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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정복군주 근초고왕은 왜 충주를 선택했나

  • 웹출고시간2024.08.29 17:06:03
  • 최종수정2024.08.29 17:06:03

함재곤

충주시청 문화예술과장

근초고왕(재위 346~375)은 삼국시대 백제의 13대 왕으로, 마한을 병합한 강력한 전제군주다.

그는 백제와 고구려 간 벌어진 평양성 전쟁(371년)에서 고구려 16대 왕 고국원왕을 패사(敗死)시키고 당시 한반도 패자로 군림했다.

서기 350년경(근초고왕 5) 근초고왕은 충주를 점령했는데, 이때를 백제의 최전성기로 생각한다.

충주가 백제, 고구려, 신라의 점유권에 들어감에 따라 각각 전성시대를 열었고, 백제의 마한 병합과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한 것도 이곳을 점령한 후의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충주인가.

그 이유는 충주가 한반도 3대 철(鐵)산지이자 내륙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고대 전투에 있어서 무기는 굉장히 중요하고, 우수한 철을 생산할 수 있는 제철시설과 기술은 전쟁의 승리를 보장하는 척도였을 것이다.

때문에 철의 도시 충주를 점유하는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제치고 군림할 힘을 얻게 될 수 있었다.

백제는 근초고왕 시기 충주를 점령한 뒤 국력이 팽창했는데, 외교적으로는 동진에 사신을 파견해 '진동장군 영 낙랑태수(鎭東將軍領樂浪太守)'라는 작호를 받았다.

또 왜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당당히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안으로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시도했다.

그 자신감은 왜왕에게 칠지도 하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럼 역사적 증표인 칠지도 어디서 만들었을까.

일본서기에는 칠지도의 생산지를 곡나철산(谷那鐵山)이라 전한다.

자철광과 적철광이 다량 매장되어 있고 무엇보다 철광석 매장량이 풍부하며, 남한강 수로를 이용한 철제품 유통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충주로 비정된다.

충주의 철생산과 관련, 신라의 대문장가 강수 선생이 대장장이의 딸과 혼인을 했다는 일화와 다인철소(多仁鐵所) 민중들이 몽고병을 막아내어 익안현(翼安縣)으로 승격했다는 기록 등이 남아있다.

이런 기록은 충주의 유서 깊은 철 문화를 뒷받침한다.

충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철 생산이 이뤄졌는데, 이와 관련한 유적이 다수 남아있다.

삼국시대에 사용한 칠금동 제철유적과 대소원면 완오리 일원 고려시대 다인철소 추정지를 비롯해 충주 전역에서 제철유적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칠금동 제철유적은 현재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됐으며, 2016년 1차 발굴조사 후 2023년 4차 조사까지 총 34기의 제련로가 발굴됐다.

이 유적은 한반도에서 단위면적 당 가장 많은 수의 제련로가 조사된 곳으로 철광석 파쇄장, 폐기장 등 부대시설도 다량 발견돼 '백제시대의 포스코'로 비견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역사적 기록과 실물자료가 남아있는 중요유적인 칠금동 제철유적을 국가지정문화유산인 사적으로 격상하고, 이에 대한 보존과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현재 칠금동 제철유적은 발굴조사가 끝나고 종합정비계획 수립 중에 있는데, 정비계획 수립 후 정비·보존과 관람·체험행사 등을 통해 관광 자원화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칠금동 제철유적을 알릴 수 있는 관람시설과 철을 만드는 과정을 재현한 행사, 명승 탄금대와 국립충주박물관 등으로 이어지는 탐방로 개설이 필요하다.

칠지도와 근초고왕, 다인철소민들의 대몽항쟁기를 그리는 역사극 및 작품 등 다양한 역사문화콘텐츠 개발도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우리 충주의 역사문화자원을 널리 알리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다면, 보존과 활용의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철의 도시 충주! 이제 새로운 역사를 제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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