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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4.19 15:09:50
  • 최종수정2016.07.03 13:44:34

조혁연 객원 대기자

554년 백제 성왕이 우리고장 옥천 관산성 부근에서 참수를 당했다.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백제군은 말 한 마리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처절한 패배를 당했다.

'신주(新州) 군주 김무력이 주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함에, 비장(裨將) 삼년산군의 고간(高干) 도도(都刀)가 급히 쳐서 백제 왕을 죽였다. 이에 모든 군사가 승세를 타고 크게 이겨, 좌평 네 명과 군사 2만 9천600 명의 목을 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5년>

신라군은 성왕의 사지(四肢)는 돌려보냈으나 머리는 경주 왕성의 북청 계단 아래에 묻고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했다. 신라는 백제 왕실과 국가에 대한 모욕을 그런 방법으로 표출하였고, 이후 두 나라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다.

백제 성왕이 접경의 여러 성 가운데 유독 옥천 관산성을 빼앗으려 한 이유는 매우 궁금하다. 학계에서는 그 이유를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을 봉쇄하는데 있었다고 본다.

백제는 그 직전 한강 하류지역에 신라에게 강탈당했다. 나-제동맹(433년)에 의해 신라와 합동으로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유역을 수복했으나 신라 진흥왕의 동맹 위반으로 한강 하류를 잃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경주를 축으로 하여 염지통, 동해통, 해남통, 북악통, 북해통 등 이른바 오통(五通)이 존재했다. 이 가운데 염지통(鹽池通)은 경주-추풍령-청주-서해안을 잇는 간선도로로, 대중국 교통로로도 사용했다.

성왕에 이어 아들 위덕왕(창왕)이 보위에 올랐다. 그는 아버지가 너무 비참하게 죽었기 때문에 머리를 깎고 출가하려 했으나 대신들의 만류로 뜻을 접었다. 대신 금동대향로와 사리함을 제작해 헌향, 부왕(父王)을 추모했다.

극도의 적개심을 품게 된 위덕왕은 신라에 대한 공격을 서둘렀다. 그는 첫 노력으로 웅현성(熊峴城), 송술성(松述城) 등을 쌓았다.

'4년 2월 백제가 웅현성, 송술성을 쌓아 산산성, 마지현성, 내리서성의 길을 막았다.'-<삼국사기 신라보기 진지왕 4년>

<대동여지도>의 추풍령.

학계에서는 인용문에 등장하는 5개의 성을 우리고장 보은과 괴산지역 일대의 산성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두 지역에 집중적으로 성을 축조한 목적을 '추풍령로' 차단에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추풍령로와 염지통은 사실상 같은 대로이다.

신라 입장에서 보면 백제가 축조한 성에 의해 추풍령로가 차단되면 대중국 왕래가 끊기가 된다. 더 심각한 것은 추풍령을 기준으로 지금의 서울~충청권과 경상도가 분할된다. 위덕왕의 추풍령로 차단작전은 초기에는 성과를 거뒀다. <삼국사기>에는 이들 성이 쌓아진 이후 신라 사신이 중국을 왕래한 기록은 15년 동안 단 한건도 없다. 그러나 위덕왕의 추풍령로 차단 노력은 최종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갔다.

고구려는 돌궐과의 '평화무드'로 국경 서북쪽에 대한 신경을 덜 써도 되자 다시 남진을 시작했고, 이 영향으로 추풍령로 차단도 지속되지 못했다. 다산 정약용이 추풍령의 이같은 전략적 중요성을 의식하고 '추풍령을 넘으며'라는 시를 남겼다.

'태백산 소백산이 산세도 장하구나 / 달리던 용의 머리 여기에서 수그려 / 북쪽으로 통한 시내 황간으로 달려가고 / 서쪽으로 뻗은 산은 적상산을 에워쌌네 /(중략)/ 청주 고을 큰 들판 천리에 트였으니 / 추풍령 빼앗기면 멱살을 잡히리라.'-<다산시문집 제 2권>

/ 충북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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