로, 어가가 경기도 이천에 당도하자 진눈깨비가 내렸다. 공민왕은 젖은 옷을 모닥불에 말려야 할 정도로 몽진은 비참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가가 이천현(利川縣)에 당도했는데 비에 젖은 왕의 옷이 얼어붙자 장작불을 피워 한기를 막았다.'- 우리 민족의 침략사 가운데 가장 잔혹한 장면의 하나가 이때 벌어졌다. 《고려사》의 기술에 의하면 당시 홍건족의 잔혹한 행동은 야만의 극한에 달했다. '이날 적군이 개경을 함락한 후 수 개월 동안 진을 치고 머물면서 말과 소를 죽여 그 가죽으로 성을 쌓고는 물을 뿌려 얼음판을 만들어 아군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다. 또 남녀 백성들을 죽여 구워 먹거나 임신부의 유방
[충북일보] 고려 제 5대 임금인 경종(955~981)은 관리들의 봉급제도인 전시과(田柴科)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 제도에 의해 고려의 관리들은 가을철이 되면 농민의 개인 농토에서 수확량을 10%를 가져갔고, 또 땔감을 채취할 수 있는 임야를 제공받았다. 그런 전시과는 벼슬의 높고 낮음인 관품(官品), 그리고 인품(人品)에 따라 토지를 차등적으로 지급하였다. 이 가운데 인품은 시행 초기부터 골칫거리가 됐다. 인품은 개성 신·구 세력의 정치적 흥정에 따라 도입된 것으로, 주관성을 지닐 수 밖에 없었다. 경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목종(穆宗, 980~1009)이 초기 전시과의 불합리성을 개혁하였다. 본명이 왕송(王誦)인 목종은 전시과 외에 학문을 장려하는 등 선정을 행했으나 후사가 없었다. 《고려사》에는 동성애를 즐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목종의 생모는 천추태후(千秋太后, 964~1029)이다. 그녀는 중 김치양(金致陽·?~1009)과 불륜에 빠져 아들을 낳았고, 목종이 후계자로 정한 당숙 대량원군 순(詢)을 제치고 그 사생아를 왕으로 삼으려 했다. 목종은 둘의 음모를 눈치채고 서경(평양)에 나가있는 강조(康兆)에게 긴급 구원을 요청
'임꺽정(林巨正)'은 우리고장 괴산출신 홍명희(洪命憙·1888~?)가 지은 일제 강점기의 장편소설로 유명하다. 그러나 임꺽정(?~1562)은 조선 중기인 명종대에 실존했던 도적의 우두머리이다. 성호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에서 조선의 3대 도둑으로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등을 꼽은 바 있다. 백정 출신으로 알려진 임꺽정은 서울까지 진출하는 등 신출귀몰하였다. '명종실록'의 사관은 사론(史論)에서 이렇게 썼다. '재상이 멋대로 욕심을 채우고 수령이 백성을 학대해 살을 깎고 뼈를 발리면 고혈이 다 말라버린다. 수족을 둘 데가 없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기한(饑寒)이 절박해도 아침저녁거리가 없어 잠시라도 목숨을 잇고자 해서 도둑이 되었다. 그들이 도둑이 된 것은 왕정의 잘못이지 그들의 죄가 아니다.'- 임꺽정은 조선 조정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인 지 약 3년 만에 잡혔다. 임꺽정을 생포한 인물은 당시 경기·황해·평안도의 3도 토포사(討捕使) 남치근(南致勤·?~1570)이었다. 토포사는 조선후기 도적이나 반란 세력의 진압 임무를 맡은 특수 관직을 말한다. '국조인물고'는 남치근이 임꺽정을 체포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재령(載寧
문명의 발달이 빨라지기 시작한 고려시대에도 높은 고개를 넘기는 종종 쉽지 않았다. 도둑이 들끓었고 맹수인 호랑이도 자주 출몰했다. 김부식이 지은 《혜음사신창기(惠陰寺新創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호랑이와 불한당으로 인하여 올라오는 사람이나 내려가는 사람이 주저하고 감히 전진하지 못하며, 반드시 많은 동행자가 생기고 무기를 휴대하여야만 지나갈 수 있도록 서로 경계 하였는데도, 오히려 살해를 당하는 자가 1년이면 수백명에 달하게 되었다.' 고려 조정은 그 대책으로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에 국립숙박시설의 일종인 혜음원((惠陰院)을 세웠다. 혜음원지는 현재 사적 제464호로 지정돼 있고, 이곳을 방문하면 숙박시설 외에 절터와 행궁지를 만날 수 있다. 충북 백두대간에는 제일 북쪽의 단양 영춘면에 여촌령(呂村嶺, 늦은목이), 맨 남쪽의 영동군 상촌면에 우두령(牛頭嶺)이 위치하고 있다. 모두 24개 영로이다. 이들 영로 가운데 충북 백두대간 세번째 고개인 고치령(串赤嶺) 정상에는 산신당이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다. 산신령과 단종을 신격화한 그림이 산싱당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 고치령 산신당은 충북 북부와 경북 북부를 넘나들던 보부
554년 백제 성왕이 우리고장 옥천 관산성 부근에서 참수를 당했다.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백제군은 말 한 마리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처절한 패배를 당했다. '신주(新州) 군주 김무력이 주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함에, 비장(裨將) 삼년산군의 고간(高干) 도도(都刀)가 급히 쳐서 백제 왕을 죽였다. 이에 모든 군사가 승세를 타고 크게 이겨, 좌평 네 명과 군사 2만 9천600 명의 목을 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신라군은 성왕의 사지(四肢)는 돌려보냈으나 머리는 경주 왕성의 북청 계단 아래에 묻고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했다. 신라는 백제 왕실과 국가에 대한 모욕을 그런 방법으로 표출하였고, 이후 두 나라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다. 백제 성왕이 접경의 여러 성 가운데 유독 옥천 관산성을 빼앗으려 한 이유는 매우 궁금하다. 학계에서는 그 이유를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을 봉쇄하는데 있었다고 본다. 백제는 그 직전 한강 하류지역에 신라에게 강탈당했다. 나-제동맹(433년)에 의해 신라와 합동으로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유역을 수복했으나 신라 진흥왕의 동맹 위반으로 한강 하류를 잃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경주를 축으로 하여
[충북일보] 4월9일 월악산(1천97m) 방문은 행운이었다. 월악산은 내륙의 바다라 불리는 충주호와 함께 언제나 우뚝하다. 들머리부터 첩첩하다. 하늘을 닮은 숲은 푸르다. 맑은 공기가 청량감을 준다. 눈 돌리는 곳마다 절경이다. 곳곳이 힐링의 공간이다. 오전 7시 청주를 나선다. 월악산 송계계곡 덕주골에 닿으니 오전 9시다. 덕주골 상가를 지나 덕주사를 거친다. 계곡 사이로 진달래가 활짝 폈다. 연분홍색 채도가 흐린 아침 날씨를 상쇄한다. 진달래 아래로 햇살이 무늬를 만든다. 덕주사를 지나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숲 속 공기 덕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고요의 숲 정령을 만난다. 마애여래석불까지 돌길이다. 가는 내내 그늘 숲길이 울창하다. 숲길은 돌계단과 가파른 경사의 이어짐이다. 마애여래석불은 급경사 언덕배기 거대한 수직암반 벽면에 새겨져 있다. 얼굴은 돋을새김하고 몸통은 선각으로 처리했다. 조형성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그래도 서글서글한 이목구비가 강한 인상을 준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오름길이다. 산객들을 질리게 하는 돌계단·철계단과 맞닥뜨린다. 모롱이를 돌때마다 화강암이 불쑥불쑥 솟는다. 바위틈에는 수백년의 소나무가 자란다. 그 사이 사
[충북일보] 통합 청주시의 숙원이던 '청주시청 신청사 건립'이 본궤도에 올라섰다. 2014년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하면서 새로운 통합 청사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현 청사 부지에 신축'이라는 전제로 사업이 시작됐다. 여러 차례의 공론화와 갈등 조정을 겪으며 사업추진이 지연됐지만, 민선 8기에 들어서면서 사업 방향을 정립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했다. 시는 타당성조사, 투자심사, 교통영향평가, 매장유산 발굴조사 등 사전 행정절차를 마무리했고, 6월 중 시공사와 계약을 체결한 뒤 오는 7월 착공할 계획이다. 준공은 2028년 하반기가 목표다. 새로운 청사는 청주의 정체성과 미래를 담은 도시의 중심이자, 시민 삶의 변화를 이끄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틀을 세우다 신청사 건립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부지 안에는 40년 가까이 운영된 청주병원이 있었고 기존 청사 본관동을 철거할 것인가를 두고 지역사회 갈등이 팽팽했다. 시는 원칙 있는 행정과 유연한 협의를 통해 하나하나 매듭을 풀어갔다. 청주병원의 경우, 시는 공익사업을 위한 법적 절차를 충실히 이행해 부지 소유권을 확보했으며 병원 측과의 소송에서도 최종 승소했다.
[충북일보]경기침체와 고물가 영향으로 설 선물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충북도내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경우 물가 상승 영향으로 10만 원 미만 선물 물량은 지난해 설 보다 5%가량 줄어든 반면, 대형마트들은 5만 원 미만 선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이는 백화점 선물세트는 물가 상승 영향으로 구성 상품들의 시세가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크다. 설 성수품인 배 가격은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청주지역 기준 배(신고) 평균 소매 가격은 10개에 4만2천900원 이다. 지난해 보다 27.37% 비싸다. 지난해 배 생산량 감소와 저장단계에서 고온 피해로 인해 유통 가능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에 여파를 미쳤다. 이에 기존 사과·배에 더해 샤인머스캣이나 애플망고를 섞은 혼합세트가 증가했다. 명절 주요 선물 상품인 한우의 경우 포장 중량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고 있다. 지난해 설 보다 '5만 원 미만' 상품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커피·차 세트, 김·양말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끈다. '1
[충북일보] 충북도가 정부가 추진하는 '1호 분산에너지 특화지역(분산특구)' 최종 후보지에서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분산특구 3개 유형 중 도가 신청한 '공급자원 유치형'은 한 곳도 선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는 앞으로 정부의 분산특구 추가 지정 등을 예의주시하면서 유형과 계획 변경 등을 통해 유치 재도전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11일 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실무위원회를 열어 11개 지자체가 신청한 분산특구 중 7곳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다. 선정 지역과 유형을 보면 제주, 부산, 경기, 경북은 '신산업 활성화형', 울산, 충남, 전남은 '전력수요 유치형'이다. 이 중 신산업형은 신기술과 연계한 신사업 실증이 핵심이다. 분산 자원과 연계해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 규제 특례가 부여되는 방식이다. 수요 유치형은 전력 수급 여유 지역에 다소비 산업을 유치해 지역 내 소비를 늘리는 모델이다. 하지만 산자부는 공급 유치형의 경우 단 한 곳도 후보지를 선정하지 않았다. 산자부는 발전소 등의 구축이 필요해 단기간 사업 추진이 어려운 공급 유치형의 특성을 고려해 선정하는 않은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