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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언론학자 제천 천관우, 시조는 임란 명나라 장수 천만리

  • 웹출고시간2016.11.15 16:38:53
  • 최종수정2016.11.15 16:38:53

조혁연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한국 현대신문사를 논하려면 천관우(千寬宇, 1925~1991)와 송건호(宋建鎬, 1927~2001) 두 거목을 반드시 지나가야 한다. 공교롭게도 두 인물은 각각 우리고장 제천시 청풍면과 옥천군 군북면 출신이고, 연령대도 비슷하다.

최근 제천시와 옥천군이 두 인물을 기념하는 사업을 약속이나 한 듯이 거의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옥천군은 얼마전 '청암 송건호 기념사업회'를 창립한데 이어 군북면 비야리 생거터에 표지석을 세우기로 했다. 제천시는 지난 11일 제천시청에서 백산학회(회장 하문식 세종대 교수)와 공동으로 '후석 천관우의 한국사 연구와 역사 인식'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과거의 영화가 그리운 청풍 고을에서 천관우 같은 언론 거목이자 대사학자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천관우는 영양(潁陽) 천씨 군수공파 명선(命善, 1896~1955)의 아들로 청풍 북진(北津)에서 태어났다.

생전의 천관우 선생 모습.

영양 천씨의 시조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하였다가 귀화한 명나라 장수 천만리(千萬里, 1543~·)로, 천관우는 그의 16세손이 된다. 그는 중국 지금의 사천성 천고봉(千古峰) 밑에 살았다 하여 성을 천씨로 삼았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여송(李如松)을 따라 조선에 들어왔다. 그는 평양·곽산·동래 등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또 정유재란 때 마귀(麻貴)와 함께 울산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맹활약하였다. 귀화인이 시조가 된 경우는 많지만, 그 행적이 사서에 명확히 기록된 사례는 드물다. 다음은 의관(議官) 이봉래(李鳳來) 등의 상소이다.

"명나라 수위사 겸 총독장 천만리(千萬里)는 만력 임진년에 조병영양사(調兵領糧使)로서 철기(鐵騎) 2만명과 아들 천상(千祥)을 거느리고 제독 이여송(李如松)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곽산에서 첫 싸움을 하여 이긴 다음 평양으로 진군하여 주둔하고 있는 적을 포위하였습니다. 제독이 천만리와 함께 칠성문을 공격했는데, 대포로 문짝을 부수고 군사를 정돈하여 들어가 승세를 타고 싸운 결과 1,280여 급을 참획하였습니다. 계속 싸우면서 동래(東萊)에까지 이르는 동안 연전연승함으로써 적의 예봉을 꺾어놓았습니다."-<고종실록 38년 9월 30일>

왜란이 끝나자 출정한 동료 지휘관들은 귀국하였으나 그는 따라가지 않고 조선에 머물러 살았다. 천관우의 시조가 왜 중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고종실록》은 중국 대륙이 명나라에서 청나라, 즉 오랑캐 국가가 될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조선의 온화한 기후와 산천의 아름다움에 매료됐을 가능성도 꽤 있다.

"명나라 군사가 돌아가게 되자 그대로 왕경(王京)에 머무르면서 금강산(金剛山)에 세 번 가보고 두류산(頭流山)에 두 번 올랐는데, 이르는 곳마다 시를 읊어 감회를 털어놓았습니다. 대체로 그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르고 이국 땅의 고신(孤臣)이 된 것은 명나라가 마지막 운수에 들어서고 중국이 오랑캐 땅으로 되리라는 것을 환히 알아서 후손들이 오랑캐 땅에 들어가지 않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선조는 그의 전공을 생각하여 그를 화산군(花山君)에 봉하고 전(田) 30결(結)을 하사했다. 천관우 선조가 언제 제천 청풍에 입향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세명대 구완회 교수에 의하면 남한강 세곡(稅穀)을 서울 경창(京倉)으로 운반하면서 부를 축적하였다.

/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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