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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9.06.23 20:20:5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충북지역 시민운동의 효시 격이 된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이하 충북참여연대)가 오늘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두 번씩이나 변하도록 시민의 권익과 지역문화정체성의 확립 및 탁월한 환경감시기능을 수행한 충북참여연대의 헌신적 노력에 우선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지금은 아웃사이더의 입장이지만 나는 이 단체와 각별한 인연을 맺으며 청주문화발전에 벽돌 한 장을 놓았다. 1989년 6월24일, 충북참여연대의 전신인 청주시민회가 돛을 올리며 지역 문화 창달의 파도를 갈랐다. 이 때 나는 C일보 문화부장으로 있으면서 청주 유일의 국보(제 41호) 인 '용두사지 철당간 살리기' 기획기사를 쓰고 있었다.

고려 광종 13년(962년)에 건립한 용두사지 철당간은 천년고도 청주의 확실한 징표이나 당시만 해도 고층건물에 둘러싸인 데다 주변의 식당, 노점상 등지에서 내뿜는 연탄가스 등에 표면이 부식되고 있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철당간의 경우 사방 20m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설정돼 있으나 용두사지 철당간은 보호구역을 확보하지 못하고 빌딩숲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문화재 보호구역 확보는커녕, 불과 7m 인접한 곳에 세탁소가 들어서 있었다.

하루는 청주시민회 회장을 맡고 있는 고 동범(東凡) 최병준(崔炳俊) 선생이 나를 찾았다. 선생은 다짜고짜 나를 끌고 중앙공원 앞 공원분식집으로 들어갔다. 당시 공원분식은 헐한 음식 값 때문에 청주지역의 문화계 인사들이 자주 찾던 곳이다. 꽁치 서너 마리를 구워놓고 막걸리 몇 주전자를 비우더니 선생은 "철당간 보존에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다. 이를 두고 간담상조(肝膽相照)라 했던가.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제법 구체적인 보존 청사진과 보존 캠페인의 방향을 논의했다. 나는 철당간 관련 기획기사를 더 보완했고 최 회장, 송재봉 국장 등 회원들이 발 벗고 나섰는데 이때 청주대 건축과 최효승 교수가 학문적 토대를 구축해주었다. 청주시민회는 철당간 보호구역 확보를 위해 모금운동을 벌여 얼마간의 성금을 청주시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세탁소 주인 Y모 씨는 청주의 유력인사다. 청주시민회의 캠페인과 관련기사가 자꾸 신문에 보도되니까 "왜 나를 식견 없는 사람으로 만드냐"며 곤혹스런 입장을 호소했다. 결국 Y모 씨는 사익을 접고 이 땅을 대토형식으로 내놓아 오늘날의 용두사지 철당간 광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청주시민회와 지역 일간지와 관련학자가 삼위일체를 이뤄 빚어낸 값진 결과였다.

그 후 청주시민회는 제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고려시대의 건물 망선루의 제자리 찾기 운동을 벌였다. 홍건적의 난 때 고려 공민왕이 안동으로 파천하다 한 때 이곳에 머물러 과거시험을 실시하고 합격자 명단을 써 붙인 망선루는 교육도시 청주역사의 또 다른 증인이었으나 일제가 헐어버렸다. 그 자재를 애국지사 김태희 씨가 나서 수습, 제일교회로 옮겼다. 70여년이 넘도록 타향살이를 하는 망선루를 제자리인 구 청주경찰서 상무관자리로 원위치 시키자는 운동을 청주시민회가 벌였으나 엄청난 땅값에 부딪쳐 원래의 자리로는 오지 못했고 그 후 청주시에서 설문조사 등을 벌여 원위치에 가장 가까운 중앙공원 북쪽을 택해 이건(移建)하였다.

그 후에도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찾기에 수년간 골몰하기도 했다. 2001년 2월8일에는 현재의 명칭인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로 이름을 바꾸고 진보적 취향아래 시민운동을 펼쳐나갔다. 충북참여연대는 호남고속철 오송분기역 유치에 앞장서는 한편 재래시장활성화, 대형마트 규제, 대학 등록금 동결, 청주·청원 하나 되기 등 크고 작은 지역의 현안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그 해법을 찾아내는데 고심했다. 뿐만 아니라 보훈가족 도우미를 자처하며 보훈가족의 도배·장판을 해주는 따뜻한 인간애도 발휘하였다. 동범선생이 생전에 그랬듯 충북참여연대는 그 올곧은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지역 현안을 담론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그 해법을 구하는 '문화 게릴라'로서 확고한 위상을 다지고 있다. 오늘날 시민단체는 환경감시기능 등 일부 분야에선 지역 언론과 같은 기능을 공유하고 있다. 창립 20주년을 맞아 심기일전하여 부디 지역문화발전의 향도로, 올바른 길을 안내하는 등대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파수꾼으로 그 사명을 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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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