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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청주시청 도시계획상임기획단, 공학박사

# 어쩌다 산책

남문갈비에서 저녁을 먹고 나와 오래된 간판을 마주쳤다. 동경자수. '의류 자수로 리폼하세요' 마침 수선이 필요한 수영복이 있어 반가웠다. 일반적인 폴리우레탄 수영복이 아닌 레이스 원단의 수영복이다.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저지르고 말았는데, 수영복이 젖은 상태로 입다가 발가락으로 레이스에 구멍을 내버렸다. 처음 입은 날이었다. 입지도 못할 거면서 몇 년 동안 버리지도 못한 수영복이다. 다음날 수영복을 들고 동경자수를 찾았다. '이것도 리폼이 되나요?' 사장님은 끄덕이며 수영복을 받아 드셨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시간이 멈춘듯한 동경자수, 자수를 놓은 의류가 작품처럼 보이는 이 곳엔 간판이 필요없다

그리하여 의도하지 않게 육거리시장 산책이 시작되었다. 과일이나 사야겠다 싶어 육거리시장 쪽으로 걷는데, 동네의 오래된 골목들이 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 옛 청주의 맨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남아있지 않다. 이때 육거리 시장이 답이 되어준다. 시장 인근 석교동과 남주동은 여전히 단층 건물이 주를 이룬다. 폐가 사이에 오래된 여관이 있고, 한때는 잘나가던 유흥점이었지만 지금은 값싼 옛날 국수를 파는 식당이 있고, 숨겨진 예술가들의 공간이 있고, 비디오 판매점 간판을 달고 헌책을 파는 가게가 있다. 가을을 사는 담쟁이가 있고, 예술작품처럼 거울이 붙어 있는 담장이 있고,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평상이 있다. 지그재그 골목이 이내 시내처럼 흐르는 골목으로 이어지지만, 그렇다고 길을 잃어버릴 위험은 없다. 낮은 담으로 이어진 골목은 다시 시장으로, 큰 길로 이어진다. 근대와 현대가 콜라주처럼 풍경을 이루는 독특한 분위기는 육거리 시장 고유의 자산이다.

# 산책으로부터 온 것들

산책을 마칠 즈음에서야 사과 생각이 났다. 육거리시장은 예상외로 북적였다. 사과 한 소쿠리가 만 원, 검은 비닐봉지 가득이다. 할머니 한 분이 그 옆에서 소쿠리 두어 개에 얼룩덜룩한 감을 팔고 계셨다. 필시 집에서 우린 감이다. 어릴 적 할머니는 소금물을 담은 독에 감을 넣고, 아랫목에서 솜이불까지 덮어 감을 우리셨다. 단감에 비해 색은 곱지 않아도, 말랑한 식감 때문에 나는 우린 감이 더 좋았다. 감도 한 소쿠리 샀다. 두 손이 무거워졌다. 지나는 길에 인삼 튀김에 잔 막걸리로 목도 축였다. 다시 동경자수를 찾았다. 수영복의 구멍은 이미 말끔하게 채워져 있었다.

'어디에 구멍이 났었는지 모르겠지요?' 정말 감쪽같지는 않았다. 원단의 패턴과 자수의 패턴은 분명 다르다. 어디에 구멍이 났었는지 정도는 금방 눈치챌 정도다. 그래도 '네'라고 대답한다. 내년 여름엔 다시 꺼내 입어야지. 수선비와 함께 사과 두 개, 감 두 개를 꺼내 놓았다. 사장님은 다시 내게 믹스커피 한 잔을 내어 주셨다.

"이 동네도 예전엔 잘나갔어요. 빙그레 나이트가 있었는데 이주일도 사회 보러 오고, 이덕화도 사회 보러 오고 그랬어. 이덕화 본다고 여자들이 이 골목에 줄을 섰었다니까. 유명한 요정도 여러 개였어."

'수선'을 위한 육거리시장 방문이 '산책'이 되고 사과, 감, 인삼튀김과 막걸리의 '소비'로 이어졌다. 동네 역사 이야기는 덤이다. 그뿐 아니다. 처음 본 동경자수 사장님과의 교류 속에 느낀 온정, 감에 대한 할머니의 기억, 처음 먹어본 인삼 튀김의 맛, 운동의 효과, 육거리 시장 산책을 통해 내가 얻은 것들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꽉 찬 기분이 들었다. 버려질 뻔한 수영복이, 오래되고 낡은 이 동네를 닮았다. 비록 수선의 흔적은 남아있지만 다시 입을 수 있게 된 수영복처럼 여기, 육거리 시장 골목도 오래전 흔적들을 간직하며 변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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